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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그림·음악·영상 넘나들며 배우고 일했죠, 지금은 유튜버예요

중앙일보 2020.10.12 09:10
“흔히 영상 작업을 극한의 신체노동인 ‘막노동’에 비유합니다. 그만큼 유튜브 채널 운영은 매우 고된 작업이에요. 단순히 유명인이 되거나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유튜버가 되겠다고 했다가는 실망이 클 것입니다. 유튜버는 인생의 대부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고 쉬는 시간 역시 콘텐트를 짜내기 위해 골방에서 지내야 하죠. 저 역시 지난 1년 동안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어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의 ‘자기주도진로’ 인터뷰 34 역사 유튜버 김희범

7년간의 미국 이민자의 삶을 접고 귀국 후 1년여 만에 역사와 신화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유튜버로 주목받는 김희범(34)씨의 이야기예요. 그는 유튜브에서 2개 채널을 운영하는데요. 역사채널 ‘역TV’는 2019년 4월부터 단짝친구 ‘장의사’(닉네임)와 재미 삼아 시작해 현재는 구독자 10만 명이 넘었죠. 희범씨가 단독으로 1년째 운영 중인 ‘신전TV’ 는 어릴 적부터 관심사였던 성경이나 신화를 주제로 3만 명이 넘게 구독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 제작을 위해 김희범씨가 집 한쪽에 마련한 작업실. 디스플레이 태블릿, 맥북프로, 오디오 인터페이스, 마이크, 프롬프터, 카메라, 조명 등의 장비르 사용한다.

유튜브 영상 제작을 위해 김희범씨가 집 한쪽에 마련한 작업실. 디스플레이 태블릿, 맥북프로, 오디오 인터페이스, 마이크, 프롬프터, 카메라, 조명 등의 장비르 사용한다.

 
“대학을 왜 가야 하나” vs “대학을 꼭 가고 싶다”
중학교 시절 희범씨에겐 아픈 친구가 있었습니다. 정확한 병명은 몰랐지만 그 친구는 가끔 탈모가 돼서 나타났으며 내내 우울해했죠. 희범씨는 그 친구를 즐겁게 해주고 싶었어요. 개인 인터넷방송을 개설해 친구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거나 직접 연주했죠. 우울해하던 친구가 무척 즐거워하는 모습에 신이 나 곡도 쓰고 연주도 하면서 더욱 몰입했죠.
 
라디오를 들으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던 희범씨는 그림 실력도 뛰어났어요.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서울미술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입학과 동시에 그림에는 흥미를 잃고 말았죠. 석고상을 가운데 두고 다른 각도에서 그리는 일만 반복하는 수업에서 그 어떤 의미나 재미도 찾을 수 없었던 거예요. 결국 희범씨는 미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음악학원을 기웃거리는 엉뚱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고교 시절 홍대 인디밴드에서 음악 활동을 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 존재감을 인정받기도 했어요.   
LA 스튜디오에서 보컬 녹음 장면. 이때 녹음한 음악은 2016년 4월 제이 딜린 오(J.Dylan O)의 디지털 싱글 ‘무효’에 수록됐다.

LA 스튜디오에서 보컬 녹음 장면. 이때 녹음한 음악은 2016년 4월 제이 딜린 오(J.Dylan O)의 디지털 싱글 ‘무효’에 수록됐다.

20대 초반 그는 힘든 가정사를 겪으며 의도치 않게 가장 역할을 했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느껴졌을 때 도피하듯 군에 입대했죠. 전역 후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미국 이민을 떠나게 됐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신청해둔 영주권이 군 입대 이후 발급된 거죠. 
첫 정착지는 어머니가 먼저 자리 잡고 있던 남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이 있는 곳이었어요. 희범씨는 현대차 협력업체에서 몰드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전문적인 기술도 없었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죠. 21시간 연속 근무를 밥 먹듯 하는 나날, 힘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건너가 6개월 동안 쉼 없이 일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요. 뮤지션이라는 꿈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니 공장 노동자가 돼 있더라고요. 홍대 인디밴드 시절부터 음악전문대학인 MI(Musicians Institute: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 위치한 세계적인 실용음악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때 간절하게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LA의 한인방송 TVK24에서 방송 송출요원으로 일하던 시절.

미국 LA의 한인방송 TVK24에서 방송 송출요원으로 일하던 시절.

때마침 MI에서 공부하던 지인이 함께 음악활동을 하자는 제안을 했죠. 고민할 것도 없이 그해 가을부터 캘리포니아에서의 생활이 시작됐어요. 어학원에 등록해 영어를 배우고 저녁엔 한인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죠. 근처 LA한인타운 랜드마크인 에퀴터블빌딩에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을 보며 그들을 동경하기도 했고요. 
그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에퀴터블빌딩에 위치한 미주 한인방송사TVK24에서 한국방송 송출요원 모집 공고가 난 거죠. 대학에서 전공하거나 방송 엔지니어링을 배우진 않았지만 희범씨는 그 일을 해낼 자신이 있었어요. 면접에서는 어릴 때부터 취미로 음악방송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방송장비 다루는 데 익숙하다고 장담했죠.
 
자신감 있는 태도가 통했는지 입사에 성공했고 4년여간 일하며 차츰 안정을 찾았습니다. 일하는 틈틈이 음악활동도 계속했죠. ‘공감’이라는 음악카페에서 정기공연도 하고 합창단이나 직장인 밴드 교육, 보컬 레슨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커졌죠. 당장 MI 입학 상담을 받았고 생각보다 학비가 비쌌지만 학자금 대출(Student Loan)을 받아 어떻게든 감당해보기로 했습니다.   
희범씨가 홍대 시절부터 활동해온 혼성 듀오 '투오버스(2 overs)'가 발매한 음악앨범 커버들. 희범씨와 아내 이혜민씨가 멤버인 '투오버스(2 overs)'는 지금까지 총 5개의 싱글앨범을 발매했다. 혜민씨는 건반 연주와 코드 편곡을 담당하고 희범씨는 작사·작곡·편곡·보컬 등 전반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희범씨가 홍대 시절부터 활동해온 혼성 듀오 '투오버스(2 overs)'가 발매한 음악앨범 커버들. 희범씨와 아내 이혜민씨가 멤버인 '투오버스(2 overs)'는 지금까지 총 5개의 싱글앨범을 발매했다. 혜민씨는 건반 연주와 코드 편곡을 담당하고 희범씨는 작사·작곡·편곡·보컬 등 전반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지만 일과 학업을 겸해야 하는 터라 졸업까지 가는 길이 순탄치 않았어요. 학교 수업은 최대한 오전에 소화하고, 오후 2시 반부터 10시 반까지는 회사에서 일하는 빠듯한 생활이 이어졌죠. 닥치는 대로 일하며 겨우 첫 번째 쿼터(3개월)를 마쳤지만 두 번째 쿼터를 앞두고는 학자금 대출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그 사이 소득이 급증해 대출 자격이 박탈된 거죠.
 
“그때 많이 방황했었던 것 같아요.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안 풀리지?’ 하는 생각으로 많이 힘들었죠. 그때 매일같이 한인카페 공감에 가서 음악연습을 하고 밥도 얻어먹곤 했는데 공감 사장님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6개월의 방황 끝에 용기를 내 두 번째 쿼터에 도전했고, 2년 과정의 학업을 절반 정도 마쳤을 때 여자친구와 결혼해 가정을 이뤘습니다. 책임감이 커졌고 열심히 일했던 덕분에 더 좋은 회사로 이직도 했죠. SBS 인터내셔널 LA지부에서 3년간 일하며 재정적으로도 훨씬 풍족해졌어요. 
 
미국에서의 삶과 한국에서의 삶
미국 생활이 궤도에 올랐기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녀와 다른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회사 선배들을 보니 불안해졌죠. 2018년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고민은 더 깊어졌고, 결국 2019년 2월 한국으로 돌아왔죠. 한 실용음악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기로 약속하고 귀국했지만 한국의 실용음악 관련 비즈니스는 2019년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입시에서 실용음악과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학원 수업은 물론 개인 레슨 기회조차 얻지 못했죠. 희범씨는 방송 경력을 살려 지방방송국에 취업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신전TV '천일야화' 시리즈에 들어간 일러스트는 희범씨가 그린다. 천일야화 6화 중 '두 번째 노인의 이야기' 한 장면.

신전TV '천일야화' 시리즈에 들어간 일러스트는 희범씨가 그린다. 천일야화 6화 중 '두 번째 노인의 이야기' 한 장면.

“2019년 4월 단짝 친구 ‘장의사’(닉네임)를 만나 대화하던 중 유튜브를 해보자는 말이 나왔어요. 처음엔 유튜브로 돈을 번다는 게 좀 허황한 이야기처럼 들렸죠. 그 친구는 소위 ‘역사덕후’인데 저도 역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같이 재미 삼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역TV’입니다. 취미로 했기 때문에 초반에는 영상작업을 대충대충했던 것 같아요.”
 
5월에 역TV를 오픈해 이순신 장군, 한반도의 악녀 시리즈 등을 내놓았지만 구독자가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 전두환·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콘텐트가 나올 때마다 조금씩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죠. 특히 영화 ‘남산의 부장들’ 개봉 시기에 맞춰 올린 ‘중앙정보부장 김형욱’편이 소위 대박이 났고, 이후 ‘참군인 장태완’편은 지금까지 122만 조회수를 기록했죠. 
신전TV '천일야화' 시리즈에 들어간 일러스트는 희범씨가 그린다. 천일야화 9화 중 '그리스인 왕과 의원 두반 이야기'의 한 장면.

신전TV '천일야화' 시리즈에 들어간 일러스트는 희범씨가 그린다. 천일야화 9화 중 '그리스인 왕과 의원 두반 이야기'의 한 장면.

“처음에는 주제 선정이나 스토리텔링을 전적으로 ‘장의사’가 전담했어요. 저는 글을 보고 팩트체크 후 그 글에 어울릴 영상·오디오 등을 찾아 영상을 제작했고요. 한 사람이 글 작업을 하다 보니 이념적으로 치우치는 부분이 생기기도 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제 생각을 반영해 균형을 맞추게 됐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이념적 균형을 맞추다 보니 구독자들로부터 ‘몇 안 되는 중도채널’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고 그것이 저희 채널의 차별점이 된 것 같아요.”
 
희범씨는 두 채널에 들어갈 일러스트도 직접 그립니다. 역TV의 경우 아더왕 시리즈를 비롯해 얼굴이 남아있지 않은 인물이나 있더라도 알아보기 힘들면 사료를 참고해 그리죠. 신전TV의 모든 시리즈 일러스트도 직접 작업해요. 특히 천일야화 시리즈를 본 교육콘텐트 회사 담당자로부터 일러스트 작업을 의뢰받은 적도 있죠.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모습.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모습.

유튜브를 제작할 때 영상만큼 중요한 것은 템포입니다. 유튜브에서 템포란 이야기의 속도감을 의미해요. 템포가 느려지면 구독자들은 금방 이탈하죠. 한 편을 구성할 때도 구독자를 다음 회차까지 계속 잡아둘 포인트가 중요합니다. 액자식 구성인 천일야화 시리즈의 경우 화자인 셰에라자드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 궁금할 순간에 이야기를 끊고 다음 회차로 넘기죠.   
 
“유튜버는 여러 재능을 뽐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저 같은 다능인에게는 좋은 직업입니다. 하지만 유튜버를 유일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유튜브를 둘러싼 환경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수입이 꾸준히 늘고는 있지만 일정치 않고요. 저는 전체 수입의 4분의 1 정도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얻어요. 나머지는 일러스트 작업, 보컬 레슨 등으로 충당하죠. 또 절친과 공동으로 작업해도 힘들고 부딪히는 일이 많은 만큼 스태프에게 맡기지 말고 본인이 직접 담당하는 일이 많아야 합니다.”  
희범씨가 단독 운영하는 신전TV에는 천일야화, 신화성경, 작가의 말 시리즈가 있다. '작가의 말' 시리즈 중 종교와 신화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

희범씨가 단독 운영하는 신전TV에는 천일야화, 신화성경, 작가의 말 시리즈가 있다. '작가의 말' 시리즈 중 종교와 신화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

가장 큰 스트레스는 다음에 뭘 만들어야 할까 하는 콘텐트 고민입니다. 물론 저작권 문제 역시 늘 고민거리죠. 하지만 자신감 넘치고 두려움 없는 성격이 밑천이었다면 무엇이든 빨리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즐기는 태도가 오늘의 희범씨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일을 해야지’ 의도하고 했던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재미있어서 손에 잡히는 걸 했는데 그 모든 것이 어느 순간 연결이 되더군요. 여기엔 계속 무언가를 한다는 단서가 붙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놀랍고 인상적이었던 점은 고등학생들이 다양한 외부활동을 마음껏 즐기는 모습이었죠. 한국의 청소년들도 대학 입시라는 한 가지 목표에만 자신을 가두지 말고 관심 분야 책도 읽고 영화를 보는 등 외부활동을 죄책감 없이 즐기면서 하면 좋겠습니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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