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종원도 못막는 덮죽 표절…법 보호 못받는 레시피의 비애

중앙일보 2020.10.12 07:00
‘소고기와 시금치 등의 채소를 볶아 간장으로 양념해 고명을 만들어 흰쌀 죽 위에 듬뿍 부어 덮은 요리’.

 
포항 덮죽의 대표 메뉴. 사진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방송화면 캡처

포항 덮죽의 대표 메뉴. 사진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방송화면 캡처

 지난 7월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온 포항 덮죽집의 '덮죽' 메뉴를 설명하면 이렇다. 이 레시피를 판매하는 다른 외식업체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10일 포항 덮죽집 사장의 인스타그램으로 알려지면서 인기 메뉴를 그대로 베낀 ‘복붙(복사해서 붙이기) 메뉴’와 ‘미투 메뉴’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11일 현재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에서 덮죽과 유사한 메뉴를 선보인 업체는 한 곳이다. 논란이 시작된 이후 이 업체는 배달을 중단하고 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프랜차이즈 가맹사업본부로 등록이 돼 있지 않은 곳으로 아직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취재를 종합해 볼 때 족발집 두 곳을 운영하다 급히 메뉴를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이 업체는 특허청에 지난 9월 4일 ‘OO 덮죽’으로 상표 출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네티즌과 요식업계는 “수개월의 노력을 훔치는 도둑질”이라는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이미 이 회사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공유하며 불매 운동에 나서고 있는 상태다. 중앙일보는 이 업체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포항 덮죽을 그대로 베낀 업체가 배달의민족에 등록한 메뉴 설명. 포항 시소 덮죽과 거의 같다. 사진 배달의민족 캡처

포항 덮죽을 그대로 베낀 업체가 배달의민족에 등록한 메뉴 설명. 포항 시소 덮죽과 거의 같다. 사진 배달의민족 캡처

 

음식 조리법은 저작권 대상에서 제외  

안동찜닭, 흑당 버블티, 치밥, 치킨 치즈볼, 마라샹궈, 밀크 아이스크림…요식업 ‘복붙 메뉴’, ‘미투 메뉴’의 그간 사례는 많고도 많다. 특정 메뉴가 인기를 끌면 너도나도 뛰어들어 유사 메뉴를 출시해 경쟁하는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음식 조리법은 창작물의 결과가 아니라 창작 전 단계인 ‘아이디어’로 보기 때문에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 인기를 끌었던 ‘대만 흑당 버블티’는 거의 모든 커피ㆍ티 프랜차이즈에서 신메뉴로 내놓았다. 10년 전 안동찜닭 집 앞에 긴 줄을 서기 시작하자 주요 유흥가는 모두 안동찜닭 거리로 변했지만, 유행을 일으킨 선두 업체는 대응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요식업계에선 복붙 메뉴 트렌드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최근에는 외식 트렌드가 두 계절 이상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어 ‘물 들어올 때 노젓자’는 심정으로 유사 메뉴가 쏟아진다. 하지만 덮죽 카피가 집중포화를 받는 것은 ‘최소한의 상도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피 덮죽은 지난 9월4일 'OO덮죽'으로 상표를 등록했다. 사진 특허청 키프리스 캡처

카피 덮죽은 지난 9월4일 'OO덮죽'으로 상표를 등록했다. 사진 특허청 키프리스 캡처

익명을 요구한 한 요식업계 관계자는 “마라처럼 유행하는 맛으로 신메뉴 출시 경쟁을 벌이거나, 그해 저렴해진 재료 때문에 비슷한 메뉴가 쏟아지는 현상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향후 프랜차이즈 본부 설립을 위해 덮죽으로 상표 출원부터 했다는 점이 메뉴 개발자에겐 단 한 푼도 주지 않고 채가겠다는 의도가 보인다”고 말했다.      
 

레시피에 대한 예의가 기본  

메뉴 베끼기 문제가 반복되면서 일각에선 조리법도 창작물로 보고 저작권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 만약 포항 덮죽 조리법을 저작권으로 보호한다면 시금치와 소고기를 볶아 흰죽 위에 올리는 요리의 특정한 재료와 계량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재료는 쉽게 더하거나 뺄 수 있고, 볶는 온도나 양념을 변형했을 때 저작권 침해인지 새로운 창작물 인지를 판가름하기가 어렵다.   
외식 유행 주기가 짧아지면서 복붙메뉴 등장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7월 소비자가 크게 유행한 흑당 버블티 전문점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중앙포토

외식 유행 주기가 짧아지면서 복붙메뉴 등장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7월 소비자가 크게 유행한 흑당 버블티 전문점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렇다고 보호해야 할 저작권을 너무 넓게 설정할 경우, 후발 주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다양한 실험을 막아 후속 창작을 막는 셈이 된다. 결국 업계의 자정 능력과 상식, ‘예의’를 기대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업계 중론이다. 법적 책임이 없어도 조리법 원작자를 존중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할 경우 보상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엔 요식 업계에서 누구의 아이디어에 기반을 둬 무엇을 변형했는지 레퍼런스를 확실히 해주는 문화가 싹트고 있다.    
 

메뉴 복붙, 결과는 ‘더욱 빠른 소멸’  

다만 외식 트렌드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어 복붙 메뉴, 미투 메뉴가 계속 나오는 현상을 막기는 어려워보인다. 망설이다가 트렌드를 놓칠 수 있는 만큼 메뉴 복붙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 요식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메뉴는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같은 가게를 두 번 가지 않는다는 소비자가 많다”며 “관심을 이어가기 위해 유행하는 메뉴, 재료가 한꺼번에 여러 업체에서 등장하는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쏟아지는 유사 메뉴의 예정된 수순으로 소비자 피로감도 빨리 찾아오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계속 나온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