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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의사가 무릎꿇으라 했다"…커지는 고백 '#나는 낙태했다'

중앙일보 2020.10.12 05:00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정부의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예고안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정부의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예고안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데이트 성폭력 생존자입니다. 청소년 때 일입니다. 불법으로 낙태하는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는 저보고 잘못했으니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라고 했습니다. 네 인생이 불쌍해서 (수술을) 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루하루 (유산 유도제가 담긴) 택배를 손꼽아 기다리며 나는 밤마다 울었다. 자책감에 시달렸다.”

 
11일 SNS상에 인공임신중절(낙태) 경험을 고백하는 릴레이 운동이 뜨겁다. ‘#나는낙태했습니다’라고 털어놓으며 죄책감과 사회적 편견, 우울감 등에 시달렸다고 호소한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낙태죄 전면 페지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일 임신 14주까지만 낙태를 허용하되, 낙태죄는 유지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의 입법을 예고한 데 대한 반발이다.  
 

"울면서 산부인과 검색했다"

'#나는낙태했다' 릴레이 운동에 참여한 이길보라 영화감독. [트위터 캡쳐]

'#나는낙태했다' 릴레이 운동에 참여한 이길보라 영화감독. [트위터 캡쳐]

 
이 운동은 이길보라 영화감독의 제안이 시작이다. 이 감독은 지난 7일 SNS에 “임신중절 수술경험자다. 원치 않는 임신과 그 이후 경험한 일들에 대해 과거 칼럼으로도 썼다”며 “2020년인데 아직도 ‘낙태죄’를 논하냐”고 적었다. 가수 겸 영화 연출자인 이랑 감독 역시 실명으로 이 운동에 동참했다. 그는 “‘낙태죄’라는 말이 있는 한국에서 (낙태 경험을) 공개적으로 얘기해본 적이 없다. 이제부터 하겠다”고 썼다. 
 
참여자들은 불법인 낙태 수술을 한 고충을 털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여자는 “불법인 수술이기 때문에 병원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다. 내 몸에 행한 수술인데 일반 진료보다도 못한 경험이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결정하지 못하고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여자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생리가 늦어져 심장이 저 바닥까지 철렁 떨어지는 그 느낌을. 울면서 산부인과를 검색했다” “생리 주기가 불규칙하고, 일 때문에 바빠 병원도 바로 못 가면 눈 깜짝할 새 14주를 넘긴다” 등의 경험을 고백했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경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100명 중 7명꼴로 낙태를 경험했다. 만 15~44세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낙태죄는 완전 폐지돼야 합니다"

'500인 여성이 말하는 낙태죄 폐지 캠페인' 모습. [인스타그램 캡쳐]

'500인 여성이 말하는 낙태죄 폐지 캠페인' 모습. [인스타그램 캡쳐]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녹음해 SNS에 올리는 캠페인도 진행됐다. 여성의 당이 진행한 ‘500인의 여성이 말하는 낙태죄 폐지’ 보이스 캠페인이다. 참여자들은 “나는 헌법 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을 존중합니다. 낙태죄는 완전히 폐지되어야 합니다”라는 문구를 소리 내 읽은 뒤 음성을 녹음해 SNS에 올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 11일 낙태를 한 여성과 의료진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제269조 제1항과 제270조 제1항을 헌법 불합치로 결정했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잉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이 캠페인은 시작 이틀 만에 참가자가 500명을 넘어섰다. 여성의 당 관계자는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와 함께 생생한 목소리도 함께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 외 전국학생행진·유니브페미 등 청년단체들도 ’청년 페미니스트 100인의 낙태죄 촉구 선언’ 등을 준비 중이다. 
 

낙태죄 유지 목소리도 여전  

하지만 종교계는 물론 여성계 일부 단체에서도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행동하는프로라이프’ , ‘전국 174인 여성 교수 일동’ 등이다. 이들은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남용해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스스로를 자해하도록 조장하는 낙태 허용 입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다음달 16일까지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국회에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제출 할 예정이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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