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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문 앞서 돌아온 안나린 생애 첫 우승

중앙일보 2020.10.12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안나린이 최종 라운드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안나린은 다른 선수보다 늦은 중학교 2학년때 골프를 시작했다. 4년전 프로에 데뷔한 그는 93경기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 KLPGA]

안나린이 최종 라운드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안나린은 다른 선수보다 늦은 중학교 2학년때 골프를 시작했다. 4년전 프로에 데뷔한 그는 93경기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 KLPGA]

이불처럼 낮게 깔린 구름 아래로 바람은 잔잔했다. 기온도 포근했다. 그러나 2위에 10타 차로 앞선 채 최종라운드에 나선 안나린(24) 마음은 폭풍 속이었을 것이다.
 

오텍캐리어 챔피언십 2위와 4타 차
10타 차 선두였다가 2타 차로 쫓겨
제네시스 챔피언십은 김태훈 우승

안나린이 11일 세종시 세종필드골프장에서 열린 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오텍캐리어 챔피언십에서 천신만고 끝에 우승했다. 최종라운드는 이븐파, 하지만 합계 16언더파로, 2위 유해란(19)를 4타 차로 제쳤다. 프로 4년 차 안나린은 그렇게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전날 3라운드까지, 선수들은 딱딱하고 빠른 세종필드 그린에서 고생했다. 안나린은 악조건 속에서 혼자 펄펄 날았다. 2라운드에서 버디만 7개를 잡는 등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 3라운드에서도 16번 홀까지 버디 8개를 잡았다. 11타 차 선두였다. 17번 홀 보기로 완벽하던 흐름은 깨졌다. 그래도 최종라운드를 앞두고 10타 차 선두였다. KLPGA 투어 역대 최다 타수 역전승은 8타다. 2009년 유소연 등 세 차례였다. 10타는 절대 안전하지 않다. 2010년 한국오픈에서 양용은은 10타 앞선 노승열에 역전승했다.
 
10타 차가 매우 크지만, 그래서 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 큰 차이가 뒤집힌다면 오랫동안 남을 뉴스가 된다. 당사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1997년 마스터스에서 최종라운드를 9타 차 선두로 출발했다. 겉으로는 여유 있어 보였지만, 그는 “당시 매우 긴장했다”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회고했다. 뒤집어질 경우 ‘뒷심 약한 선수’라는 오명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우즈는 당시 12타 차로 우승했다. 같은 조 동반자인 코스탄티노 로카(이탈리아)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안나린은 우즈가 아니고, 상황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여자골프 세계 1위 고진영과 국내 일인자로 올라선 임희정과 같은 조였다. 안나린은 프로 데뷔 후 우승 경험이 없다. 우승 경쟁을 한 적조차 거의 없다. 상금 랭킹 40위권을 맴돌았다.
 
최종라운드가 열린 11일, 날이 흐려 그린은 부드러웠다. 핀은 대부분 어렵지 않은 곳에 있었다. 누군가 많은 타수를 줄인다면 안나린이 흔들릴 수 있다. 대회 조직위는 그런 드라마를 원했을 것이다. 추격의 주인공은 1m76㎝ 큰 키로 장타를 날리는 무서운 신예 유해란이었다. 그는 안나린 앞 조였는데, 줄 버디를 잡으며 맹렬하게 따라붙었다. 12번 홀에서 안나린이 보기를 했을 때, 둘의 타수 차는 5로 줄었다. 13번 홀에서 안나린은 티샷을 하고 나서 클럽을 놨다. 또다시 보기였다. 유해란은 14, 15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타수 차는 2로 줄었다.
 
버디 하나 없이 코너로 몰리던 안나린은 낭떠러지 바로 앞에서 오히려 침착해졌다. 14번 홀에서 내리막 3m 버디를 잡아 급한 불을 껐다. 파 3인 17번 홀에서 티샷을 핀 1m 옆에 붙이면서 사실상 우승을 확정했다. 안나린은 지옥 입구까지 갔다가 살아난 셈이다. 안나린은 “차분하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되더라. 파 5인 14번 홀을 앞두고 리더보드에서 유해란 선수가 쫓아온 것을 봤다. 꼭 버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홀에서 버디를 한 이후 주먹을 꽉 쥐었다”고 말했다. 이어 “승부사 기질이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고진영과 임희정이 7언더파 공동 3위다.
 
한편, 인천 잭 니클라우스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는 김태훈(35)이 합계 6언더파로 우승했다. 4타 차 선두로 출발한 김태훈은 한때 이재경(21)에 한 타 차까지 쫓기기도 했다. 하지만 13, 14번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 리드를 지켰다.
 
세종=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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