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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언급도 않고, 더 커진 신형 ICBM 꺼낸 김정은의 경고

중앙일보 2020.10.11 05: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 도중 재난을 이겨내자고 말하며 울컥한 듯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 도중 재난을 이겨내자고 말하며 울컥한 듯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새벽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미국을 한 번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을 향해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이 하루빨리 보건위기를 극복하고 북과 남이 다시 두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라고 말했다.

기존 화성-15형보다 훨씬 큰 신형 ICBM 공개
"자위적 정당방위수단 전쟁억제력 계속 강화"
美 고위 관리 "핵 우선 실망…협상 복귀하라"
전문가 "중국 5중 전회, 미국 대선 지켜본 뒤,
북·미 협상 통한 개방-중국 편승 사이에 결정"
신형 ICBM 과시는 '뜻대로 안 되면 도발' 경고

 
북·미관계는 미 대선 이후로 결정을 미루는 대신 최근 서해 한국 공무원 총살사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는 화답한 것으로 분석된다.
 

金, 美 대신 "북·남 다시 손잡는 날 기원"…남북관계 '관리' 메시지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이 자리를 빌려 지금 이 시각도 악성 바이러스에 의한 병마와 싸우는 전 세계 모든 이에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보내며 진심으로 건강과 행복과 웃음이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낸다"라며 남북대화 재개를 바란다는 뜻을 전한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8000자가 넘는 연설 전문에는 미국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 번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바이러스 병마와 싸우는 모든 이'라는 표현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퇴원한 트럼프 대통령도 언급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200자 원고지 한장 분량의 위로 전문을 보내 "나는 당신과 영부인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했다"며 "나는 당신과 영부인이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라고 전했다. 또 "당신은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크 내퍼 미 국무부 한·일담당 부차관보는 8일 "북한이 미국을 공개적으로 위로한 건 (2001년) 9·11 테러 이후 19년만"이라며 "김 위원장이 우리 지도자를 지켜보며 걱정한 건 좋은 신호"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美엔 화성-15형보다 큰 신형 ICBM 공개로 핵무력 과시, 압박

북한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기존 화성-15형보다 더 큰 신형 ICBM으로 추정되는 무기를 공개했다. 이 신형 ICBM 이동차량은 기존 바퀴(18개)보다 4개가 더 많은 좌우 11개씩 22개며, 뒷부분에는 직립 발사 장치가 결합돼 있다.[뉴스1]

북한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기존 화성-15형보다 더 큰 신형 ICBM으로 추정되는 무기를 공개했다. 이 신형 ICBM 이동차량은 기존 바퀴(18개)보다 4개가 더 많은 좌우 11개씩 22개며, 뒷부분에는 직립 발사 장치가 결합돼 있다.[뉴스1]

 
2018년 2월 8일 북한 건군절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15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운반차량 바퀴는 좌우 9개씩 모두 18개였다.[연합뉴스]

2018년 2월 8일 북한 건군절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15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운반차량 바퀴는 좌우 9개씩 모두 18개였다.[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하지만 북·미 대화 재개에 관해선 어떤 신호도 주지 않는 대신 핵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뜻은 분명히 밝혔다. "우리는 적대세력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가증되는 핵 위협을 포괄하는 위협적 행동들을 억제하고 통제 관리하기 위해 자위적 정당방위 수단으로서의 전쟁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전쟁 억제력이 결코 남용되거나 절대로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겠지만 만약 어떤 세력이든 우리를 겨냥해 군사력을 사용하려 한다면 나는 가장 강력한 공격적인 힘을 선제적으로 총동원하여 응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열병식에선 지난 2018년 2월 공개된 화성-15형 및 운반차량(18바퀴)보다 큰 신형으로 추정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운반차량(22바퀴)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 고위 관리는 이에 대해 "북한이 주민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금지된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우선하는 것을 계속 보게 돼 실망스럽다"며 "미국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협상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이번에 미국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건 미국과 협상을 통한 개방노선으로 나갈지, 중국에 편승할지 사이에서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0월 26~29일 중국공산당 19기 5중전회(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와 11월 3일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본 뒤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으로선 북·미 협상을 통한 개방노선이나 자력갱생노선 모두 실패한 상황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 재선 이후 협상의 여지를 남겨 놓으면서도 중국 경제에 편승하는 방안도 열어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에 여지를 보인 건 문 대통령이 계속 신호를 보내는 상황에서 향후 미·중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남한과 관계를 보조 축으로 유지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신범철 한국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김 위원장의 발언은 예년 수준이었지만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대미 압박 메시지는 분명히 전달했다"라고 평가했다. "22개 바퀴 이동 차량에 실린 신형 ICBM을 공개한 것은 미 대선 뒤 북·미 협상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언제든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다.
 
신 센터장은 "김 위원장은 남한을 향해 유화적 메시지를 발신하긴 했지만 남북관계 냉각기는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며 "북한이 대화에 복귀할 때는 자신들이 원하는 협상을 수용하라고 강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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