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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강대국 틈새 낀 ‘섬나라’ 폴란드가 주는 교훈

중앙일보 2020.10.10 08:00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62)

라우라는 폴란드 고급 호텔의 영업부장이다. 열정 없고 뜨뜻미지근한 남자친구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그만, 마피아 보스 마사모에게 납치당한다. 그는 365일 안에 나를 사랑하게 만들겠다, 원하지 않으면 절대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15일 만에 빠져든다. 2020년 개봉된 폴란드 영화 ‘365일’이다.
 
남자 주인공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핫한 이탈리아 배우 미켈레 모로네다. 앞태·뒤태·몸매·얼굴 모두 걸어 다니는 조각상이다. 넷플릭스 1위이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내용이 없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본 사람은 없다. ‘저런 남자한테 한번 당해봤으면…’ 한다는 감상 후기도 있다.
 
폴란드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끊임없는 분쟁과 전쟁으로 분할과 점령, 학살로 얼룩진 오랜 고통의 역사를 안고 있다. [사진 pxhere]

폴란드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끊임없는 분쟁과 전쟁으로 분할과 점령, 학살로 얼룩진 오랜 고통의 역사를 안고 있다. [사진 pxhere]

 
그 폴란드 영화, 가볍고 재미있게 보고 넘길 수 있다. 그러나 폴란드 역사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폴란드는 세계가 기억하는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꽃을 꺾기 위해 덤불 속 가시에 찔리듯, 사랑을 얻기 위해 내 영혼의 상처도 감내해야 한다는 프랑스 문인 조르주 상드. 그를 사랑한 피아노의 천재 쇼팽. 그의 음악은 가을 달빛을 느끼게 한다. 39세로 파리에서 요절해 심장만 고국 폴란드로 돌아가 바르샤바의 성당에 묻힌다.
 
근대 노동 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폴란드 그단스크 조선소. 그곳 전기기술자 출신으로 전국자유 노조 의장이 된 콧수염이 인상적인 레흐 바웬사. 1980년대 그 유명한 ‘솔리다리티(Solidarity, 자유노조)’ 운동으로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룬다. 이후 대통령에 선출되어 민주주의를 폴란드와 동구에 뿌리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고, 세계 각국 정부로부터 수백 개의 메달과 훈장을 받는다.
 
라듐을 발견하고,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여성 최초로 동시에 수상한 마리 퀴리. 당시 러시아 지배를 받던 폴란드에서는 여성이 대학에 갈 수 없어 프랑스 파리로 가 소르본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한다. 1895년 동료 과학자 피에르 퀴리가 그녀의 천재성을 바로 알아본다. 그와 결혼해 두 딸을 두었으며, 남편과 두 딸도 노벨상을 받는다. 그녀 덕분에 폴란드 화장품도 은근히 인기가 있다.
 
바티칸의 교황을 지낸 요한 바오로 2세. 1920년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태어났다. [중앙포토]

바티칸의 교황을 지낸 요한 바오로 2세. 1920년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태어났다. [중앙포토]

 
가톨릭의 수장, 바티칸의 교황을 지낸 요한 바오로 2세. 그는 1920년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육군 장교,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운명이었을까, 성년이 되기도 전에 부모 형 누나 등 가족 모두가 세상을 떠난다. 뛰어난 머리로 전 과목 ‘올 A’를 받고, 10개 국어에도 능통했다. 운동선수 연극배우 각본까지 천부적 재능을 지닌 인물이었다.
 
1978년 최초의 공산권 출신이자, 교황으로서는 매우 젊은 나이인 58세에 교황으로 선출된다. 여행을 많이 하며 포교한 교황이다. 한국도 두 번이나 방문해 “혹독한 시련에도 민족의 정통성을 꿋꿋이 지켜온 한국 역사가 모국 폴란드와 닮았다”고 하며 각별한 관심과 연민을 표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폴란드는 세계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유명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교황이 언급했듯이 폴란드는 한국과 비슷하게 이웃 강국들로부터 오랫동안 시달림을 당한 나라이다. 그들을 괴롭힌 나라는 서쪽 독일, 동으로 러시아다.
 
폴란드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끊임없는 분쟁과 전쟁으로 분할과 점령, 학살로 얼룩진 오랜 고통의 역사를 안고 있다. 1772∼1795년간 3차에 걸쳐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 3국에 의한 영토 분할 끝에 1795년 국가가 소멸해 1918년까지 3국의 지배를 받았다. 1918년 독립했으나 1939년 발발한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과 러시아는 비밀 약정을 맺어 폴란드를 분할한다. 1945년 다시 독립했으나 다른 동유럽 국가와 같이 구소련 주도의 공산당 정부 아래 자유를 박탈당하고 고통을 받았다. 다행히 최근 월드뱅크는 동유럽 국가 중 폴란드를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모범 국가로 평가했다.
 
지정학적으로 이웃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는 그들과 좋은 관계보다는 분쟁과 갈등의 역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지금 폴란드의 가장 긴밀한 우방은 먼 나라 초강대국 미국이다. 침략과 저주의 역사를 반복한 이웃 나라 독일과 러시아. 그래서일까, 먼 나라 미국을 국가 안보의 파트너로 삼아 그들을 견제하고 있다. 한국이 먼 나라 미국과 70년 우방으로 지낸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한 나라의 지리적 위치는 그 나라 안보에 결정적 요소다. 한국이 인접국인 중국과 일본이 싫어 태평양 한가운데로 옮겨 갈 수 있겠는가.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섬나라는 이웃 강국들과의 엄혹한 역사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항상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국제관계를 해나가야 한다. 특히 운전대를 잡은 지도층의 역사 인식과 국제관계에 대한 안목이 나라 운명을 좌우한다. 재능 많은 세계적 인물을 배출하고, 좋은 땅과 수려한 인물까지 자랑하는 폴란드. 그러나 그들이 겪은 기나긴 고통과 질곡의 역사. 폴란드가 주는 교훈, 절대 가볍지 않다.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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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영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필진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 부자는 어떤 생각과 철학, 생활방식, 자녀관을 갖고 있을까. 부를 이룬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고, 부를 오래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까. 재벌이 아닌 평범하지만 이웃집에서 만나볼 만한 진짜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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