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상]"자다깨니 불꽃 활활" 대출 장만한 집, 순식간에 잃었다

중앙일보 2020.10.10 05:00
“거실엔 연기가 자욱하고, 옷방엔 불꽃이 마구 튀고 있었다.”
 

울산 화재로 집 잃은 주민들 '망연자실'

지난 8일 오후 11시7분쯤 큰 화재가 발생한 울산 남구의 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이모(31·여)씨의 말이다. 이씨는 9일 임시 대피소로 마련된 인근 호텔에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이씨는 “자다가 깨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금방이라도 집 전체가 탈 것 같았다”며 화재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불이 났던 시각 남편과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밖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놀라서 깼다.  
 
 남편과 나가보니 거실엔 이미 연기가 자욱했다. 옷방에선 불꽃이 툭툭 튀며 타오르고 있었다. 이씨는 “순간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수건에 물을 적시려 했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8일 화재가 발생한 울산 남구의 주상복합 아파트 29층 집 내부. 거실에 연기가 자욱하다. [사진 독자]

지난 8일 화재가 발생한 울산 남구의 주상복합 아파트 29층 집 내부. 거실에 연기가 자욱하다. [사진 독자]

 당시 아파트 복도 등 전체적으로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는 과정에서 수조 물이 고갈돼 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이씨 부부의 설명이다. 결국 이씨는 밖으로 나가는 걸 포기하고 28층에 위치한 대피소를 떠올렸다. 이씨 집 창문과 인접해 있는 구조여서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28층 대피소 사람들을 향해 “거기 괜찮느냐. 그쪽으로 가려고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도 위험하다. 빨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렸다.  
 
 그사이 집안 내 연기는 더 자욱해졌다. 이씨 부부는 음료수를 꺼내 수건에 적셨고, 계단을 이용해 20개가 넘는 층을 내려갔다. 이씨의 남편은 “무조건 내려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복도엔 사람들의 아우성이 가득했다”고 했다.  
 
 이번 화재로 이씨 부부는 3개월 전에 대출을 끼고 산 집이 타버렸다고 했다. 이씨는 “하루 아침에 보금자리가 없어져 허망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울산의 33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중앙포토·연합뉴스

울산의 33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중앙포토·연합뉴스

 울산시는 이씨 부부를 포함해 주민 175명을 인근 호텔에서 지낼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호텔에서 만난 주민들도 긴박한 대피 상황을 떠올렸다. 
 
 18층에 사는 주민은 “연기가 나서 화재가 발생한 걸 알게 됐다. 밖으로 나갔는데 연기가 심해 아래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족들과 옥상으로 대피했는데 소방관들이 와서 구조해줬다. 너무나도 반갑고 감사했다”고 했다. 4층 주민도 “우리 집은 피해가 심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는건지 걱정이 돼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말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이날 오후 송철호 울산시장을 만나 피해 대책을 호소했다. 주민들은 “집에 두고 온 휴대폰과 차를 꺼낼 수 있도록 해 달라”, “화재 원인을 밝혀 달라”, “보험 등 문제가 궁금하다”는 등의 요청과 문의를 했다. 송 시장은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번에 불이 난 아파트는 지하 2층, 지상 33층 규모로 높이 113m인 주상복합아파트다. 화재 신고는 12층에서 처음 접수됐다. 이 아파트 12층 입주민은 119에 “아파트 밖 에어컨 실외기 쪽에서 불길이 보인다”고 신고했다.  
 
울산소방본부는 신고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불길은 강한 바람을 타고 아파트 33층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또 아파트 외벽에 가연성의 접착제가 있어 불이 좀처럼 꺼지질 않았다. 소방당국은 큰 불길을 2시간여 만에 잡았지만, 불이 내부로 옮겨붙는 등 진화와 재발화를 반복하다가 다음날 오후 2시50분에야 완전 진화됐다.

 
이번 화재로 93명이 연기 흡입과 찰과상 등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울산경찰청은 9일 오후 4시 경찰 과학수사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함께 현장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경찰은 “화재 원인과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았던 이유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울산=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