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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일~선거인단 투표일 사이, 당선인 유고 땐 연방대법원에 공 넘어가

중앙선데이 2020.10.10 00:48 706호 2면 지면보기

미 대선 D-24

재선에 도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지난 1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 대통령·대선후보·당선인의 유고 사태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에선 1776년 건국 이래 244년 동안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등 대통령 유고 사태가 몇 차례 있었지만 당선인이 유고된 경우는 없었다.  
 

선거인단 간선제 미 대선 약점
유고시 투표 대상 변경 기준 없어
소송 가면 연방대법원서 결정

당선인 사망하면 부통령이 승계
선거인단 투표 직전 유고 때는
전례·관련 법률도 없어 대혼란

다음달 3일 대선을 앞둔 미국은 대선후보나 당선인의 돌발적인 유고 사태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AP·로이터 통신과 CNN 등 미국 매체들의 보도와 수정헌법 조항 등을 바탕으로 궁금증을 풀어본다.
 
우선, 미국에선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질병 등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에는 부통령이 승계 1순위다. 미 헌법 제2조에 ‘부통령은 대통령이 직무를 계속 수행할 수 없을 경우 이를 대신한다’고 명시돼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마취가 필요한 수술을 받을 당시 부통령이 한시적으로 직무를 대행한 적이 있다. 1967년 만든 수정헌법 25조도 대통령 유고 시 승계의 원칙과 절차를 더욱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 부통령마저 유고되면 어떻게 될까. 하원의장, 상원 임시의장, 국무장관, 재무장관, 국방장관, 법무장관, 내무장관, 농무장관, 상무장관 등의 순이다. 부통령은 형식적으로 상원의장도 맡는데, 실질적으로는 상원에서 가장 연장자인 임시의장이 업무를 수행한다. 이 때문에 상원 임시의장이 부통령과 하원의장 다음으로 승계 순위 3위다. 현재 하원의장은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고, 상원 임시의장은 공화당의 척 그래슬리다.  
 
미국은 1792년·1868년·1886년·1947년 등 네 차례에 걸친 법률 제정과 개정으로 현재와 같은 승계 순위를 정했다. 대통령에 권한과 책임이 집중된 대통령 중심제인 만큼 만일의 경우 발생할 권력 공백에 대비해 꼼꼼하게 제도를 만들었다.
 
문제는 대선 과정에서 후보나 당선인에게 유고 사태가 발생한 경우다. 올해 미국 대선은 다음달 3일 치러지며 주별로 선출된 선거인단은 12월 14일 모여 형식적인 투표로 당선인을 공식 결정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선출된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한다.
 
만일 다음달 3일 대선에서 승리하고 12월 14일 선거인단 투표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된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취임 이전에 유고 사태를 맞는다면 어떻게 될까. 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 된다. 1933년 만든 수정헌법 제20조 제3절은 “차기 대통령 당선인이 사망한 경우에는 차기 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한다”고 돼 있다.
 
대선일 전에 대통령 후보가 유고될 경우 해당 정당에서 새 후보를 정하면 된다. 시간이 급하면 복잡한 과정과 절차를 생략하고 부통령 후보에게 대통령 후보를 승계시켜 대선을 치르는 게 해법일 것이다. 대통령 후보만 정하면 부통령 후보는 어차피 남은 선거 기간이나 당선인 또는 대통령이 된 뒤에 지명하면 되니 문제될 게 없다.
 
대선 일자를 조절하자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 그리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자리를 놓고 정당끼리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가능한 제안이다. 코로나19로 전국이 혼란스럽고 후보들 건강도 위협받는 상황이니 그럴 수도 있어 보인다. 이는 의회가 결정할 수 있는데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도, 공화당이 지배하는 상원도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선거일을 연기한다고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선일인 다음달 3일부터 선거인단이 확정 투표로 차기 당선인을 정하는 12월 14일 사이에 당선인이 유고된 경우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원래 지지하겠다고 했던 후보가 유고가 된 상황에서 선거인단이 해당 정당의 부통령 후보만 지지해야 하는지, 다른 정당 후보를 집단 또는 개인적으로 교차 지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 때문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
 
예전에도 선거인단이 마음을 바꿔 원래 찍겠다고 했던 후보가 아닌 다른 인물을 지지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다. 이럴 경우에는 선거인단의 교차 투표를 인정해 왔다. 어차피 숫자는 적었고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도 없었다. 만일 후보가 얻은 선거인단 숫자가 동수일 경우엔 새로 구성된 연방하원에서 투표로 새 대통령을 최종 결정하도록 돼 있어 문제는 없다.
 
하지만 12월 14일의 선거인단 투표 직전에 후보가 유고 사태를 겪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금까지 전례도 없고 관련 법률도 없다. 그야말로 예상 범위를 넘어선 최악의 상황이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정당 간 논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권력을 놓고 누구도 쉽사리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소송으로 이어지고 연방대법원이 최종 결정할 수밖에 없다.
  
# 대선 결과에 혼란이 생길 경우에도 연방대법원에서최종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수정헌법 제20조는 ‘대통령의 임기 시작일까지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거나, 대통령 당선인이 자격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 당선인이 자격을 갖출 수 있을 때까지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의회는 대통령 당선자와 부통령 당선자가 함께 그 자격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어떤 사람이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거나, 어떤 방법으로 그 직무 수행자를 선출할 것인지를 법률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의회가 법률을 제정하겠지만 그 내용을 놓고 자칫 소송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권력을 앞에 두고 어느 쪽도 쉽사리 양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소송 사태가 빚어지고 최종적으로 연방대법원이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벌써 우편투표에 불만을 품고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자칫 우편투표 개표가 지연돼 투표 결과가 혼란스럽거나 한쪽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의 장례 절차가 끝나기도 전인 지난달 26일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후임으로 지명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공화당도 청문회 일정을 잡는 등 다음달 3일 대선 전에 인준 절차에 마칠 태세다. 하지만 민주당은 차기 대통령이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연방대법관을 인준하는 연방 상원은 현재 100명 중 53명이 공화당 소속이고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이 47명이어서 통과가 확실시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는 사태를 겪었어도 이 절차는 중단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미국 대통령이 유권자의 투표 결과가 아닌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결정된다면 그 권위는 또다시 무너지게 될 것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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