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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위한 기본권 제한, 명확한 기준·원칙 없어 불신 키워

중앙선데이 2020.10.10 00:44 706호 4면 지면보기

기본권·방역 갈등

한글날인 9일에는 개천절과 달리 차벽으로 광화문 광장을 둘러싸지는 않았다. 대신 철제 펜스를 세우고 일정 간격으로 경찰을 배치해 광장 진입을 통제했다. [연합뉴스]

한글날인 9일에는 개천절과 달리 차벽으로 광화문 광장을 둘러싸지는 않았다. 대신 철제 펜스를 세우고 일정 간격으로 경찰을 배치해 광장 진입을 통제했다. [연합뉴스]

광화문 광장은 늘 뜨거운 곳이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시민들은 시청앞에서 광화문까지 거리에 800만명이 모여 길거리 응원을 펼쳤다. 버스로 시위대를 막은 ‘차벽’도 이 해에 등장했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으로 그 해 겨울 시위가 격화되자 노무현 정부는 미국 대사관 앞에 경찰버스를 둘러쳤다.
 

한글날 광화문 집회 차벽 갈등
공익 위해 제한 목소리 있지만
오락가락 정책에 시민들 안 믿어

“방역도 결국 기본권” 기준 필요
미·유럽서도 마스크 착용 충돌
일관성 있는 장기 전략 마련할 때

본격적인 ‘산성’ 논란은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서 시작됐다.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로 향하는 시위대를 막기 위해 세종로에 컨테이너를 용접해 세웠다. 시민들은 이를 ‘명박산성’이라고 부르며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기를 거부한 상징”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행동자유권을 침해했다”며 경찰 차벽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논란은 2015년 재연됐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추모행사를 차벽을 세우고 물대포까지 동원해 막아냈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것도 이 때다. 대법원은 차벽 외에 다른 수단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경찰의 차벽 설치가 합법이라고 2017년 판결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시위대의 청와대 진입을 막기 위해 경찰이 광화문 광장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중앙포토]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시위대의 청와대 진입을 막기 위해 경찰이 광화문 광장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중앙포토]

광화문 광장이 또다시 산성 논란에 휩싸였다. 문재인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내세워 보수단체의 개천절 한글날 집회를 금지하고 차벽을 세웠다. 보수단체에서는 “재인산성이 명박산성과 다를게 뭐냐”고 반발했다. 박종문 헌재 사무처장은 지난 8일 “차벽이 집회의 자유를 막는 것이라면 그것을 통해 달성되는 공익이 무엇인지 비교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준철 서울경찰청 경비국장은 “광화문 집회 참석자의 코로나19 양성률이 일반 시민의 90배에 달했다”며 “대규모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방역을 이유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느냐는 논란에서 차벽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매장 이용이 제한되자 점주들은 “커피 매장은 제한하고 제과점은 허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발했다. 또 정부는 10인 이상 집회 시위를 막고 여행 자제 권고까지 내렸지만 감염 위험이 높은 놀이공원, 대형 쇼핑몰 등에 대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한글날이자 연휴가 시작되는 9일 전국의 놀이공원과 산 등은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일부에선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모습도 발견됐다.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는 코끼리 열차를 타려는 시민 300여명이 거리를 1m도 떼지 않은채 다닥다닥 붙어 줄을 섰다.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로 가는 길은 주차장으로 변했고, 북한산과 성남 불곡산 등에는 단풍철을 앞두고 가을 산행에 나선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마스크를 벗고 산행하는 일부 시민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차벽을 설치한 모습. [중앙포토]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차벽을 설치한 모습. [중앙포토]

기본권과 방역의 충돌은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다. 고문현 숭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제10조에 국가는 국민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는데 이를 위해선 당장의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기본권 제한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 모호한 것이 문제다. 진보를 내세우는 정부가 민주노총 집회나 서울시장 추모행사는 괜찮고 보수집회는 안된다는 식으로 공권력을 그때 그때 땜질식으로 행사하고, 해외 여행을 자제하라면서 장관의 가족은 외국행 비행기를 탄다. 고 교수는 “진보 가치의 꽃인 기본권 인권 이런 얘기를 하면 이단아로 몬다”며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지적하면 보수주의자 혹은 바이러스에 둔감한 사람으로 낙인찍는 시선을 느끼면서 무력감마저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방역을 둘러싼 이같은 갈등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에서는 집회 금지가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 자체를 반대하는 시위까지 벌어진다. 지난 8월 말 독일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 의무 착용 등의 조치를 취하자 1만8000명이 베를린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반대 시위를 벌였다. 지난달 26일에는 영국 런던 도심에서 술집 영업 제한과 6인 이상 모임 금지 등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마스크는 재갈’, ‘새로운 독재 반대’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최근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와 프랑스 마르세이유 등에서 코로나 봉쇄 반대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지난 7일까지 600만명이 감염돼 23만명이 숨졌다. 그런데도 방역 반대 의견이 적지 않은 것은 국가가 개인의 행동을 간섭하는 전체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있다. 정부의 미숙한 대응도 문제다. 프랑스 싱크탱크인 ‘장 조레스 재단’은 “프랑스의 경우 코로나 초기에 ‘마스크는 효과가 없고,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다가 갑자기 의무화하니 시민들이 불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얼굴을 가리는 것에 대한 문화적인 금기도 원인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공공장소에서 차도르를 포함한 복면을 쓰는 것을 금지했고, 독일 스페인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도 집회시 복면을 금지한다. 미국에서 복면은 KKK단 같은 인종차별집단의 상징이다. 유럽 시위 현장에서 ‘마스크는 시민을 노예로 만드는 재갈’이라는 구호가 나오는 이유다. 기본권과 방역, 그리고 문화적인 배경이 뒤섞여 풀기 어려운 갈등으로 발전한 셈이다.
 
하루 수만명씩 감염자가 늘고 있는 미국·유럽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방역은 성공적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9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가 54명이라고 발표했다. 누적 환자는 2만4476명, 사망자는 428명이다. 신규 확진자는 지난달 29일 38명을 기록한 이후 열흘만에 가장 적다. 지역발생 확진자는 전날 60명에서 22명이 줄었다. 지역발생 50명 미만은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에 해당한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추석 연휴 국민들의 이동이 늘었지만 국내 환자가 많이 증가하는 양상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전반적인 확진자 수 자체는 점차 감소하며 안정화 추세로 접어들고 있지 않은가 조심스럽게 판단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확진자 1명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감염 재생산지수’가 1 아래로 떨어진 점과 감염경로 불분명 확진자 비율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점이 고무적이다. 손영래 중수본 전략기획반장은 "그간 강화된 거리두기로 서민 경제상에 피해가 크고, 형평성 논란도 있었다”며 "이달 말 또는 다음달 초까지 획일적인 중단·폐쇄보다는 단계별로 방역수칙의 강도를 강화하며 자율적인 참여로 감염 전파를 차단하는 쪽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논의중”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참에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희영 분당서울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인권침해 요소가 개선되지 않으면 방역이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확진자로 낙인찍고 손가락질하면 두려워서 더 숨게 된다는 것이다. 개신교나 보수 집회 등에 책임을 묻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사실상 1년 중 3분의 2가 코로나 ‘심각’ 단계로 일상화된 상황”이라며 "지금까지 하루 하루 코로나 대응에 바빴다면 겨울에 접어드는 지금 장기 전략을 짜야하고, 그 전략의 우선 순위 중 하나가 기본권·인권 보호 문제”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조건 걸고 집회 허용…깐깐해진 법원
코로나 사태 속에서 집회 금지냐, 허용이냐를 놓고 법원의 고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공공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국민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구현도 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5일 보수 단체의 광화문 집회가 코로나19의 대규모 확산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집회를 허용한 판사는 공격 대상이 됐다. 당시 사건을 나눠 심리한 4개의 재판부 중 한 재판부만 집회 금지 집행 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 재판부는 집회를 일괄적·전면적으로 금지한 처분이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후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조재연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국회에 출석해 “충돌하는 가치 속에서 재판부가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내린 (허용) 결정”이라고 했다.
 
코로나 확산 여파에 따른 비판 여론을 의식해서였을까 개천절 집회 때는 법원이 더 엄격한 조건을 내세웠다. ‘200대 차량집회’ 신고를 했던 보수단체가 소규모 차량집회를 서울 곳곳에서 열겠다고 밝혔다. 이에 법원은 차량 9대가 참여하는 차량 집회만을 조건부 허가했다. 기본권 제약 우려를 감안해 까다로운 조건을 앞세운 것이다. 일각에서는 방역규제와 기본권 보장 사이에서 법원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9일 한글날 집회에 대해서도 법원이 도심 집회를 허용하지 않았다.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인근에서 각각 1천명이 모이는 집회가 열릴 경우 “코로나 예방과 확산 방지라는 공익을 실현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이 야기될 수 있고,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명백한 위협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날 법원은 다른 단체들이 낸 집행정치 신청도 모두 기각했다.
 
서울행정법원 출신 한 변호사는 “기본권의 제약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법관의 기본 입장일 수밖에 없다”면서 “코로나 사태를 이유로 모든 형태의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했다. 이어 “기본권 보장이라는 대원칙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법원의 고심 외에 집회 주최 측도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역 준수 계획을 제시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창우·채혜선·김나윤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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