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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더 출신 적응력 지존…‘골드만 제국’ 명성 높였다

중앙선데이 2020.10.10 00:20 706호 16면 지면보기

[월스트리트 리더십] 골드만삭스 12년 이끈 로이드 블랭크페인 전 회장 

트레이더 출신인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골드만삭스를 12년 동안 이끌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레이더 출신인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골드만삭스를 12년 동안 이끌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의 금융회사 중 골드만삭스만큼 칭송과 비난이 동시에 쏟아지는 회사도 드물다. 일찌감치 전통 투자은행(IB)에 리스크 감수 역량을 더해 투자은행의 새 지평을 열었고, 금융위기도 비껴간 덕에 “역시 골드만삭스”라는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반면 그 와중에 불거진 윤리성에 대한 의구심은 화려한 성공에 가려진 어두운 이면으로 지목되곤 했다. 이러니 골드만삭스의 일거수일투족에 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다. 오죽하면 언론 기사 제목에 ‘골드만삭스’가 보이면 조회수가 급증할 정도다.
 

골드만에 트레이딩 DNA 심은 주역
최대 수익 엔진 FICC 사업 이끌어

“역사의 흐름은 반복된다” 신념
선제적 대응으로 금융위기 극복

몸 낮추고 비판 빠르게 받아들여
추락하던 브랜드 평판 반전 이뤄

이렇게 ‘이목을 끄는’ 회사를 12년간 이끈 인물이 로이드 블랭크페인 전 회장이다. 골드만삭스의 150년 역사를 통틀어 두 번째로 긴 재임 기간이다. 그런데 그가 특별한 건 장기 집권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입사 이후 그의 개인적 성장이 회사의 성장과 놀라울 정도로 궤적을 같이 했다는 데 있다. 게다가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블랙스완’급 위기를 정면돌파한 인물이기도 하다. 금융시장과 리스크를 대하는 특유의 관점과 리더십으로 골드만삭스가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을 수 있도록 이끈 것이다.
  
회사 합병으로 골드만에 극적 입성
 
블랭크페인은 트레이더 출신이다. 상품과 외환 트레이딩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성공 사다리를 올랐다. 블랭크페인의 골드만삭스 입성은 매우 극적이었다. 1981년, 변호사 생활을 접고 지원한 골드만삭스 등 월가 투자은행에서 모두 퇴짜를 맞은 게 그 시작이었다. 그때 궁여지책으로 들어간 회사가 농산물·귀금속과 같은 상품 트레이딩 전문 금융회사 ‘제이애런’이었다. 그런 블랭크페인에게 큰 행운이 찾아온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같은 해, 골드만삭스가 제이애런을 인수하면서 골드만삭스의 울타리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Blankfein)
전 골드만삭스 회장 겸 CEO
전 도노반, 리저, 뉴턴 & 어바인 변호사
출생연도 1954년(66세)
최종학력 하버드대학 로스쿨(1978년 졸업)
개인자산 11억 달러(2015년, 블룸버그)
제이애런 인수는 골드만삭스 역사에서 최대의 변곡점으로 평가 받는다. 골드만삭스의 트레이딩은 제이애런을 품고서야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결국, 제이애런의 트레이딩 문화와 인프라가 현재 골드만삭스 핵심 경쟁력의 원천인 셈이고, 블랭크페인은 제이애런의 트레이딩 DNA를 골드만삭스의 것으로 흡수하고 발전시킨 주역이었다.
 
블랭크페인의 최대 업적은 1997년 ‘FICC(채권·외환·상품)’ 사업부를 출범시키고 회사의 최대 수익 엔진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여기엔 이전까지 분리되어 있던 채권·외환·상품 사업을 하나의 사업부로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주효했다. 골드만삭스 FICC가 연기금·헤지펀드 등 기관투자자의 투자 니즈를 한 곳에서 충족시키는 국제 금융시장의 ‘트레이딩 허브’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신생 FICC를 이끌며 크게 인정받은 블랭크페인은 주식 사업까지 접수해 트레이딩의 총책임자로 올라섰다. 그 후에도 FICC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여기에 주식까지 가세하자 2003년에는 회사 전체 수익의 62%를 블랭크페인 휘하 트레이더들이 벌어들일 정도였다. 그 결과 2006년 블랭크페인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처럼 트레이더로 뼈가 굵은 인물이다 보니 블랭크페인의 경영 스타일에도 트레이더의 성향이 다분히 녹아있다. 회장 취임 후 발생한 금융위기에서 블랭크페인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 데도 이런 성향이 큰 영향을 미쳤다.
 
첫째가 ‘겸손’이다. 블랭크페인은 만사에 확신과 자신감을 경계하고 불안감과 두려움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이런 마음가짐을 자신이 실제로 겪는 ‘가면 증후군’으로 설명한다.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실제보다 과대 포장되어 남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으로 이어지고, 이는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배우려는 동기로 연결된다고 한다.
 
둘째는 ‘적응력’이다. 블랭크페인은 “최고 트레이더의 조건은 높은 예측 적중도가 아니라 빠른 적응력”이라고 말한다. 정답률이 아닌 빠르게 바로 잡는 능력을 트레이더의 최고 덕목으로 여기는 것이다. 동시에 “내가 골드만삭스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황과 사람에 대한 빠른 적응력”이라며 자신의 트레이딩 성공 방정식이 골드만삭스 성공 방정식과 일치함을 강조한다. 결국, 시장 상황이 바뀌었을 때 빠른 속도로 방향을 재설정하는 능력이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셋째는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는 자세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블랭크페인이 역사를 대하는 관점은 그가 평소 즐겨 인용하는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경구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에서 잘 드러난다. 역사에는 반복되는 주기가 있고, 역사로부터 현재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혜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이번은 다르다’라는 생각이다. 주기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라는 믿음에 대한 경계다. 이 문제는 금융위기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됐지만, 역사의 교훈을 명심한 블랭크페인은 이를 피할 수 있었다.
 
금융위기라는 급한 불을 끄자마자 또 다른 위기가 골드만삭스를 덮쳤다. 바로 ‘평판 위기’였다. 선제적 대응으로 금융위기를 극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고객에게는 모기지 파생상품을 매수하도록 권유한 것이 결국 리스크를 떠넘기려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산 것이다. 2010년 회사가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게 되자 블랭크페인은 상황의 급변을 간파하고 신속하게 위기관리 모드에 돌입했다.
  
만사에 확신 경계하고 겸손함 유지
 
블랭크페인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트레이딩으로 대표되는 리스크 감수를 이끈 주인공으로서 그동안 단기적 수익 추구로 약화된 고객 중심 문화의 회복에 집중했다. 그 출발점으로 컨설팅사에 의뢰해 주요 고객 200개사를 인터뷰하고 개선 목표를 세워 실행에 옮겼다. 직원들에겐 “눈과 귀를 크게 열고 회사를 감시하는 경찰 역할을 하라”고 하며 평판 회복을 위한 강한 의지를 전달했다. 다시 한 번 겸손하게 고객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상황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것이다.
 
블랭크페인의 적극적 대응은 성과를 거뒀다. 기업의 평판 척도로 쓰이는 ‘직장 선호도’를 조사하는 YouGov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말 -30으로 떨어졌던 골드만삭스에 대한 선호도는 2015년 플러스 영역에 진입했다. 그 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공격 대상이 되며 하락했지만, 2018년부터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 1월, 블랭크페인은 파란만장했던 골드만삭스 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자신의 승계 계획에 따라 후임자 데이비드 솔로몬에게 회장과 CEO 자리를 넘기면서다. 퇴임 후 그는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골드만삭스의 특별함을 지켜낸 게 가장 자랑스럽다”고 감회를 밝혔다.
 
골드만삭스(The Goldman Sachs Group, Inc.)
설립 연도 1869년
설립자 마르쿠스 골드만, 사무엘 삭스
업종 금융서비스업 (투자은행)
자산 규모 9920억 달러(2019년 12월 기준)
직원 수 3만8300명(2019년 12월 기준)
디지털 창구 ‘마르쿠스’ 출범, 소매금융으로 영역 넓혀
블랭크페인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기존 사업모델을 유지했다. 특히 업계 전체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FICC 사업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변화된 사업 환경은 녹록하지 않았다. 강화된 ‘규제’로 골드만삭스의 주특기인 리스크 감수 여건이 악화되고, 거래의 ‘전자화’로 마진이 축소됐다. 이는 결국 FICC 수익의 급감을 초래했다.
 
그러자 블랭크페인이 꺼내 든 카드가 ‘디지털 금융’이었다. 일찍이 “골드만삭스는 기술 회사”라는 화두를 던지며 변화의 물결에 올라탄 것이다. 먼저 기관투자자에게 자본과 리스크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플랫폼 ‘마르퀴(Marquee)’를 구축했다. FICC 사업을 디지털화한 셈이다. 다음으론 새로운 사업 영역인 소매금융에서 예금·대출 플랫폼 ‘마르쿠스(Marcus)’를 출범시켰다. 마르쿠스는 일반 은행에서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지점 창구와 같은 존재다. 가장 단순한 예금·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며 개인 고객과 관계를 형성한 후 이를 다른 금융 서비스로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평판 리스크를 줄이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부자와 거대 기업만 상대하는 투자은행이 아닌 일반인도 접근할 수 있는 친숙한 은행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최정혁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jung-hyuck.choy@sejong.ac.kr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 유비에스, 크레디트 스위스, 씨티그룹 FICC(Fixed Income, Currencies and Commodities, 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세종대 경영학부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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