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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 정책, 규제가 만능은 아니다

중앙선데이 2020.10.10 00:20 706호 20면 지면보기

신준봉 전문기자의 이번 주 이 책

맹랑한 국어사전 탐방기

맹랑한 국어사전 탐방기

맹랑한 국어사전 탐방기
박일환 지음

언어습관 뜯어고치기 어려워
열린 태도로 현실 반영해야

한글날 맞춰 출간된 책 두 권
국립국어원의 변화 촉구

뿌리와이파리
 
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생명력
백낙청·임형택·
정승철·최경봉 지음
창비
 
한글의 우수성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한국인에게만 그런 게 아니다. 해외의 언어학 전문가들 가운데서도 한글 예찬론자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글이 세계 최고의 문자라는 ‘국뽕’ 의식은 문제겠지만 요즘 기준에 비춰도 혁신적인 문자체계라는 데 국내외 이견이 없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 문자를 500년 전에 만들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신비감이 증폭될 뿐이다.
 
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생명력

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생명력

이런 한글을 바탕으로 한 한국어 사용으로 눈을 돌리자. 우리는 한국어를 그동안 어떻게 사용해왔나. 지금은 과연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 소개하는 두 책은 각각 그런 점들을 살폈다. 책 제목에서 짐작이 되실 텐데, 『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생명력』은 과거를 돌아보고 그 위에서 한국어 사용의 미래를 내다본 책이다. 출판사 창비의 좌장격인 백낙청 명예편집인이 각각 한문학·사투리·사전 편찬 전문가인 세 명의 후배뻘 학자들과 7시간 대담한 기록이다. 타율적인 근대화와 일제 침략에 맞서는 방편의 하나로 추진된 1930년대의 ‘한글마춤법통일안’과 표준어 운동 등 규범화 노력,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고운말쓰기 혹은 국어순화를 강조한 결과 퇴행적인 어문민족주의로 흘렀던 70년대, 규범과 실제 사이에 괴리감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지금의 외래어표기법, 다원화·남북통일 등 장차 한국어의 과제 등을 차례로 알기 쉽게 정리했다. 따라 읽다 보면 책 제목대로 한국어가 통과해야 했던 역사의 굴곡이 실감 난다. 겉핥기식 교과서 공부에서는 알 수 없었던 생생함이 느껴진다. 한국어 선각자들이 위대해 보인다.
 
『맹랑한 국어사전 탐방기』는 당연히 현재 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한국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어…』의 대담자들에 비하면 『맹랑한…』의 저자 박일환씨는 상대적으로 재야 혹은 비강단이라고 해야 할 텐데 문제의식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박씨는 『미친 국어사전』 『국어사전 혼내는 책』을 낸 적이 있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그러니까 사전이다. 박씨는 우리 국어사전들이 ‘짝퉁’ 내지는 ‘유사’ 국어사전 수준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부실함의 정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라는 것이다. 다채롭고 명확해 보이는 영어사전류만 떠올려도 국어사전들이 문제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맹랑한…』은 국어사전의 부실 사례로 가득하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웹사전인 ‘우리말샘’, 부실함이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문제가 없지 않은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을 가차 없이 도마에 올린다.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문자로 사용한다. 2018년 한글날 기념식에 참가한 찌아찌아족 아이들의 모습. [중앙포토]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문자로 사용한다. 2018년 한글날 기념식에 참가한 찌아찌아족 아이들의 모습. [중앙포토]

가령 청어나 꽁치를 차게 말린 과메기는 표준어가 아니다. 방언이다. 제주 해녀의 숨찬 소리인 숨비소리도 마찬가지. 표준어를 모아놓은 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stdict.korean.go.kr)에서 아예 검색되지 않는다. 표준어가 아니라는 얘기다.
 
봄볕·여름볕·가을볕·겨울볕, 이 네 단어의 띄어쓰기 문제에 이르면 저자의 분노가 이해된다. 봄볕·가을볕은 표준·고려대 사전 모두 합성어로 인정해 보이는 대로 붙여 쓰면 된다. 겨울볕은 ‘겨울 볕’으로 써야 한다. 여름볕은 고려대 사전은 ‘여름볕’, 표준대사전은 ‘여름 볕’으로 쓰도록 하고 있다.
 
저자 박씨는 사전 편찬자들은 언중들이 배워서 쓰도록 모범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언중들이 쓰는 말을 찾아서 표기와 뜻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게 존재목적이라고 단언한다. 언중은 논리를 따지기보다 편리함을 중시한다. 규범을 따져 언어습관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현실에 열린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공시적인 언어관습을 점검한 『맹랑한…』과, 언어규범과 관습 간의 길항관계를 통시적으로 살핀 『한국어…』가 뚜렷하게 겹치는 지점도 이런 대목에서다.
 
『한국어…』 대담자의 한 사람인 원광대 국문과 최경봉 교수는 국가가 아무리 규범으로 언어를 통제하려 해도 다양한 방식으로 쓰고 말하려는 사람들의 욕구를 막을 수는 없다고 진단한다. 표준어의 지배력을 따지는 대목에서다. 또 다른 대담자인 성균관대 임형택 명예교수 역시 전국적 소통을 위해 표준말이 필요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언어 다양성을 기본적으로 옹호하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어 정책이 경직됐다는 비판이다.
 
신준봉 전문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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