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혁 형은 해피 바이러스…경기장 골든타임 알리고 떠나

중앙선데이 2020.10.10 00:20 706호 25면 지면보기

[죽은 철인의 사회] ‘돌아오지 않는 2루 주자’ 임수혁

고려대 시절 ‘환상의 배터리’로 불린 투수 이상훈과 포수 임수혁. [중앙포토]

고려대 시절 ‘환상의 배터리’로 불린 투수 이상훈과 포수 임수혁. [중앙포토]

지난 6월 25일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염경엽 감독이 쓰러졌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더블헤더 1차전, 2회 초 덕아웃에 서 있던 염 감독은 왼쪽으로 스르르 넘어졌다. 인천 길병원으로 이송된 염 감독은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다. 그는 9월 첫 주에 팀으로 돌아왔지만 5일 만에 박경완 수석코치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야생마’ 이상훈의 추억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초동 대처 잘못으로 식물인간
9년 10개월 버티다 하늘나라로

방황 잡아준 인성·실력 겸비 선배
문병 가면 껌벅, 눈으로 병상 대화
가족과 법정 다툼 LG·롯데 아쉬워

염 감독이 쓰러지는 모습은 기억에서 사라져 가던 20년 전 한 선수를 불러냈다. ‘돌아오지 않는 2루 주자’ 임수혁(1969∼2010)이다. 한 방이 있는 공격형 포수로 이름을 날리던 임수혁은 2000년 4월 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LG의 경기 도중 2루에 있다가 갑자기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병원으로 이송된 임수혁은 호흡과 맥박을 되찾았지만 사고 직후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됨으로써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식물인간으로 병상에서 지냈다. 가족과 동료, 팬들의 정성과 온정으로 9년 10개월을 버틴 임수혁은 2010년 2월 7일 아침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박정태 “시즌 뒤 부정맥 수술하기로 했는데”
 
임수혁은 장타력도 뛰어났지만 야수들에게 믿음을 주는 포수이기도 했다. [중앙포토]

임수혁은 장타력도 뛰어났지만 야수들에게 믿음을 주는 포수이기도 했다. [중앙포토]

임수혁을 추억하기 위한 안내자로서 ‘야생마’ 이상훈(49·MBC 해설위원)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1년 터울인 둘은 강남중-서울고-고려대에서 배터리(투수와 포수)로 호흡을 맞췄고, 친형제 이상의 우애를 나눴다. 은퇴 후 로커로 변신한 이상훈은 2010년 8월 임수혁 추모 공연을 열고 수익금을 고인의 가족에게 전달했다.
 
임수혁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야구 선배라기보다는 동네 형 같은 사람이죠. 형이 병상에 있을 땐 눈으로 대화를 했어요. ‘형 나 왔어’ 그러면 눈을 껌벅거려요. 아버님 어머님이 ‘수혁이가 이렇게 얘기한다’고 하면 제가 확인을 하죠. ‘이 얘기가 맞냐’고 하면 눈동자를 한번 껌벅입니다. 어떤 때는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요. 계속 눈을 뜨고 있어서인지, 어느 순간에 답답함이나 어떤 감정을 느껴서인지는 모르겠어요.”
 
둘의 처음 만남은 언제였나요.
“제가 강남중 1학년 들어갔을 때죠. 저는 리틀야구 출신이라 친구도 없고 학교 야구부 규율이나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고생을 좀 했어요. 겨울에 목장갑을 끼고 훈련을 하다가 끝날 때 빙 둘러서서 감독님께 거수경례를 하는데 제가 장갑을 안 벗고 경례를 했어요. 그게 당시에는 큰일 날 일이었나 봐요. 다 끝나고 형이 저를 부르더니 ‘상훈아, 경례할 때는 장갑 벗고 하는 거야’라고 알려줬어요. 순간 마음이 되게 따뜻해지는 거 있죠. 괜히 의지하고 싶고 저 형만 보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형은 가만히 있어도 해피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사람이었어요.”
 
선수로서 임수혁은 어땠나요.
“엄청난 수퍼 스타는 아니었지만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선수였고, 늘 주전을 놓치지 않았죠. 포수로서 투수와 야수들을 아우르는 존재감이 있었어요. 땅볼 치고 아웃이 되어 들어와도 진짜 격려받을 사람, 홈런 치면 진정으로 환호하고 축하해 주고 싶은 사람이었죠. 저도 수혁이 형한테 안타도 많이 맞고 홈런도 맞아봤어요. 마운드에서는 화가 나지만 끝나고는 진심으로 축하해 줬죠. 지금 기억나는 건  95년 플레이오프 1차전 잠실에서 홈런 맞은 겁니다.” 
 
도움도 많이 받았다면서요.
“고대 들어가서 방황하고 숙소 이탈하고 할 때 수혁이 형이 절 잡아줬어요. 제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걸 잘 아니까요. 해외 전지훈련 땐 과자나 운동복 살 돈을 좀 가져가는데 전 돈이 없었어요. 대만 전지훈련 가기 전에 형이 부르더니 ‘내가 지금 너한테 무슨 말 할 텐데 너 나 때리지 마라’ 이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돈 봉투를 주는 겁니다. 제가 자존심 상해서 ‘씨바, 이거 뭐 하는 거요’ 이럴까 봐 미리 마음을 써 준 거죠. 그 돈 정말 감사히 받아서 잘 썼습니다.”
 
은퇴 후 로커로 변신한 이상훈이 2010년 8월 임수혁 추모 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사진 이상훈]

은퇴 후 로커로 변신한 이상훈이 2010년 8월 임수혁 추모 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사진 이상훈]

이 대목에서 또 한 명의 증인을 모신다. 사고 당시 롯데 주장이었던 ‘악바리’ 박정태(51)다.  
 
한국클럽야구연맹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수혁이는 한마디로 분위기 메이커였어요. 그렇게 웃기는 애는 처음 봤어요. 방망이(타격)가 강했을 뿐만 아니라 포수로서 좋은 자질을 많이 갖고 있었죠. 전성기를 향해 가는 중이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박 이사장은 당시 상황도 설명했다. “원래 심장이 안 좋고 부정맥이 있어서 시즌 끝나고 수술하기로 했거든요. 유격수 땅볼 치고 전력질주해 1루에 살았는데, 다음 타자 초구에 히트앤드런 사인이 나서 숨 돌릴 틈도 없이 2루로 질주한 뒤 쓰러진 겁니다. 바로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는데 운동장에서 20분 넘게 시간을 보냈어요. 주위 사람들이 한 일이란 게 신발 벗기고 혁대 푸는 것뿐이었죠. 심장이 멈췄으니까 뇌가 급속도로 상했는데 워낙 건강하니까 10년을 버틴 겁니다.”
 
이상훈 위원은 “사고야 그때 상황이 그랬다 치더라도 사고 이후에 롯데와 LG 구단이 보여준 태도에 수혁이 형을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상했죠. 물론 처음 당하는 일이라 선례가 없어서 그랬겠지만 가족과 법정까지 갔어야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쉬워요”라고 말했다.
  
흔쾌히 ‘강매’ 당한 콘서트 손님들
 
사고 당시 쓰러진 임수혁. [중앙포토]

사고 당시 쓰러진 임수혁. [중앙포토]

사고 이후 야구계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의 선수와 팬들도 임수혁 돕기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임수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 갔고 엄청난 병원비는 가족의 어깨를 짓눌렀다. 버티다 못한 가족은 2003년 롯데와 LG 구단을 상대로 8억원의 민사 조정신청을 냈다. 법원은 두 구단에 4억2600만원을 배상금으로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지만 LG는 이의신청을 냈다. 결국 가족과 두 구단은 3억3000만원의 보상금에 합의했다.
 
임수혁 추모 콘서트도 여셨죠.
“제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었죠. 록 밴드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홍대 근처 롤링홀이라는 데서 했는데 그쪽에서 대관료도 깎아주셨어요. 주위 분들에게 강매하다시피 했지만 모두들 흔쾌히 강매당해 주셨죠. 400명 가까이 모인 걸로 기억하는데 록 애호가가 아니면 들어본 적도 없는 레퍼토리로 진행했으니 귀 좀 아팠을 겁니다. 하하.”
 
임수혁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까.
“형은 우리에게 많은 걸 남기고 떠났고, 우리는 그걸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 쪽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편하고 호탕하고 진짜 순수했던 야구선수 임수혁을 마음에 새기며 살고 싶습니다.”
 
임수혁 사고 이후 경기장 구급차 대기, 신영록 목숨 건져
신영록

신영록

2011년 5월 8일,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 공격수인 신영록(당시 24세)은 제주와 대구의 경기 도중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었다. 임수혁이 쓰러질 때와 똑같은 증세였다.
 
선수들은 재빨리 기도를 확보하고 의료진을 불렀다. 구단 의료 스태프는 즉각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호흡을 회복시켰다. 경기장에 배치된 구급차는 7분 만에 신영록을 제주한라병원으로 옮겼다. 전기충격 치료로 심장 박동이 되살아났다. 심장마비로 뇌 혈액 순환이 일시적으로 멈췄지만 그로 인한 뇌 손상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다. 신영록은 50일 뒤 휠체어에 탄 채 취재진에 손을 흔들며 퇴원했다(사진).
 
신영록을 살린 것은 임수혁일지도 모른다. 임수혁의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은 응급처치를 하지 못한 채 구급차만 기다렸고 결국 골든 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누군가 심폐소생술만 했다면 살릴 수 있었다는 게 의료계의 진단이다. 임수혁 이후 스포츠 경기장에는 심장자동충격기와 산소호흡기를 구비한 구급차가 대기하도록 법령이 강화됐다.  
 
현장 의료진은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갖춰야 한다는 규정도 생겼다. 요즘도 예비군이나 민방위 훈련장의 응급처치 교육에서 임수혁의 사례와 당시 영상이 재생된다고 한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