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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가 보여준 ‘어른 리더십’…세월의 모가지를 끌고 가라

중앙선데이 2020.10.10 00:02 706호 22면 지면보기

세컨드 라이프 

지난달 30일 KBS 2TV가 추석 특집으로 방영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에서 ‘가황’ 나훈아가 열창하는 모습. [사진 KBS 2TV 화면 캡처]

지난달 30일 KBS 2TV가 추석 특집으로 방영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에서 ‘가황’ 나훈아가 열창하는 모습. [사진 KBS 2TV 화면 캡처]

길고 긴 추석 명절, 5060 단톡방들은 한 남자의 이야기로 도배됐다. 가황 나훈아. 15년 만에 대형 콘서트로 돌아온 그의 모습에 지인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눈물을 흘렸다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요즘 공중파에서 보기 힘든 시청률 29%는 그가 가진 엄청난 영향력을 보여 주었다. 그는 여전히 매력적이었고 부르는 노래마다 심금을 울렸다. 수백 곡의 명곡을 가진 싱어송라이터이자 최고의 보컬리스트로서 그의 무대는 한마디로 격이 달랐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또 어땠나. 우리는 왜 70이 넘은 노장의 뼈 있는 말 한마디에 이토록 위로받고 울컥한 것일까.
 

개인의 가치 상승만 골몰하면
은퇴 후 품격 있는 인생은 없어

사회적 가치 실현에 중점 두고
‘인생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게
하루 중 반 이상 시간 투자해야

“제가 (소크라)테스 형한테 ‘세상이 왜 이래’라고 물어보니, 테스 형도 ‘모른다’ 카네요. 세월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왕 가는 거 끌려가면 안 돼요. 우리가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가야 합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 끌려가는 거고, 안 하던 일을 해야 세월이 늦게 갑니다.”
 
인생 선배로서 그가 보여 준 무대와 메시지는 참으로 묵직했다. 무게의 차이는 있으나 누구나 그 나이쯤이면 안고 가야 할 과거의 영광과 흠결이 있다. 흥망성쇠, 희로애락의 사계절을 몇 차례 돌고 난 후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어른, 나는 나훈아를 보면서 우리 시대 ‘각자의 어른’, ‘어른의 리더십’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거 틀에 매여 꼰대가 되면 성장 멈춰
 
지난달 30일 KBS 2TV가 추석 특집으로 방영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에서 ‘가황’ 나훈아가 열창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온라인으로 환호와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사진 KBS 2TV 화면 캡처]

지난달 30일 KBS 2TV가 추석 특집으로 방영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에서 ‘가황’ 나훈아가 열창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온라인으로 환호와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사진 KBS 2TV 화면 캡처]

이미 4050 중에는 무수히 많은 리더가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흥망성쇠의 사계절을 끝까지 돌아 본 이가 많지 않다. 그 쳇바퀴를 몇 번이고 돌아 본 사람은 더더군다나 많지 않다. 70에 가까워져야 크고 작은 흥망성쇠와 인생의 굴곡을 여러 차례 경험하게 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볼 때는 ‘꼰대 중 꼰대’라 불리고도 남을 나이지만, 모진 세월을 겪어 내고도 꼿꼿하게 버티고 있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특별한 감동과 영감을 준다.
 
그런 어른의 리더십을 나는 나훈아에게서 봤다. 수많은 운명의 파고에도 넘어지지 않고 73세 나이에 열정을 내뿜는 그는 인생 후배들에게 멋진 롤 모델이 되고 있다. 나는 이런 롤 모델이 우리 선배들 중에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5060도 이런 어른의 리더십을 서서히 발휘해야 한다고 믿는다. 주변을 살펴보면 남다른 철학과 비범한 실행력으로 각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현업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존재감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만큼 ‘세컨드 라이프’를 품격 있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생계를 위해 일선에서 뛸 때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머지않아 60에 접어드는 나 역시도 자꾸 롤 모델을 찾게 된다. 60 이후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누군가 앞서 제시해 주었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롤 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은퇴하신 분들의 명함을 받아 보면 ‘고문’이나 개인 연구소 ‘소장’ 직함이 많다. 60 이후 90까지 30년의 인생 가치를 깊게 고민했다기보다, 과거의 명성과 체면에 걸맞은 그럴듯한 형태를 만들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핵심 가치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 은퇴 전의 설계는 비교적 쉽다. 따라 살아 보고 싶은 롤 모델도 많고 목표도 명확하다. 그러나 은퇴 후는 설계가 쉽지 않다.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으니 그것을 앞서 실현한 롤 모델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 내가 만난 분들도 참고할 내용이나 롤 모델이 없어 최선의 선택을 못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은퇴 전 퍼스트 라이프의 중심이 ‘개인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었다면, 은퇴 후 세컨드 라이프는 ‘사회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의 가치가 더 상승한다. 은퇴 후에도 개인의 가치 상승만 골몰한다면 리더의 모습은 사라지고 꼰대의 모습만 남게 된다. 나를 비롯한 후배들은 우리 사회 진정한 리더로서 앞선 롤 모델을 많이 보고 싶다. 자주 보고 접해야 따라 살고 싶을 테니.
 
어떻게 살아야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인생 인플루언서’이자 ‘어른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의 가치를 만들며 살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어른이 아닌 꼰대가 된다면 배움과 성장이 멈췄다는 얘기다. 안타깝지만 이는 시스템의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60대 이상 어른을 위한 교육은 거의 없다. 60이 되면 아무도 고민의 동반자가 돼 주지 않는다. 80에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나? 하루를 어떤 일로 채웠을 때 자존감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가르치는 사람도, 굳이 배우려는 사람도 없으니 과거의 틀에 매여 자기 말만 듣게 된다. 혼자만이 스승인 사람, 자기 말만 듣는 어른은 때때로 아이들보다 더 길을 잃는다.
 
롤 모델은 단순히 존경하는 멘토 정도가 아니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롤 모델이 중요한 이유는 정확히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구체화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 2막도 시간과 자원은 어차피 한정돼 있다.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데, ‘살아 있는 케이스 스터디’인 롤 모델을 찾아야 내 삶에 적용 가능한 ‘하우 투’도 구체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내게도 3명의 롤 모델이 있다. 첫 번째는 패션디자이너 이광희 선생님이다. 영부인과 정재계 부인들의 옷을 만들던 최고의 패션디자이너였던 그녀는 척박한 땅 남수단 톤즈에서 망고나무를 심는 NGO ‘희망고’를 만들어 아이들에겐 공부의 기회를, 어른들에겐 자립의 기회를 주고 계시다. 수많은 시련이 따랐지만 타고난 열정과 낙천성으로 행복한 웃음이 가득한 선생님에게서 나는 어른의 리더십을 발견하곤 한다.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세컨드 라이프의 사회적 가치와 사명에 대해 처음 고민하게 되었고, 몇 년 전 사단법인 ‘그루맘’을 만들었다. 씩씩하고 용감한 미혼 한부모 엄마들을 응원하고 함께하기 위해서다. 이광희라는 롤 모델이 곁에 없었다면 감히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도 스승이자 큰언니 같은 존재다. 그녀는 남산 밑에 고전 공부 공동체 ‘남산강학원’과 ‘감이당’을 만들어 청소년부터 60~70대까지 함께 어울려 공부한다. 제자들이 스스로 글 쓰고 선생 노릇도 하게 될 때까지 참으로 오랫동안 부지런히 일해 제자들을 먹이고 키우셨다. 제자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공부로 먹고사는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선생님에게서 이 시대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그리고 교육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 또한 선생님의 철학과 방식을 조금이나마 흉내 내려 노력한다.
 
의사로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요양 병원에서 헌신하셨던 한원주 선생님이 향년 94세 나이로 별세하셨다. 40여 년 전부터 의료선교의원을 운영하며 노숙자 의료봉사를 하신 ‘최고령 할머니’ 의사는 별세 직전까지도 매일 환자 10명 이상을 진료하셨다. 한평생 자신의 전문성으로 아낌없이 나누는 사회적 가치를 몸소 보이신 선생님은 이 시대 진정한 ‘어른 리더’다.
  
어른 리더 되려면 공부든 기부든 투자를
 
어른 리더는 투자 없이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세상과 교류하며 나의 쓸모와 자존감을 확인하려면 어쩌다 잠깐 하는 파트타임이어서는 안 된다. 내 육체가 직접 들어가 하루의 반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돈도 투자해야 한다. 공부든 기부든 무엇이든 합당한 투자를 해야 지속 가능한 일상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세컨드 라이프를 성실히 만들어 나갈 때 우리 삶도 잔잔한 감동과 선한 영향력을 주는 어른의 인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각자 분야에서, 각자 과거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재료를 끌어모아 보자. 그리고 만일 내 분야에 롤 모델이 없다면 내가 그 ‘어른 리더’가 되면 어떨까? 가정에도 부모라는 롤 모델이 필요하듯이 사회에도 롤 모델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차 없이 칼날을 세우는 경쟁적 사회가 아닌, 서로를 보듬는 안정감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된다.
 
나훈아가 나훈아 스타일의 어른 리더가 되었듯이 우리 역시 각자 스타일의 어른 리더가 되면 좋겠다. 나이 들수록 깊어지는 연민과 때때로 참기 힘든 오지랖이 사회적 가치로 잘 설계되어 진정한 어른 리더로 탄생하길 바라 본다.
 
김미경 유튜브 김미경TV 대표
사람들의 꿈과 성장을 응원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50대 중반부터 유튜브 채널 ‘김미경TV’ 크리에이터이자 국내 최초 유튜브대학인 ‘MK유튜브대학’ 학장으로 활동하며 세컨드 라이프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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