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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가지 야생버섯 전·찌개…입안 가득 ‘맛의 무지개’

중앙선데이 2020.10.10 00:02 706호 24면 지면보기

[맛따라기] 자연산 버섯 숨은 고수

야생버섯의 계절이 막 지나가고 있다. 절정은 대략 백로(9월 8일 무렵)부터 한로(10월 8일 무렵) 사이다. 올해는 음력 4월에 윤달이 끼어 계절이 좀 늦고, 긴 장마로 버섯 포자 발생이 늦어져 예년보다 일주일쯤 지연되고 있다는 게 산지에서 들려오는 소식이다. 9월 하순 돼서야 능이버섯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때까지 드물던 송이는 추석 연휴 무렵부터 좀 올라온다고 했다.
 

파주 금촌시장 ‘고기랑찌개랑’
황금·붉은비단그물버섯 데쳐 회
‘버섯의 합창’ 전은 파전보다 싸

향·식감 좋은 찌개, 안주로 일품
능이토종닭백숙 국물 깔끔·시원

야생버섯을 워낙 좋아해 해마다 9~10월이면 버섯이 많이 나오는 5일장 날짜를 알아보느라 바빴다. 지난 20여 년 동안 강원도 홍천·속초·양양, 충북 청천(괴산)·보은·옥천·영동, 전북 무주, 경북 황금(김천)·풍기·봉화·춘양·영양·청송·영덕·죽변(울진) 5일장을 쫓아다녔다. 전국에서 버섯이 모이는 서울 경동시장에는 이 계절에 몇 번씩 들락거렸다.
 
올해는 아직 버섯 나오는 시장에 가 보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나들이를 줄였고, 정기시장들이 일시 폐쇄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신 경기·강원 산지 4곳에서 지인들이 맛보라며 보내 준 햇버섯 여러 가지를 집에서 맛보는 ‘난세의 호사’를 누렸다.
  
황금비단그물버섯 진액 많아 더 끈적
 
8가지 버섯이 들어간 버섯찌개(오른쪽 위)와 버섯전(왼쪽), 붉은비단그물버섯(검은빛)·황금비단그물버섯으로 만든 회(오른쪽 아래). 신인섭 기자

8가지 버섯이 들어간 버섯찌개(오른쪽 위)와 버섯전(왼쪽), 붉은비단그물버섯(검은빛)·황금비단그물버섯으로 만든 회(오른쪽 아래). 신인섭 기자

반가운 발견도 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파주 금촌시장에 있는 ‘야생버섯 고수’의 음식점을 알았다. 상호(‘고기랑찌개랑’)만 보면 버섯음식을 하는 집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지만, 1년 내내 능이(더덕)닭백숙, 자연산 버섯찌개, 버섯전, 버섯회 등의 요리로 손님을 맞는 집이다.
 
이 집에서는 매년 장마가 끝나는 8월 하순 꾀꼬리버섯부터 11월 중순 개암·서리버섯까지 약 3개월 가까이 경기·강원·경북 일대에서 버섯을 수집해 한 해 쓸 물량을 확보한다. 버섯은 소금물에 삶고 여러 차례 헹궈서 소금을 치고 냉장고에 저장한다. 요리할 때는 소금물을 다시 우린다. 대부분의 버섯이 가진 독성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빠진다.
 
지난달 17일 늦은 점심시간에 찾아갔다. 주인 부부는 감악산에서 막 따온 버섯을 손질하고 있었다. 솔잎 검불이 묻은, 누런 황금비단그물버섯 더미에서 거무스레한 붉은비단그물버섯을 고르는 작업이다. 만져 보니 버섯 몸에서 나오는 진액으로 끈적인다. 황금비단이 진액이 많아 더 끈적인다고 한다.
 
자연산 버섯 숨은 고수

자연산 버섯 숨은 고수

남편 이청길(63)씨가 “회 버섯 맛 좀 보실래요?” 하고 물었다. 버섯으로 회를 하다니, 먹어 본 적이 없는 음식이어서 그런 회도 있냐며 청했다. 오전에 따 온 황금비단그물버섯과 붉은비단그물버섯을 살짝 삶아 찬물에 헹궈 흰 접시에 담아 내왔다. 버섯은 삶는 동안 자주색(황금)과 흑갈색(붉은)으로 변했다. 초고추장과 참기름소금장이 함께 나왔다.
 
참기름소금장 찍어 한 점을 맛봤다. 씹는 느낌이 미끈·졸깃·아삭하다. 천엽과 생선 숙성회의 중간쯤이라 할까. 버섯은 맛보다 향과 씹는 느낌을 즐기는 식품인데, 이 버섯은 가벼운 솔향기가 났다. 식감은 토종 소나무 아래서 자라는 황금비단그물버섯이 전나무 아래 주로 자라는 붉은비단그물버섯보다 부드러웠다. 몸에 진이 많아서 그렇다 한다. ‘회 버섯’은 올해 처음 마련한 메뉴다. 200g 한 접시에 1만원으로 책정하고, 준비한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해 보기로 했다.
 
이어서 나온 버섯전에는 8가지 버섯이 들어갔다. 붉은비단그물버섯·꾀꼬리버섯·황금비단그물버섯·흰깔때기버섯·달걀버섯·뽕나무버섯·밤버섯·싸리버섯을 한데 모아 보여 줬다. 많을 때는 10가지가 들어갈 때도 있다 한다. 거기에 양파·대파와 매운 풋고추를 다져 넣고 반죽은 최소화해서 부쳤다.
 
여덟 가지 버섯이 번갈아 뭉클·졸깃하게 씹히면서 재잘대는 듯한데 아삭한 양파가 간간이 단맛을 터트리고 툭툭 튀는 매운맛에 놀라다 보면 기름기가 혀를 살살 달래며 입안을 고소함으로 채운다. 놀라운 맛이다. 값은 더 놀랍다. 흔한 파전보다 싸다. 큰 접시에 가득하고 두툼한 전이 1만원이다.
 
식사는 ‘자연산 버섯찌개’를 먹었다. 전에 들어가는 여덟 가지 버섯에 돼지 앞다릿살, 양파, 고추, 대파, 찌개용 고추장, 고춧가루를 넣고 끓인다. 밑국물을 따로 내지 않고 맹물을 쓴다. 버섯 자체의 진액이 맛을 내기 때문에 다른 걸 가미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순수한 버섯 맛이라는 얘기다. 집게손가락 굵기로 길쭉하게 잘라 넣은 고기와 크기가 비슷한 버섯 가닥을 올리고 뻘건 국물을 떠서 한 술에 먹으면 얼굴에 웃음이 퍼진다. 본성이 진한 고추장 맛을 뚫고 피어나는 버섯 향과 다채롭고 독특한 식감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미각의 무지개가 입안에 뜨는 듯하다. 야생버섯 음식을 먹어 본 사람이라면 짐작할 듯하다. 값은 크기에 따라 2만5000~5만원.
 
8월 22일 점심에는 능이더덕닭백숙을 맛봤다. 상에 오른 냄비를 보니 아무 장식도 없고 내용은 단순 간결하다. 능이버섯을 두툼하게 올렸을 뿐 닭도 보이지 않았다. 주인 이씨는 “헛개나무 가지와 열매를 우린 국물에 산에서 뛰놀던 닭, 능이, 산더덕만 넣고 고은 겁니다”라고 자랑했다.
  
하루 전 전화·예약해야 헛걸음 안 해
 
국물부터 한술 떴다. 진하고 깔끔하면서 시원한 맛이다. 닭이 안 보여서 뒤적여 보니 껍질도 벗기지 않은 산더덕 여러 뿌리가 먼저 드러났다. 고기는 닭 다리와 날개 뼈만 남기고 나머지는 살만 발라 바닥에 깔았다. 닭이 워낙 커서 국물에 잠기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 듯하다.
 
능이더덕닭백숙

능이더덕닭백숙

능이버섯 한 가닥을 건져 먹어 봤다. 능이 살이 차지고 부드럽고 향이 진동한다. 한동안 맛보지 못한 국산 능이가 분명하다. 지난해 구해 저장해 둔 듯하다. 산에서 뛰놀며 근육을 키운 닭고기도 살이 질긴 듯 쫄깃한 게 씹으면 고기 맛이 계속 배어나 인간의 저작(씹기) 본능에 쾌감을 준다. 국물을 참옻물로 하거나 더덕 추가는 선택이다. 하루 전 예약해야 가능하며 값은 닭 1마리 기준 9만원이다. 이런 음식점이 드문 것은 흔히 잡버섯으로 분류하는 많은 야생버섯이 시장에 나오지 않아 상업용으로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골 5일장에 가도 송이·능이·싸리·꾀꼬리·밤버섯·까치버섯(먹버섯 혹은 곰버섯) 정도는 보이지만 그 밖의 버섯은 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씨는 전국의 버섯 루트를 15년 갈고 닦은 고수인지라 시장을 통하지 않고 조달한다. 독 없는 야생버섯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묻자 “안 먹어 본 버섯은 아무리 탐나도 건드리지 않는 게 철칙”이라고 했다.
 
파주 광탄에서 7년 전 시작해 2017년 10월 현재 자리로 옮긴 다음에도 버섯음식을 계속해 온 식당은 부부가 운영한다. 남편은 버섯 수집과 접객 담당이고, 부인 김숙경(54)씨가 홀로 주방을 책임진다. 일손이 적다 보니 손님이 한꺼번에 몰리면 손님도, 주인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버섯 철에는 예약이 없으면 점심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헛걸음하지 않으려면 하루 전에 전화해 보거나 예약하고 가길 권한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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