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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이자 영웅"…'세종대왕 덕후' 美스타트렉 작가 역사판타지『킹 세종』썼다

중앙일보 2020.10.09 14:15
'킹세종 더 그레이트' 한글판. 이번 소설엔 한글뿐 아니라 ‘한(恨)’ 등 한국 고유 문화에 대한 묘사도 다채롭다. 서구 구텐베르크 활자보다 한 세기 앞선 14세기 고려의 금속활자도 소개했다. ’한국이 중요한 기술적, 문화적 진전의 발원지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조 메노스키 작가는 말했다.[사진 핏북]

'킹세종 더 그레이트' 한글판. 이번 소설엔 한글뿐 아니라 ‘한(恨)’ 등 한국 고유 문화에 대한 묘사도 다채롭다. 서구 구텐베르크 활자보다 한 세기 앞선 14세기 고려의 금속활자도 소개했다. ’한국이 중요한 기술적, 문화적 진전의 발원지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조 메노스키 작가는 말했다.[사진 핏북]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기가 할리우드 장수 SF 시리즈 ‘스타트렉’ 작가의 역사 판타지 소설로 재탄생했다. 미국 작가 조 메노스키가 영어로 쓴 소설 『킹 세종 더 그레이트』(핏북) 한글판‧영문판이 한글날인 9일 동시 출간됐다.  
“소설을 쓴 이유는 세종대왕 그 자체죠. 문자는 수세기에 걸쳐 진화해왔잖아요. 이런 것을 창조해냈다고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죠.” 출간 전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그의 말이다.  

할리우드 SF 시리즈 '스타트렉' 작가 조 메노스키
한글창제 역사소설 『킹 세종』한·영판 9일 펴내
"20년간 한국영화·드라마 섭렵…세종대왕은 내 영웅"

 

20년 전 '엽기적인 그녀'로 한국 매료

메노스키는 30여 년 전부터 ‘스타트렉’ 시리즈의 에피소드 60여 편에 더해 스티븐 킹 원작 공포물 ‘데드존’,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 우주 개척 전쟁이 계속됐을 경우를 상상한 대체 역사 드라마 ‘포 올 맨카인드’ 등 여러 TV 시리즈의 작가 겸 프로듀서로 일해 왔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년 전부터다. 공포영화 ‘그것’, 미국판 ‘올드보이’ 등을 만든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 로이 리의 소개로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본 뒤 한국 영화‧드라마에 빠졌다. 이를 계기로 5년 전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배운 한글의 “정밀함과 기능적인 우월함”에 매료됐다. 또 “이 모든 것이 천재적인 왕에 의해 창제되었다는 스토리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렌체의 통치자인 경우일까? 아이작 뉴턴이 영국의 왕인 경우일까?” 책의 머리말에서 그는 세종대왕이 마치 영웅 같았다고 찬탄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기를 영어 소설로 쓴 '스타트렉' 작가 조 메노키스가 중앙일보에 손수 쓴 한국말 인사를 보냈다. [사진 사람엔터테인먼트]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기를 영어 소설로 쓴 '스타트렉' 작가 조 메노키스가 중앙일보에 손수 쓴 한국말 인사를 보냈다. [사진 사람엔터테인먼트]

 

세종대왕 '미드'로 만들려고 했죠

“처음엔 나처럼 세종대왕을 모르는 미국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영어 미니시리즈 제작을 목표로 세종대왕과 한글에 관한 4시간짜리 대본을 썼어요. (재작년부터 협업을 논의해온) 한국 에이전시가 한국 출판사에 그 대본을 보여주면서 한글판‧영어판 소설을 먼저 출간하게 됐죠. 한국 독자에게 선보일 줄은 생각도 못 했죠.”

소설은 한글 창제‧반포를 아우르는 실제 역사에 다소간 상상을 보탰다. 명나라, 몽골족, 일본 해적이 뒤엉키는 전란의 기운도 새겼다. 그는 자신이 외국인 작가란 사실보다 SF 판타지 장르 작가란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 했다. “그 결과 『킹 세종 더 그레이트』는 역사적 국제 액션 스릴러로 완성됐다”면서다.
 
자료 조사는 어떻게 했나.  
“한글 창제에 관한 영문 출판물에 국한해 조사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연구만 몇 년간 매달렸다. 한글 유래에 대한 두 가지 해석에 주목했다. 첫째 세종대왕이, 스티브 잡스가 애플 기술팀을 지휘하듯 창제 과정을 이끌었다는 것. 둘째는 세종대왕이 주로 혼자 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한글이 세종대왕이 운영한 조선의 ‘싱크탱크(집현전)’에서 탄생한 결과물이 아니라 마치 예술가와 같았던 세종대왕 한 사람에 의해 창조된 집념의 산물로 그리고 싶었다. 개리 레드야드(미국 컬럼비아대 한국학 석좌 명예교수)의 저술 『1446년 한국어 개혁(THE KOREAN LANGUAGE REFORM OF 1446)』(신구문화사, 1998)이 많이 도움 됐다.”
 

세종대왕이 네스토리우스교도를 만났다? 

한석규(맨 왼쪽)가 세종대왕 역을 맡아 훈민정음 창제기를 그린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사랑받았지만 극 중 소품 서랍에 한자 문화인 조선에선 사용되지 않았던 아라비아 숫자 14가 적힌 장면이 '옥에 티'로 지적됐다. [사진 SBS]

한석규(맨 왼쪽)가 세종대왕 역을 맡아 훈민정음 창제기를 그린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사랑받았지만 극 중 소품 서랍에 한자 문화인 조선에선 사용되지 않았던 아라비아 숫자 14가 적힌 장면이 '옥에 티'로 지적됐다. [사진 SBS]

그간 세종대왕을 다룬 국내 영화‧드라마도 역사 고증 문제로 홍역을 치르곤 했던 터다. 메노스키는 “바라건대 정사의 기록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익숙한 분께도 제가 새로 창작한 ‘역사 판타지’란 점을 받아들여주시기 바라며, 받아들이기 어려우신 분께는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머리말에 조심스레 밝혔다.  
 
세종대왕이 네스토리우스교(아시아에 전파된 기독교 한 종파) 사제를 만나 그들의 경전을 읽어보는 장면은 지금껏 한글 창제에 관한 한국 작품에선 제시된 적 없는 내용이다.
“네스토리아교도는 명나라에서 숙청되기 전까지 중국에 소수가 남아있었고 한반도에도 존재했을 법한 몇몇 증거가 있다. 서울의 한 박물관에 있는 돌십자가(경주 불국사에서 출토된 유물)가 한 예다. 얄팍한 증거지만 ‘판타지 역사물’이라면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탈출한 외톨이 신자 캐릭터는 받아들여질 법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재밌는 추측에 근거한 역사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든다면 15세기 조선에 작은 교회 장면이 나오는 게 놀랍지 않을까 생각했다.”
 
세종대왕이 해외에서 수집한 문자들 중 숫자 7과 흡사한 모양에 관심 갖는다는 묘사가 반복되는데 독자에게 자칫 한자문화였던 조선에서 실제론 사용되지 않은 아라비아 숫자가 통용됐던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7은 비한국인 독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려는 의도였을 뿐 실제 숫자를 의미하려던 건 아니다.”
 
일본인 소년이 한글을 통해 처음 세상과 소통하는 허구의 일화도 나오는데.  
“한글이 일본어를 포함한 어떤 언어나 소리라도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킹세종 더 그레이트' 영문판. 한글판과 함께 한글날인 9일 국내 동시 출간됐다. [사진 핏북]

'킹세종 더 그레이트' 영문판. 한글판과 함께 한글날인 9일 국내 동시 출간됐다. [사진 핏북]

한드 '태왕사신기' '도깨비' 가장 좋아하죠 

실제 한국어 실력을 묻자 그는 “아직 매우 서툴다”면서도“산들바람이나, 스프에 모두 쓸 수 있는 ‘시원하다’란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처음 배운 한국말? 아마도 ‘배고파요’였죠.”(웃음)  
 
20년 전 처음 만난 한국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대해 그는 “액션과 드라마, 코미디와 로맨스를 절묘하게 오간 것에 감동받았다”며 “한 장면 안에서도 자유자재로 톤을 바꾸는 능력은 한국 영화드라마에서 가장 존경할만한 지점”이라 감탄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론 ‘박하사탕’ ‘쉬리’ ‘늑대소년’을, 드라마론 ‘태왕사신기’와 ‘도깨비’를 꼽으며 ‘한류’ 덕후의 면모도 드러냈다. 이번 소설을 영상화할 목표도 품고 있단다. 
 
이번 소설로 한국에서 그를 ‘세종대왕 덕후’라 부르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하자 기분 좋게 답했다. “아니라곤 못 하겠네요.”(웃음)
조 메노키스가 작가이자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애플tv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포 올 맨카인드'. [사진 애플]

조 메노키스가 작가이자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애플tv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포 올 맨카인드'. [사진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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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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