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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댄스 교습반의 텃세…파트너 선택은 고참 먼저

중앙일보 2020.10.09 07:00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39)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든 텃세가 있다. 국어사전에 보면 텃세에 관한 예문들이 나와 있다. ‘텃세하다’는 뒤에 오는 사람을 업신여기며 위세를 떨거나 괴롭힌다는 말이다. ‘닭쌈에도 텃세한다’는 세라는 것은 언제나 있는 법임을 뜻한다. ‘개도 텃세한다’라는 말도 있다. 먼저 자리 잡은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에게 선뜻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텃세는 기득권을 가지고 세력을 과시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남보다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말은 안 해도 고참에게는 선호하는 자리가 있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신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가는 눈총을 받게 되어 있다. 그날 먼저 왔다고 앞줄을 차지하면 안 되는 이유다. [사진 pxhere]

말은 안 해도 고참에게는 선호하는 자리가 있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신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가는 눈총을 받게 되어 있다. 그날 먼저 왔다고 앞줄을 차지하면 안 되는 이유다. [사진 pxhere]

 
댄스 단체반에 가면 텃세가 존재한다. 단체반 고참은 대부분 맨 앞줄에 선다. 강사의 몸동작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춤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뒷사람에게 자신의 춤을 과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이 앞줄에 서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말은 안 해도 고참에게는 선호하는 자리가 있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신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가는 눈총을 받게 되어 있다. 그날 먼저 왔다고 앞줄을 차지하면 안 되는 이유다.
 
고참은 파트너 선택에도 우선권을 행사한다. 부부 커플이라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랫동안 둘이 맞춰 왔으므로 잘 맞는 사람끼리 춤을 추고 싶은 것이다. 강사가 “파트너 체인지!”라고 외쳐 봐야 고참은 안 바꾸거나 자기네들끼리만 파트너를 바꾼다. 그러니 신참에게는 같이 춤추고 싶은 파트너를 기다려 봐야 차례가 안 돌아온다.
 
아무래도 고참이 춤을 잘 출 수밖에 없다. 신참이 오면 그 단체반의 규칙을 알려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춤을 가르치려 든다. 같이 춤을 추는 것 자체가 즐거움인데, 마치 심사위원이나 되듯이 상대방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춤추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다른 데서 배우다가 학원을 옮긴 경우도 텃세를 감당해야 한다. 춤을 못 추는 것은 아니지만, 방법이 좀 다르면 다른 데서 배운 것은 인정하지 않거나 다르다고 매도하기도 한다. 가끔 다른 데서 배운 것이 바르다고 우기기는 사람이 있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 맞다.
 
텃세는 여러 명이 연대로 세를 과시하려는데 문제가 있다. 댄스 단체반에는 대부분 각자 오지만, 무리로 오는 경우도 있다. 동창생, 친구, 부부 모임, 연인 등이다. 오래 같이 배우다 보면 고참끼리 무리를 이룬다.
 
이들 무리가 힘을 과시하고 텃세를 부린다. 잘 못 보이면 부지불식간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불편한 관계가 되어 나가기가 싫어진다. 심하면 퇴출 요청을 받기도 한다. 회장이 이들 중에서 나오면 모르지만, 이들 외에서 회장이 선출되면 불협화음이 커진다. 강사의 방향이나 지도 운영에도 관여하며 댄스 배우는 방법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과도한 관여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라틴 댄스를 주로 하는 단체반에서는 대개 모던 댄스 종목을 기피한다. 반대로 모던 댄스를 하는 단체반은 라틴 댄스 종목을 하자고 하면 안 나온다는 사람이 생긴다. 대부분은 한쪽으로 계속 가지만, 오래 하다 보면 지루해서 종목을 바꿔 보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런 결정은 텃세를 행사하는 고참 손에 달려 있다.
 
텃세가 꼭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선배를 공경하고 존중해주는 것은 미풍양속이다. 선후배가 잘만 어울리면 먼저 경험한 사람이 자신이 경험한 것을 전수해주기도 하고 배울 점이 많다. 그 덕분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도 있다.
 
댄스 대회에서도 텃세를 경험할 수 있다. 어렵게 지방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에 참가했는데, 높은 순위는 자기네 지방 출신에게 주고 타지방 선수에게는 점수를 박하게 주는 것이다. [사진 pxhere]

댄스 대회에서도 텃세를 경험할 수 있다. 어렵게 지방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에 참가했는데, 높은 순위는 자기네 지방 출신에게 주고 타지방 선수에게는 점수를 박하게 주는 것이다. [사진 pxhere]

 
댄스 대회에서도 텃세를 경험할 수 있다. 어렵게 지방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에 참가했는데, 높은 순위는 자기네 지방 출신에게 주고 타지방 선수에게는 점수를 박하게 주는 것이다. 애당초 공정한 판정은 기대할 수 없다. 해마다 전국체전 주최 지가 바뀌면서 주최 지자체 성적이 유독 좋게 나오는 것은  텃세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대회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5월 영국에서 개최하는 ‘블랙풀 댄스경기대회’라는 국제 댄스 대회가 있다. 그 대회에서도 심사위원들 눈에 띄기 위해서는 대회 전에 그들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레슨을 받아야 유리하다는 것이다. 물론 심사 포인트 등을 미리 알고 연습할 수 있어 점수가 높게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비슷한 기량이라면 아무래도 자기가 레슨 해준 제자에게 점수를 더 주기 마련이다. 미리 눈도장을 찍는 셈이다. 우리나라 프로 선수 중 이 대회 예선 1회전을 겨우 통과한 선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몇 명 안 된다. 물론 그 이상 선전한 선수도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국제 댄스 무대에서 실력으로 얻은 결과물이다.
 
남미가 기원인 라틴댄스는 덜하지만, 유럽에서 유래한 모던 댄스는 이탈리아와 영국이 서로 종주국이라며 자존심 싸움을 한다. 댄스 대회 상위권을 많이 차지한 나라의 춤이 트랜드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댄스스포츠가 서양에서 온 문화이기 때문에 세계 대회에서 동양권 선수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점도 있다. 체형의 차이, 분위기의 차이 등도 있겠지만, 서양이라는 텃세도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금발에 파란 눈의 서양인이 우리나라 판소리 경연대회에 출전해 아무리 출중한 실력을 보였다고 해도 우승하는 경우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그 와중에 중국계 미국의 ‘빅터 펑’이라는 선수는 오랫동안 스탠더드 부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긴 했다. 파트너는 서양 여자다.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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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영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필진

[강신영의 쉘 위 댄스] 댄스 동호인으로 시작해 30년간 댄스계에 몸담았다. 댄스에 대한 편견 때문에 외면하고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댄스스포츠 세계는 문화, 역사, 건강, 사교,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고 알수록 흥미롭다. 30년 댄스 인생에서 얻은 귀중한 지식과 경험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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