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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행복의 나라로(feat. 이일병)

중앙일보 2020.10.09 00:41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버스에 오르며 교통카드를 갖다 대자 ‘삑’하는 전자음과 함께 “마스크를 착용하세요”라는 명령조 음성이 나왔다. ‘착용하세요’와 ‘착용해 주세요’, 단 한 음절의 차이가 주는 다른 느낌을 생각하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단호한 말투에 허리가 세워진다. “불법 다단계 등의 소모임 참석 후 코로나19 재확산 초래 시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그래도 며칠 전까지 들리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발령! 불법 집회를 금지합니다!” 운운하던 포고령 수준의 안내방송보다는 한풀 죽인 목소리다.
 

방역 이유로 기본권 제한 당연시
보건과 인권의 조화 고민은 뒷전
국가는 ‘섬세한 노력’ 하고 있나

팬데믹이 초래한 불편에는 제법 익숙해졌지만, 이런 강압적 느낌은 여전히 불편하다. 내 신상의 어떤 정보가 수집되고 저장되는지, 또 어떻게 활용되는지도 모르는 채 내미는 QR코드도 불안하다. 개천절, 검문검색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서울 외곽의 차량 행렬에서는 시간이 30여 년 전 독재 시절로 거슬러간 듯한 당혹감을 느꼈다.
 
코로나 와중에 요트 여행을 떠난 강경화 장관의 남편 이일병 교수가 말했다. “내 삶을 사는 건데….” 연대의 정신으로 불편을 견디는 국민으로선 화가 치밀지만, 말인즉슨 틀렸다곤 할 수 없다. 국가나 사회가 간섭할 수 없는 행복의 영역. 이 교수 문제가 추국향(추미애·조국·윤미향) 사태처럼 커지지 않는 것은 그 말이 담고 있는 일말의 진리 때문이다.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다짐은 정치적 수사(修辭)일 뿐이다. 구성원들의 욕망과 이해가 부닥치는 복잡한 사회에서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약속이다. 히말라야의 소국 부탄은 국민총행복지수(GNH)라는 개념을 들고나와 스스로 세계에서 최고 행복한 국가라고 자부한다. 과연 그런가.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세계 각국의 경제력·기대수명·복지·사회적 자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순위를 매기는 행복보고서에서 부탄은 2017년 97위를 차지했다. 부탄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물 안 행복이었다. 하기야 북한조차 2011년 자신들의 행복지수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라고 발표한 적이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삶을 살뜰하게 챙겨주겠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약속했다. 현실은 조금 다르다. 올해 발표한 유엔의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53개국 중 61위에 그쳤다. 지난 몇 년간 50위권을 유지해 오다 밀려났다. 국가미래연구원이 경제 성과, 삶의 질, 경제·사회 안정도 등을 평가해 산출하는 국민행복지수에서도 현 정부의 성적은 전 정부를 밑돌았다. ‘저녁 있는 삶’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우며 각종 정책을 폈지만, 헛발질을 거듭하며 약자들을 더 힘들게 했다. ‘관제 행복’을 추구하다 빚어진 참담한 결과다.
 
주관적 감정인 행복을 수치로 매기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인지 모른다. 행복학자 서은국(연세대) 교수는 “의식주나 치안 같은 기본적 문제를 벗어난 사회에서 행복감을 높이려면 심리적 환경을 향상하려는 국가의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수치로 표현할 수야 없겠지만, 추국향 사태에서 목도한 특권층의 뻔뻔함도 국민의 행복감을 낮추지 않았을까.
 
방역에 따른 기본권 제한에 대해 ‘협조해 줘 감사하다’는 인사는 들었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시민 권리의 반납이 당연하다는 투다. 공중보건 비상 상황에서도 방역과 인권의 조화를 찾아야 한다는 유엔의 ‘시라쿠사 원칙’은 먼 나라 이야기가 돼버렸다. ‘하세요’와 ‘해주세요’처럼 명령과 권유를 가르는 한 음절조차 고민하지 않는다. 광장을 둘러싼 차 벽 앞에서 ‘정말 이 방법밖에 없나’는 질문은 막혀 버렸다. 허점 없는 방역을 지시하는 대통령의 굳은 표정에서 국민 행복을 위한 국가의 ‘섬세한 노력’은 기대조차 힘들다. “장막을 걷어라. …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행복의 나라로’를 부르며 길 떠나는 사람을 마냥 욕해댈 자신이 내겐 없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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