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독]딸보다 어린데 "오빠라고 해" 열차 운전실의 악몽

중앙일보 2020.10.08 05:00
한국철도공사에서 근무하는 직원 A씨는 지난해 여성인 후배의 머리카락 냄새를 맡거나 얼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 A씨는 부기관사가 자신의 딸보다 어렸는데도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고, 부기관사가 견디다 못해 근무 변경을 신청하자 A씨는 주변에 욕설을 하거나 모함을 하고 다녔다. A씨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수색동 한국철도공사 수색차량기지에서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들이 차량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뉴스1]

지난해 11월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수색동 한국철도공사 수색차량기지에서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들이 차량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뉴스1]

여객·운송 업무에 종사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 직원 사이의 위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이 한국철도공사·한국공항공사로부터 2017년~2020년 8월 사이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자료 등을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다.
 
◆위험한 열차 운전실=한국철도공사에선 좁은 열차 운전실에서 장시간 함께 근무하는 선·후배 사이 성폭력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업무 특성상 근무 시간 외에도 식사·휴식을 함께 하는 점을 악용해 상급자가 하급자에 신체 접촉을 시도하거나 부적절한 말을 건네는 경우다.
 
직원 B씨는 지난해 운전 교육을 한다는 이유로 여성 하급자의 손을 잡은 채 설명했다. 퇴근 준비를 하는 부기관사에게 “옷에 뭐가 묻었다”며 허리에 손을 댄 뒤에도 성희롱성 발언을 계속했다. B씨도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4일 한국공항공사 김포공항 활주로에 제주, 부산 등에서 귀경객을 태운 항공기가 도착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연합뉴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4일 한국공항공사 김포공항 활주로에 제주, 부산 등에서 귀경객을 태운 항공기가 도착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연합뉴스]

◆성희롱 고충처리 담당이 성희롱=성희롱 고충상담 업무를 겸하는 직원이 오히려 성희롱 가해를 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공항공사 지역본부에서 일하는 C씨는 2017~2018년 성희롱 예방·고충상담 업무는 물론 심의위원까지 맡고 있었지만, 외부 출장에 동행한 피해자에 “손이 참 예쁘다” “옷이 별로 안 얇다”며 손을 대거나 “(점퍼)속에 뭐를 입었느냐” “너는 내 이상형”이라는 등 성추행을 했다. C씨는 파면당했다.
 
한국공항공사 소속의 중간간부 D씨도 2016~2018년 피감독자 신분의 여성 피해자들에게 근무시간 외 전화·메신저 등으로 사적인 연락을 지속했다. 오후 10시가 넘어 “오늘 뭐 했느냐. 집에 가면 뭘 할 거냐”고 묻는가 하면, 휴일에도 “뭐 하냐. 어디 갈 거냐”고 물었다. D씨는 2018년 10월 피해자 중 한 명에게 ‘뽀뽀’ 이모티콘을 전송하면서 “수고했어 예쁜 ○○이”라고 했다. D씨도 2018~2019년 근무처의 성희롱 고충상담원을 담당했다. D씨의 징계는 견책이었다.
 
◆SNS 성희롱엔 경징계=최근 빈번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 성희롱에는 대개 경징계가 부과됐다. 한국철도공사 소속 한 직원은 여성인 후배 직원에게 퇴근 후 외모나 매력 등을 언급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송하는 등 성희롱을 했지만 징계는 감봉 3개월이었다. 한국공항공사에서는 한 직원이 SNS 단체대화방에서 여성 후배의 의사와 무관하게 집들이를 언급, “우리끼리 날 잡아 쳐들어가자”는 성희롱성 글을 올리고 폭언을 했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관련 증거가 부족하단 이유로 견책이 부과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 [뉴스1]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 [뉴스1]

한국철도공사는 지난해부터 고충신고 전용 앱(app)을 운영하고, 고충상담 인력을 4.6배 늘리면서 성희롱 사건 조사시 고충심의위원회를 반드시 여는 등 대책을 마련했다. 천준호 의원은 “사후 대응도 중요하지만 사전 예방 교육을 확대·강화해야 직장 내 비위행위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