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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능력위주사회의 위험, 겸허와 연대의 윤리로 넘어서야

중앙일보 2020.10.08 00:42 종합 31면 지면보기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강의실에 오기까지 학교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어느 날 학생들에게 물었다. 교수, 직원, 학생, 교수 출판물 진열장. 학생들이 “보았다”고 하는 리스트는 여기에서 멈추었다. “청소하는 사람들은?” 내가 물었다. 화장실, 강의실, 교수연구실, 휴게실, 잔디와 나무, 도서관, 주차장, 식당 등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청결을 유지하게 하는 많은 청소 노동자들이 왜 학생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까. 메리토크라시 (meritocracy), 즉 능력위주사회에서 청소 노동자들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이다.
 

메리토크라시가 위험한 것은
민주사회 공동선 파괴하기 때문
사회적 연대와 책임 외면하게 해
겸허와 연대의 윤리 확산 힘써야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2020년 9월 출간한 『메리트의 폭정(The Tyranny of Merit)』에서 능력위주사회가 어떻게 민주주의의 공동선을 파괴하는가를 분석한다. 트럼프를 관찰하면서 이 책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샌델에 의하면, 트럼프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문구가 있다. “우리는 대우받을 만하다(we deserve)”이다. 출신과 상관없이 노력해서 능력을 쌓으면 된다는 능력위주사회는 원론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샌델이 지적하는 메리토크라시의 위험성이 있다. 사람들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면서, 승자인 능력자들의 특권 의식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능력중심주의가 한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의식을 구성하는 것일 때, ‘나·우리는 이 정도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OO 때문에 내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못 받는다’는 생각으로 분노가 가득하게 된다. 능력중심주의의 가치를 지닌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늘 느끼고,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게 된다. 예를 들어서, 능력지상주의자인 트럼프식의 가치를 지지하는 백인들은 흑인, 아시아인, 성 소수자, 이민자, 난민, 페미니스트 여성들에 대한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한다.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막는 것이 바로 ‘저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메리토크라시에서는 사람들을 이분화시키는 방식으로,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을 제도화하고자 하는 공동선의 모색을 불가능하게 된다.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존재를 보기 시작했다. 소위 ‘필수 노동자(essential worker)’다. 간호사, 청소 노동자, 돌봄 노동자, 택배 노동자 등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존재가 우리 생존에 중요한 ‘필수 노동자’로 호명되었다. 그런데 이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 코로나 사태에서 ‘필수 노동자’라고 호명되며 치하받던 이들이지만, 낮은 연봉을 받는 그들은 메리토크라시에서 여전히 패자다.
 
메리토크라시는 왜 문제인가. ‘전교 1등’을 유지하고, 대학에 입학하여 오랜 기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경제적, 관계적, 도덕적 지지, 또는 우연한 행운이 없다면 자신의 노력만으로 고학력이나 자격증 등의 능력을 갖추기는 어렵다. 현재 가지게 된 학벌, 의사 면허증, 변호사 자격증 등으로 대변되는 한 사람의 능력이란 애초에 여러 가지 요소들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하게 된 것이다. 자신들은 ‘전교 1등’을 하던 능력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의대생들은 외친다.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자, 정규직으로 취직하기 위해서 대학도 나오고 갖가지 공부를 해온 이들이 자신들과 같은 ‘능력자’들을 무시한다고 분노하여 시위하고 부당하다는 호소문을 돌린다
 
능력중심주의인 메리토크라시의 치명적인 위험성은, 자신의 능력이 의미하는 부채 의식의 부재, 그리고 사회적 연대와 책임의 의미를 외면하게 한다는 것이다. 메리토크라시의 횡포를 넘어서기 위하여 무엇이 요청되는가. 마이클 샌델은 겸허함과 연대의 윤리라고 강조한다. 겸허함이란 자신의 학벌과 같은 능력이 혼자의 노력 만으로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기 삶에 우연히 주어진 조건과 환경, 또는 행운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는 인식이다. 이 점에서 겸허함이란 민주사회 시민의 덕목이다. 겸허함의 윤리는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하기에 패자로 취급받는 이들에 대한 부채 의식과 책임 의식을 가지게 한다. 연대의식이 생기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모든 이들이 자신이 일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는 제도가 수립되도록 연대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사회의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가능성이다.
 
코로나 사태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중요한 교훈은 능력주의에 기반한 성공과 실패의 이해, 또한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의식은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사회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중요하며, 나의 안녕은 다른 사람의 안녕과 분리할 수 없이 상호연관되어 있다는 교훈이다. 능력지상주의를 단숨에 제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능력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는 메리토크라시의 폐해가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겸허함과 연대의 윤리를 확산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부터 공동선의 씨앗은 그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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