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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의 문화탐색] ‘생활 속 공예’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중앙일보 2020.10.08 00:12 종합 27면 지면보기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지난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김태훈)이 주최한 ‘2020 공예주간’ 행사가 열렸다. 주제는 ‘생활 속 거리두기’를 재치 있게 패러디한 ‘생활 속 공예두기’. 공예주간은 공예의 대중화를 꾀하기 위한 전시와 참여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생활 속 공예’는 어느덧 한국 공예의 시대정신이 된 듯하다. 하지만 ‘생활 속 공예’라는 말이 새삼 강조되는 것은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기에 아이러니할 뿐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생활 속 공예’라는 방향과 이념에 찬성한다. 나는 당연히 공예가 대중의 생활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생활 속 공예’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 왜 그렇지 못한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다시 공예가 생활 속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주변적 방식으로 남게 된
한국근대공예의 고리찾기
공예박물관에 거는 기대

단순하게 말하면 실용조형에서 근대화란 공예가 디자인으로 바뀌는 것이다. 공예가 전근대적인 수공업의 산물이라면 디자인은 근대 산업사회의 조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사회든지 근대화가 이루어지면 디자인이 공예를 대체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예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인간에게 손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인간의 기본적인 생산 활동으로서의 공예는 소멸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공예에는 오랜 역사와 문화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무조건 거부해서도 안 된다. 아무튼 공예는 근대화 과정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는 사회에 따라서 매우 상이한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한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공예의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보면, 그 사회의 근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알 수 있다.
 
2020년 12월 개관 예정인 서울공예박물관 조감도. [사진 서울시]

2020년 12월 개관 예정인 서울공예박물관 조감도. [사진 서울시]

근대화 과정에서 공예의 변화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그냥 소멸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다. 둘째는 주변적인 방식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이 경우 공예는 산업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대신에 예술이나 전통문화 등으로 위상이 바뀌면서 존재를 이어간다. 셋째는 공예가 여전히 중심적이며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명품산업에서 그 좋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는 첫째와 둘째에 해당된다. 근대화 과정에서 공예의 소멸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었다. 다만 살아남은 공예의 일부가 미술공예나 전통공예라는 이름의 잔여적인 방식으로만 연명함으로써 디자인으로의 전환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셋째의 형태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현실을 가리켜 나는 ‘껍데기뿐인 공예와 뿌리 없는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비주체적 근대화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20 공예주간’(9월18~27일) 사전 행사로 강릉 선교장에서 열린 ‘고택향연’ 장면. [사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020 공예주간’(9월18~27일) 사전 행사로 강릉 선교장에서 열린 ‘고택향연’ 장면. [사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따라서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공예가 대체로 예술 아니면 관광기념품으로 인식되는 것도 당연하다. 여기에는 한국 근대공예의 실상이 정확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예가 생활 속에서 이어지지 못하고, 이처럼 주변적인 방식(예술 또는 전통문화)으로 존재하는 것을 한국 근대공예의 일탈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생활 속 공예’ 지향은 근대공예의 일탈을 극복하고 공예의 본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한 노력으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넘어야 할 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오는 12월 서울공예박물관이 개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촌 입구인 옛 풍문여고 자리에 들어서는 박물관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박물관 도시 서울’ 프로젝트의 하나로서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공예박물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직 서울공예박물관의 구체적인 비전과 목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는 다시 찾기 힘든 최고의 입지에 세워질 공예박물관이 한국 근대공예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생활 속 공예’다. 달리 말하면 예술이나 전통문화로서의 공예가 아닌, 한국인의 삶 속에서 공예가 어떤 역할을 하고 의미를 갖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나는 예술이나 전통문화로서의 공예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것은 공예의 본래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비주체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갖게 된 주변적인 존재방식일 뿐이다. 따라서 한국 공예의 앞날은 고상한 예술이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를 넘어서 생활문화라는 본령을 되찾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지난 근대기의 일탈에 대한 비판적 성찰 위에서 가능하다. 그리하여 작금의 한국 공예가 ‘생활 속 공예’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과 다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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