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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마스크 싣고 미국 48개주 날았다, 코리안 비행천사

중앙일보 2020.10.08 00:03 종합 18면 지면보기
지난 8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혈액 수송을 진행한 이동진(왼쪽), 윤지우 파일럿. [사진 이동진]

지난 8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혈액 수송을 진행한 이동진(왼쪽), 윤지우 파일럿. [사진 이동진]

“그토록 꿈꿔온 파일럿이 됐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코로나19로 항공사들이 파산하기 시작했고 지난 4년간 받은 비행 교육과 훈련이 헛수고가 될까 두려웠죠.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미국에 남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의료 물품 지원 비영리단체 ‘에인절 플라이트’를 알게 됐어요.”
 

수송봉사 파일럿 이동진·윤지우씨
“항공사 채용 중단, 재능 기부하자”
자비 1500만원 들여 경비행기 임대
2차례 1만4000㎞ 미국에 희망 배송

올 초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조종사 비행 훈련을 마치고 항공사 취업을 준비하던 이동진(32)씨는 그렇게 미국 48개 주 의료물품 비행수송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대학 시절 히말라야 5800m 등정을 시작으로 울진-독도 240㎞ 릴레이 수영, 아마존 정글 222㎞ 마라톤, 미국 6000㎞ 자전거 횡단, 몽골 2500㎞ 승마 횡단 등 경험을 담은 에세이 『당신은 도전자입니까』(2014)를 낸 그는 경비행기로는 힘든 하와이, 알래스카를 뺀 48개 주 8718마일(1만4030㎞) 비행 계획을 세웠다. 수송품은 단체에서 제공하지만, 경비행기 대여료와 체류비 5000만~6000만원이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지난달 30일 화상으로 만난 그는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고 말했다. 수중의 돈 전부인 1500만원을 내자 텐마인즈 장승웅 대표, 파파레서피 김한균 대표, 채널PNF 고은우 대표 등 지인들이 힘을 보탰다. 펀딩사이트 고펀드미를 통해 1마일당 1달러를 모금해 8718달러(약 1000만원)를 에인절 플라이트에 기부하는 프로젝트도 병행했다.
 
이씨는 “의료진이 아니어도 코로나 상황에서 도울 방법이 많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며 “각자의 재능을  활용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2018년 교관으로 만나 알게 된, 미국 항공사 부기장 윤지우(26)씨도 전 과정을 함께했다. 경비행기는 기상 상황 등 변수가 많아 베테랑 파일럿의 도움이 필요했다.
 
8월 9~20일 서부와 중부 22개 주, 9월 14~27일 동부 26개 주로 비행했다. 1차 땐 캘리포니아 유카밸리와 산타아나에서 샌버너디노로 혈액을 수송하고, 2차 땐 인디애나에서 펜실베이니아로 마스크를 수송했다. 이씨는 “그 혈액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되면서도 감동적이었다”며 “스케줄이 맞지 않아 더 많이 비행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화상 인터뷰에 함께 한 윤씨는 “그동안은 나를 위한 비행을 했다면, 이번엔 오롯이 남을 위한 비행을 한 기분”이라며 “GPS 결함 등 힘든 일도 많았지만 더 성숙해졌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봉사하고 싶다”고 밝혔다.
 
3일 귀국한 이씨는 다큐멘터리 ‘아이엠어파일럿’ 배급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미국 비행학교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어 홍보하는 조건으로 장학금을 받아 학비를 댄 그의 얘기가 담긴 작품.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받기도 했다. 몽골 횡단기를 담은 다큐 ‘고삐’(2015)를 제작하며 영화사 마션브라더스를 차린 그는 “아무도 제 영화를 만들어주지 않아 시작했는데 도전 과정을 영상으로 담고 사람들과 나누는 게 재미있다”며 “극장 상영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세 번째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미국 50개 주를 돌면서 50명의 아이를 태우는 꿈이 있었거든요. 비행기를 타기 힘든 아이들에게 하늘 구경도 시켜주고 꿈도 심어주는 거죠. 지금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도 꿈을 꾸다 보면, 조금씩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결국 이뤄지더라고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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