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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엔 한글로 F·TH 발음 표기

중앙일보 2020.10.08 00:03 종합 19면 지면보기
9일은 574돌 한글날이다.
 

내일 한글날, 눈길 끄는 담론들
백낙청 신간 『한국어…생명력』 서
“빠리·이딸리아 등 경음 쓰자” 제안

“한글은 한자 음 적기 위해 만든 것”
“창제에 승려 참여” 주장도 많아

조선 세종 때인 1443년 창제(반포는 1446년)된 이래 한때는 ‘언문(言文)’이라며 천시받기도 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소멸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이제는 해외 유명스타들이 한글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문신을 새겨넣을 정도로 위상이 달라졌다.
 
간송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국보 제70호 ‘훈민정음해례’. 한글의 원리가 소개되어 있다. [사진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국보 제70호 ‘훈민정음해례’. 한글의 원리가 소개되어 있다. [사진 간송미술관]

쉽고 탁월한 표기 능력으로 찬사를 받는 만큼 각종 논란도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몇 가지 흥미로운 담론들을 모았다.
  
①한글도 ‘F’·‘TH’ 발음할 수 있다.
 
영어 단어 ‘Pile’과 ‘File’은 전혀 다른 의미이지만 현재 한글표기법에선 모두 ‘파일’이다. ‘P’와 ‘F’는 모두 ‘ㅍ’으로 표기해서다. ‘R’과 ‘L’도 다른 발음이지만 모두 ‘ㄹ’로 표기한다. 이와 관련해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출간한  『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생명력』(창비)에서 한글로도 영어의 ‘F’나 ‘TH’ 발음표기가 따로 가능하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백 교수는 “외국어를 쓸 때도 원음을 살리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원이 한글에 충분히 있다”며 “한글의 표기능력으로 약간 보완해주는 게 좋겠다”고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이미 구한말에 이런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태서신사람요

태서신사람요

그는 “『태서신사람요(泰西新史攬要)』를 보면 거기에 이미 F는 ᅋ으로 쓰고, V는 ᅄ, Z는 ᅅ, TH는 ᅂ, L은 ᄙ을 사용했다”고 제시하며 “영어 ‘TH’는 유성음(‘ㄷ’에 가까운 발음)이 있고 무성음(‘ㅅ’에 가까운 발음)이 있으니 ᅂ은 유성음 TH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어학에선 이를 연서(連書)라고 한다.
 
백 교수는 “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중국의 ‘상해(上海)’를 ‘상하이’라고 쓰고 ‘샹하이’는 틀린 것인데 실제 발음은 ‘상’도 ‘샹’도 아닌 그 중간 음”이라며 “이것은 ㅅ와 ㅇ을 연서(ᄵ)해서 표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태서신사람요(泰西新史攬要)』는 1897년 간행된 세계사 책이다.
 
또 백 교수는 프랑스 도시 파리는 ‘빠리’, 이탈리아는 ‘이딸리아’라고 표기하는 사람도 많다는 점과 실제 해당 국가에서 부르는 발음도 이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현행 국립국어원의 표기법은 영어중심주의와 행정편의주의”라며 “우리말의 변별력을 높이려면 된소리(ㄲ·ㄸ·ㅃ 등)를 허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도 제안했다. 그는 “훈민정음 창제의 목적이 백성들 쓰기 편하라는 것이고, 『동국정운(東國正韻)』에서 보듯 중국어를 정확하게 발음하는 걸 배우는 데 도움이 되라고 만든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②한글은 한자의 발음기호로 만들었다?
 
한글 창제가 세종의 ‘애민사상’ 때문이라는 기존의 상식에 대해 도발하는 주장이다.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저서 『한글의 발명』(김영사)을 통해 “(한글 창제는) 중국 한자음과 우리 한자음이 너무 달라서 우리 것(한자 발음)을 교정해 『동국정운』을 만들었다”며 “백성에게 가르쳐야 하는 올바른 발음이란 의미로 ‘훈민정음(訓民正音·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주장했다. 한글에 글자(字)대신, 정음(正音)이라는 명칭을 붙인 이유다. 즉, 정음(正音)은 중국 한자음의 표준음을 가리킨다.
 
여기엔 역사적 배경이 있다. 국토가 넓고 여러 왕조가 들어선 중국은 표준어가 몇 차례 바뀌었다. 그래도 한(漢)·당(唐) 시대에 수도 장안(지금의 시안)에서 사용한 ‘통어(通語)’가 오랜 기간 사실상의 표준어로 오랜 기간 쓰였다. 그런데 몽골이 원나라를 세우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원나라의 수도인 연경(지금의 베이징) 일대에서 몽골인들이 쓴 중국어, ‘한아언어(漢兒言語)’가 급부상했다. 이렇게 바뀐 한자음이 고착되면서, 명나라가 들어선 뒤에도 바뀌지 않았다.
 
정 교수는 “몽골식 발음이 기존에 쓰이던 중국어와 서로 달라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 사람들은 ‘몽고음’라고도 불린 북경어, 즉 한아언어의 발음을 익히는 데 필사적이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한아언어를 배우기 위한 사전(『고금운회(古今韻會)』)이 간행됐고, 세종도 이를 번역하라고 지시했다. 중국과 접촉이 빈번한 조선에서 정통 한자음을 익히는 것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어서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이런 분위기 속에 원나라 이후 크게 변한 중국어 발음을 되도록 현실에 가깝게 맞추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주장이다.
  
③한글 창제에 불교 승려들이 참여했나.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는 세종의 한글 창제 작업에 승려 신미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줄거리를 담았다. 이에 앞서 2014년에도 소설가 정찬주가 『천강에 비친 달』(작가정신)이라는 소설에서 비슷하게 주장했다. 당시 성현이 쓴 『용재총화』, 신미대사의 가문인 ‘영산 김씨 세보’ 등을 조사한 그는 “범어(산스크리트어)에 능통한 신미 대사가 한글 창제에 큰 역할을 했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졌다. 다만 그를 보호하기 위해 역사에는 기록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밝혔다.
 
신미가 어느 정도 역할 했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지만 한글의 발전과 보급 과정에 불교 승려들이 다수 참여했다는 것은 근래 연구에서도 인정되고 있다. 세조 때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한글로 적은 『월인석보(月印釋譜)』에는 신미(信眉), 설준(雪埈), 해초(海超), 학조(學祖) 등 승려 10명이 자문 등을 맡았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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