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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 칼럼] 아토피 정치와 공감의 시대

중앙일보 2020.10.07 00:43 종합 35면 지면보기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지금 우리 정치는 심각한 아토피 병에 걸려있다. 면역력이 결핍되어 아토피 병에 걸리면 아주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려움증을 참지 못해 자꾸 긁어서 피범벅을 만들어 생채기투성이가 된다. 어찌 보면 참을 수 있는 자극도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중병 이상으로 고통에 빠지게 한다.
 

말초적 이슈에 빠진 아토피 정치
공감능력으로 사회면역력 키워야
중병을 앓고 있는 나라 걱정하고
국민 위한다면 공감의 시대로 가야

지난 일 년 동안 조국, 추미애 두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여야 공방으로 국정운영의 모든 정치 시계는 멈추어 섰다. 여야 정치권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문명사적 대전환의 소용돌이에서 정치가 풀어야 할 많은 숙제를 뒷전으로 미루고 사소한 자극으로 서로 생채기를 내는 아토피 정국으로 몰고 갔다. 어쩔 수 없는 자식 사랑 때문에 사회지도층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사과하고 넘어갔다면 이처럼 온 나라에 생채기를 내지 않고 끝났을 일일지도 모른다. 연일 사소한 정보의 시시비비를 가르고 법적 책임을 논하는 기 싸움으로 법정투쟁까지 이어진 정치공방을 후대의 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법으로 면책이 되면 정치적으로도 면책이 될 수 있을까?
 
여야 간 미세한 증거들을 파헤치고 법적 논리의 정당성을 따지면서 공방전을 벌이는 사이에 중요한 국정 논의는 실종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야기된 추경, 국채발행, 영세상인들의 폐업, 청년실업,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세금인상,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집단이기주의, 규제의 덫 등 온 사회가 중병을 앓고 있는데 정치인 자녀들의 인턴 자격이나 사병의 휴가문제로 피가 나게 긁어대는 아토피 병에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은 것이다.
 
윤희숙 의원의 5분 발언이 주목을 받은 것도 민생, 경제 등 정말 중요한 국정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제 국민은 아토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가 아니라 중병을 고치려는 정치를 원한다. 개천절 집회를 정부여당이 과도하게 규제하는 이유와 두 법무부 장관의 문제가 뭐라는 것을 이제 알만한 국민은 다 안다. 야당도 이런 문제에만 민감하게 반응하기 보다는 심각하게 다가오는 중병을 발견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야당이 법무부 장관 스캔들 문제 다루듯 산적한 국정 이슈에 대해 현미경 조사와 국정 질의를 통해 대안을 제시했으면 지지율도 반등하였을 것이다.
 
아토피는 고대 그리스어로 ‘비정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지금 우리 정치는 비정상적이다. 우리 주변에 아토피 병이 만연한 이유는 공해, 인스턴트 식품 등 환경오염의 탓이라고 한다. 아토피는 산업사회의 인공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면 쉽게 치유될 수도 있다. SNS, 종편, 인터넷 등 커뮤니케이션 환경오염이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적 아토피 현상을 강화시키고 있다. 정치인들은 연일 SNS와 개인방송 등을 통해 자극적인 표현과 감정적 논리로 저급한 정치공방을 하고 언론은 이를 확대 재생산시켜 국민이 가려움증에 못 견디게 만든다.
 
이제 아토피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토피 치유의 사회 면역력은 ‘공감’ 능력이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더불어 사는 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산업사회의 치열한 경쟁상태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상대편의 감정에 공감할 때 문제가 해결되고 공동선은 증진된다.
 
촛불혁명을 통해 적폐청산을 주장했지만 또 다른 적폐가 늘어나고, 민주화운동 세력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상대편의 자유와 민주를 제한한다. 군사정권이 되었건 민주화 정권이 되었건 장기집권의 구상은 비민주적이다. 상대편을 적으로 몰고 자신은 언제나 옳다고 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완벽한 조직은 없고 완벽한 인간도 없다. 언제나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열린 사회’가 된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프랑스 계몽철학자 볼테르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인간은 유약함과 오류의 결정체다. 그러니 서로 상대방의 어리석음을 어느 정도 눈감아 주자.” 모든 잘못을 덮어주자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눈의 티끌은 들추어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독선을 버리자는 것이다. 새로운 정부도 화합과 소통을 약속했지만 편 가르기와 승자독식은 더 심화되었다. 선입견은 편견을 낳고 편견은 독선을 낳고 독선은 내로남불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편견』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편견을 인지하지 못하면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고 했다.
 
작은 잘못에 대한 관용도 불허하고 도덕적 치명타만 안겨주어 통과의례로 전락한 국회 인사청문회제도의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정치인들이 내로남불의 꼬리표를 떼고 싶으면 좀 더 품격있게 자중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세계 모든 종교의 공통적 윤리기준인 “네가 타인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너 역시 타인에게 하지 말라”는 황금률을 정치인들은 깊이 새겨야 한다. 공감 능력을 가진 합리적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리는 공감의 시대가 오면 좋겠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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