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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졌지만 민사 이겼다, 곽현화 반전 이끈 '희대의 사건'

중앙일보 2020.10.06 05:00
방송인 곽현화가 2017년 9월 11일 영화 '전망 좋은 집' 이수성 감독이 신체 노출신과 관련해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방송인 곽현화가 2017년 9월 11일 영화 '전망 좋은 집' 이수성 감독이 신체 노출신과 관련해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자신의 동의 없이 가슴 노출 장면이 담긴 영화를 배포했다며 이수성(45) 영화감독을 형사고소했던 곽현화(39)씨. 대법원까지 다퉜지만 재판부는 이 감독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곽씨는 민사소송에서 이기게 됐는데요, 두 사건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판다]

가슴 노출 장면을 둔 배우와 감독의 싸움

사건의 시작은 8년 전인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곽씨는 성인영화 ‘전망 좋은 집’의 주연 배우 출연 계약을 맺으면서 가슴 노출 장면은 촬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계약서에도 “노출 장면은 갑과 을이 사전에 충분한 합의하에 진행함을 원칙으로 하고 촬영 중 사전에 합의된 내용 이외의 요구는 을이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죠.  
 
촬영이 한창이던 그해 5월 이 감독은 곽씨를 설득합니다. 

“가슴 노출 장면은 극의 흐름상 꼭 필요한 부분이다. 후회할 수도 있으니 일단 촬영을 해 보고 나중에 편집과정에서 영상을 보고 가슴 노출 장면을 제외할 것인지 결정하면 된다. 그때 그 장면을 제외해 달라고 하면 반드시 제외해 주겠다”

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동의를 받고 가슴 노출 장면을 찍은 이 감독은 영화 개봉 전 곽씨를 사무실로 따로 부릅니다. 장면을 본 곽씨는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고, 이 감독도 이를 받아들여 노출 장면이 삭제된 상태로 극장에서 개봉합니다.  
 
문제는 1년 뒤 ‘감독판’이었습니다. 2013년 11월부터 곽씨의 가슴 노출 장면이 포함된 이른바 ‘무삭제 노출판’이 IPTV에서 반포된 겁니다. 이듬해 2월 이 사실을 알게 된 곽씨는 이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합니다. 이 감독은 투자사 대표 이야기를 하며 곽씨에게 사과합니다.  
 
통화내용 中 일부
곽현화: 감독님, 제가 감독님한테 상반신 노출 신 넣으라고, 해도 상관없다고 말씀을 드렸냐고요. 
이수성: 죄송합니다. 죄송하고, 제가 판단을 잘못했고 제 불찰이고요. 
곽: 그러면 지금 인정하신 거죠? 제 동의 없이 하신 거? 
이: 예, 인정합니다. 제 잘못이에요. 죄송합니다.   
곽: 이게 한 번 터지면 그냥 저는 그럼 끝이잖아요. 그러면 감독님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제 얼굴 팔리는 일이잖아요? 
이: 제가 먼저 그렇게 하자고 하진 않았어요. 투자사 대표가 그렇게 하자 했는데 제가 “현화씨한테 얘기를 한 번 해볼게요” 그러고 현화씨한테 연락을, 동의를 못 받고 한 건 내 책임이에요. 죄송해요.
곽씨는 이후 이 감독을 성폭력 처벌법의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혐의로 고소합니다. 촬영 당시에는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더라도 사후에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물을 반포‧판매 또는 공공연하게 상영한 자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 감독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는 “강하게 항의하기에 달래기 위해 사과를 했을 뿐이지 ‘곽씨의 동의 없이 상반신 노출 장면을 배포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호의로 극장판 개봉 당시 상반신 노출 장면을 제외해 준 것이지 계약상 영화와 관련된 모든 권리는 이 감독에게 있다는 겁니다.  

 

감독의 ‘반포’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방송인 곽현화에게 성폭력 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한 영화 '전망좋은집'의 이수성 감독이 2017년 7월 17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송인 곽현화에게 성폭력 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한 영화 '전망좋은집'의 이수성 감독이 2017년 7월 17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심 재판부는 계약서 중 한 부분에 주목합니다. 바로 “갑은 본건 영화의 모든 지적 재산권의 유일하고, 독점적인 권리자가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계약서 中 일부
을이 본건 영화와 관련하여 제공한 연기와 관련한 모든 용역의 결과물은 갑에게 영구적으로 귀속된다. 갑은 국내외를 포함하여 본건 영화의 극장상영 및 재상영, 공중파 tv 및 유료, 무료를 불문한 케이블 tv, 위성방송의 방영, 비디오, CD, DVD, OST 음반의 제작 및 배포, 유무선 인터넷 전송, IPTV, 위성 및 지상파 DMB, 모바일 전송, 도서의 출판, 캐릭터의 사용, 속편의 제작, 리메이크권을 포함한 2차 저작물의 작성권, 행위 수출 등 본건 영화로부터 발생 및 파생 가능한 직접적, 간접적인 모든 지적 재산권의 유일하고, 독점적인 권리자가 된다.

1심 재판부는 이 감독이 곽씨에게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상반신 노출 장면이 포함된 영화를 배포한 건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계약서 내용에 따르면 해당 장면을 포함한 편집, 배포 권한이 모두 이 감독에게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배포 자체가 곧바로 곽씨의 의사에 반한 것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고 봤고, 이 감독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이 감독, 권한이 있다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2심 재판부 역시 이 감독이 가슴 노출 장면을 포함한 무삭제판 배포에 대해 곽씨에게 별도의 문의를 하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은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곽씨의 의사에 반해 영화를 배포했다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극장판 영화 상영을 앞두고 가슴 노출 장면을 삭제한 것이 향후 다양한 루트를 통해 배포될 영화에서도 해당 장면을 모두 제외하겠다는 확정적 약속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2심은 “이 감독으로서는 가슴 노출 장면을 포함할지를 비롯해 무삭제판 편집과 관련한 최종적인 결정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 감독이 노출 장면을 배포할 권한을 가졌다고 생각했을 수 있기에 배포 행위를 처벌할 수는 없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도 이러한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고, 2018년 2월 형사사건은 이 감독의 승소로 마무리됩니다.  
 

“성적 수치심 장면 무단 반포” 인정한 민사

[사진 영화 '전망 좋은 집' 스틸컷]

[사진 영화 '전망 좋은 집' 스틸컷]

그런데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83단독 이예림 판사는 곽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처음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5개월여 만에 나온 판결입니다.  
 
이 판사는 이 감독이 가슴 노출 장면을 사용하려면 곽씨의 동의를 따로 받아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봤습니다. 형사 소송과는 전혀 다른 판단입니다. 이 판사는 극장판 가슴 노출 장면 삭제와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가슴 노출 장면을 중요하게 여긴 이 감독이 단순한 호의로 가슴 노출 장면을 삭제해 줬다기보다는 사용 여부를 협의해 정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삭제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는 겁니다. 또 이 감독이 잘못을 인정하면서 사과했는데, 이것이 단순히 곽씨를 달래기 위해 건넨 사과의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사는 “이 감독은 곽씨의 동의 없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가슴 노출 장면이 포함된 영화 무삭제판을 반포함으로써 초상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곽씨에게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가슴 노출 장면을 무단 반포함으로써 곽씨가 정신적 고통을 느꼈을 것은 충분히 인정되고, 곽씨가 속칭 노출 화보를 찍은 연예인이라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n번방 사건 발생”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곽씨를 대리한 이은의 변호사는 “n번방 사건을 겪은 후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 않은 동영상 유포가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법원도 자각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비록 피해자가 촬영에는 동의했고, 가해자가 ‘유포도 동의한 줄 알았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무죄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게 됐다는 겁니다. 이번 사건에 대입하면 가슴 노출 장면 반포에 곽씨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확했고, 이 감독이 ‘계약서상 반포 권한이 나에게 있는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고 해서 무죄가 될 수는 없다는 거죠.  
 
이 변호사는 “형사소송에서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더라도 민사소송의 위법성 판단은 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판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인지 감수성이 판결에 충분히 반영된 사례로 볼 수 있다”며 “비록 재심하지는 못하지만 만약 지금 형사소송을 한다고 해도 똑같은 판결이 나올지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곽씨는 “피해자로 인정해준 재판부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며 보상금액에 있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상대가 항소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만족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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