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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보다 힘든건 중기 불신···신기술 갖고도 회사 매각할판“

중앙일보 2020.10.06 05:00
오원철 대표(가운데)가 지난해 해상용 첫 스크러버 출하식을 기념하는 모습. 중소기업이 60MW급 엔진에 장착하는 스크러버를 만들어 낸 첫 사례였다. 사진 정원이앤씨

오원철 대표(가운데)가 지난해 해상용 첫 스크러버 출하식을 기념하는 모습. 중소기업이 60MW급 엔진에 장착하는 스크러버를 만들어 낸 첫 사례였다. 사진 정원이앤씨

신기술 개발하고도 발만 동동 

“좋은 기술을 사장하지 않고 직원들 삶의 터전만 지킬 수 있다면 인수가 되든 합병이 되든 뭐가 아쉽겠습니까.”
오원철(65) 정원이앤씨 대표는 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국내 한 대기업으로부터 인수·합병(M&A) 제안을 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원이앤씨는 경상남도 고성 조선특구로에 있는 공해방지 설비 제조업체다.  
 
오 대표는 올해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2014년 세워진 회사는 지난해 매출 126억원으로 전년 대비 6배 가까이 성장했다. 올 1월엔 하나의 장비로 대기오염물질인 ‘황산화물(SOx)’과 ‘질소산화물(NOx)’을 동시에 90~99% 저감하는 기술을 개발해 해양수산부로부터 신기술 인증도 받았다. 특히 올해는 국제해사기구(IMO)가 모든 선박에 대해 연료의 황 함유량을 낮추도록 하는 환경규제를 발동한 해라, 스크러버(탈황장치)에 관심을 보이는 국내외 기업들이 많았다. 
 
하지만 악몽 같은 코로나19가 터졌다. 국내외 할 것 없이 공장들이 문을 닫고 선박 물동량은 크게 줄었다. 불과 1~2개월 사이 500억원 규모의 수주 계약이 무산되거나 미뤄지고 사업 미팅들도 취소됐다. 오 대표는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한해가 다 날아갔다. 수년간 공들여 개발한 기술이 빛을 못 보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내 중기보다 중국 제품 선택  

코로나보다 더 힘든 건 업계에 퍼진 중소기업에 대한 불신이었다. 친환경 기조에 맞춰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 선박에 탈황장치를 설치하도록 장려해도, 선주들은 국내 중소기업은 못 믿겠다며 독일·일본 등 선진국 제품이나 중국 등 가격이 싼 제품을 선택했다. 
 
오 대표는 “한국에서 중소기업은 우수한 기술을 가져도 정부든 고객사든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며 “중소기업 사장들끼리 만나면 ‘우리 손자들은 (중국에 시장을 다 뺏겨) 중국사람 바람막이하고 있겠다’고 걱정을 한다”고 전했다. 어려운 시기를 틈타 대기업이 기술을 뺐다시피 하려는 불공정 행위도 여러 번 경험했다. 오 대표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그럴싸하게 포장할 줄도 모르고 법으로 스스로 보호할 줄도 모르는데, 시장의 큰 벽을 느꼈다”고 했다.  
 
코로나 위기 8개월째. 오 대표는 희망을 잃지 않고 회사를 건사할 길을 찾고 있다. 최근엔 일본의 대표 선사인 몰(MOL)사가 탈 오염 스크러브를 제작해 달라는 의뢰를 해 와 중소벤처기업부의 구매 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에 참여 중이다. 
오원철 정원이앤씨 대표(왼쪽)가 지난해 탈황설비 제작과정을 중간 점검하기 위해 방한한 이스라엘 선박사 감독관과 함께 한 모습. 사진 정원이앤씨

오원철 정원이앤씨 대표(왼쪽)가 지난해 탈황설비 제작과정을 중간 점검하기 위해 방한한 이스라엘 선박사 감독관과 함께 한 모습. 사진 정원이앤씨

 
해외 시장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스라엘 선박사가 정원이앤씨의 설비에 관심을 보여 추석 직후 설명회를 하려 했지만, 코로나 재확산에 따른 이스라엘 정부의 재택근무 의무화로 해당 회사와 대면 미팅이 어려운 상태다. 내몽골 석탄 발전소들도 설비 계약 의사를 보내왔지만, 중국 정부의 입국 승인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오 대표는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 연말을 넘기더라도 시장의 회복은 더딜 것 같다”면서도 “욕심을 내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가보려고 한다”고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뉴딜’ 경기부양 방향은 탈 오염 설비 업체인 이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오 대표는 정책의 일관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흐지부지되는 과거 상황을 많이 봐서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바뀐다면 기업들이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이어 “한국도 이제는 있는 기술을 더 발전시키고 원천기술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자국 기술을 등한시하고 무조건 해외 기술만 가져오려는 짧은 시각을 버릴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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