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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훔치고 위조지폐로 장보고…'코로나 장발장' 판친다

중앙일보 2020.10.06 05:00 종합 2면 지면보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계속되면서 절도나 사기 같은 '생활고형 범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배추밭에서 배추 몇포기를 슬쩍하거나 만화방에서 위조지폐를 쓰고 전봇대에 올라 전깃줄을, 식당 창문을 넘어 1만원짜리 주방용품을 훔치는 식이다. 반면 폭행이나 교통 같은 강력범죄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①1만원 때문에 불법 침입…생계형 절도 기승

차량 절도 이미지. [연합뉴스]

차량 절도 이미지.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박모 씨는 서울 성북구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이 불가능해지자 밀린 월세·관리비를 내려고 피해자 조모 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1000만원을 빌렸다. 기존에 8차례 비슷한 방식으로 벌금형을 받았던 박씨는 이번에 또다시 빌린 돈을 못 갚자 지난달 11일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천안에서는 40대 남성이 식당 창문을 열고 들어가 11차례에 걸쳐 재물을 훔치거나 훔치려고 시도했다. 그가 이 식당에 한 번 들어갈 때마다 훔친 돈은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7만원 정도였다. 1만7000원짜리 주방용품 1개만 들고나온 적도 있었다.  
 

②배추·전선까지…돈만 되면 뭐든 훔친다 

지난 8월 15일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일용직 노동자가 길가에 주차된 차량을 훔쳐 타고 다니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배가 고파 걸을 힘이 없던 그는 차량 열쇠가 꽂힌 차량을 우연히 발견해 훔쳤다고 진술했다.  
 
8월 25일에는 배추 도둑이 나타났다. 경찰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의 배추밭에서 배추를 들고 나르던 70대 남성과 60대 여성을 검거했다.  
 
심지어 전기가 흐르지 않는 보조용 전선을 훔쳐간 사례도 있다. 50대 남성은 수시로 전봇대에 올라가 절단기로 전선을 잘랐다. 전선을 고물상에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법원은 8월 7일 “생계형 범죄로 보이지만, 특수절도·절도 등 전과가 있고 누범 기간에 자숙하지 않았다”며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사기·절도 급증

범죄 유형별 범죄 발생 증가율. 그래픽 박경민 기자

범죄 유형별 범죄 발생 증가율. 그래픽 박경민 기자

생활고 범죄 증가세는 대검찰청이 분기별로 발간하는 ‘분기별 범죄 동향 리포트’에 잘 드러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분기 전체 범죄 발생 건수(40만4534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0% 증가했다. 특히 유형별 범죄를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가장 많이 증가한 건 사기·절도 등 재산범죄였다(11.3%·15만5718건). 폭력범죄(0.5%)나 교통범죄(1.2%)는 같은 기간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올해 재산범죄가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서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면, 대체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사기·절도와 같은 재산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③만화책 보려고 지폐 위조

위조지폐 이미지. [연합뉴스]

위조지폐 이미지. [연합뉴스]

생계형 지폐 위조 범죄도 등장했다. 지난 8월 21일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시장 상인은 손님에게서 1만원권 위조지폐 1장을 받아 112에 신고했다. 상인은 전날 받은 돈을 은행에 입금하려다 위조지폐를 발견했다. 
 
같은 달 1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만화방에서도 손님에게 받은 5만원권 위조지폐가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만화방에서 발견한 위조지폐는 5만원권 지폐를 컬러 프린터로 일반 용지에 인쇄하는 방식으로 위조했다.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발견된 원화 위조지폐는 8매다. 권종도 1000원권부터 5000원·1만원권·5만원권 등 다양하다. 이호중 하나은행 위변조센터장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실물경제 불확실성 커지면서 위조지폐가 상대적으로 많이 발견되고 있다”며 전통시장 상인 등 금융 취약계층에게 주의를 촉구했다.
 

④코로나19 때문에…신종 범죄 등장

경찰이 저가 마스크를 KF94 등급으로 둔갑시킨 일당을 입건했다.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찰이 저가 마스크를 KF94 등급으로 둔갑시킨 일당을 입건했다.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코로나19는 과거에 드물었던 새로운 유형의 범죄도 창조하고 있다. 버스·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해 업무방해죄로 입건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내버스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탑승해 기사에게 욕설했다가 업무방해죄 혐의로 입건된 사례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버스에 탑승거부를 당하자 30분간 운전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차량 운행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가짜 KF94 마스크를 판매했다가 적발되는 경우도 과거에 못 보던 범죄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I씨는 ‘MIK, 황사방역용마스크 KF94’라고 기재한 비닐 팩에 일반 마스크를 포장·판매했다가 적발돼 지난달 15일 서울남부지법에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밖에 자가격리 위반 역시 코로나19 시대가 창출한 범죄다. 감염병예방법은 자가격리 지침을 위반하다 적발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⑤궁색해진 고령층 범죄도 급증세

올해 들어 급등한 고령층 실업률. 그래픽 박경민 기자

올해 들어 급등한 고령층 실업률. 그래픽 박경민 기자

코로나19 이후 피의자가 고령층인 범죄도 늘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발생한 고령범죄자수(3만3245명)는 지난해 같은 기간(3만245명) 대비 9.9% 증가했다. 여기서 세 명 중 한 명이 사기·절도 등 재산범죄를 저질렀다(9069명).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노인일수록 경제 위기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고령층의 재산범죄 급증은 경기 침체와 관련이 있다”며 “생계가 어려운 노인일수록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통계청 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 8월 비경제활동인구(1686만4000명)는 지난해 8월 대비 53만4000명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이 급증했다는 뜻이다. 특히 코로나19가 국내서 본격적으로 확산한 지난 5월 55~79세 고령층 실업률(3.8%)은 200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경신했다.
 
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조사연구실장은 “코로나19 등으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 간헐적으로 직업을 갖는 계층이 먼저 타격을 받는데, 고령자 중에서 이런 상황이 처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고령층 범죄가 증가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문희철·박현주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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