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태윤의 이코노믹스] 가파른 증가 속도…10년 전 유럽 재정위기국 수준에 필적

중앙일보 2020.10.06 00:30 종합 24면 지면보기

과속 질주하는 국가채무의 파국적 결과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코로나19 피해 계층을 지원하고 경기상황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네 차례 편성했다. 전쟁으로 지출이 급증한 1950년대나 경제발전이 미흡해 세금 징수조차 힘들던 60년대를 제외하고, 추가경정예산을 4차까지 편성했던 기록은 찾기 힘들다. 정부 지출은 확대되는데 기업 여건 악화로 법인세 등 주요 세수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8년 35.9%에서 올해 45% 내외로 치솟을 것으로 추정된다. 채무 비율이 2년 사이 9% 포인트, 그 증가율은 25%에 달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80%
스페인 6년에 도달, 한국 9년 예상
빚 자체보다 늘어나는 속도 더 위험
국가 신용도 흔들리고 실업도 늘어

다른 국가에 비해 국가채무 비율의 절대 수치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 증가 속도는 매우 놀랍다. 채무증가에 일단 속도가 붙으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배가되면서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가 당장 한국의 신용등급을 변화시키지는 않았지만, 국가채무 비율의 향후 급증에 대한 위험을 언급하기도 했다.
 
중기 국가재정운영계획(2020~2024)에 비춰도 2024년 채무 비율이 60%에 육박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의 증가 폭과 속도라면 2024년 이전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2년간 9% 포인트의 최근 증가 폭과 같은 속도로 늘어난다면 40% 돌파 후 9년 만에 2배인 80%에 도달하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국가채무 비율 240%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일본도, 1978년에는 39.9% 정도였고 1994년 그 비율이 2배인 80%대에 도달하기까지 16년이 걸렸다. 미국도 1980년대 초반 40%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0%대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이 걸렸다.
 
즉, 현재 높은 채무 비율에 이른 국가들도 지금 상황에 도달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에 비교하기 어렵게 국가채무 비율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재정위기국이 위기 당시에 경험한 속도에 필적할 정도다. 실제로 2010~2011년 유럽 재정위기를 경험한 국가를 보면 순식간에 정부 부채 비율이 급증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는 2008년 100%대였던 국가채무 비율이 불과 3년 후 2011년에는 180%까지 높아졌다. 스페인은 2008년 40%대에서 6년 후 2012년에 2배인 80%대에 도달하고 아일랜드도 2008년 40%에서 불과 2년 후 80%대에 이른다.
  
남미 국가도 채무 급증할 때 위기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만성적인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남미 국가도 채무 비율의 절대 수치 자체가 높기보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는 가운데 채무 비율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지곤 했다. 국가채무 비율이 90%에 달하며 현재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이다. 아르헨티나는 2002년 160%대로 부채 비율이 치솟았는데, 직전 2001년도에는 그 비율이 50%대였고 심지어 2000년에는 40%대였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80년대 브라질·멕시코·칠레 등 남미 국가에서 발생했던 재정·외채 위기는 정부의 방만한 재정지출과 함께 이를 위해 자금을 해외에서 조달한 측면과 깊이 연관된다. 즉, 국가채무 비율이 높지 않더라도 주로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면 외화 부족에 시달리면서 위기에 노출된 것이다.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 증가 속도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 증가 속도

따라서 지금 당장 다른 나라에 비해서 국가채무 비율이 높지 않아도 어떻게 비율과 속도를 관리하고 제어할지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을 극복하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이 10%대 머물고 있을 정도로 건전한 재정 상황이 근본적인 힘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재정 여건이 있었기에, IMF에서 달러 자금을 들여올 때도 남미 국가들과 다른 처방을 요청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에 구제 금융을 제공했던 IMF의 경우 지원 초기에는 재정위기국을 대상으로 한 전형적인 처방인 고금리 정책을 요구했다. 재정 건전성 약화로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진 국가는 해외투자자에게 고금리를 제공하며 국채를 팔아야 재정 상황도 개선하고 외환 유동성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처방 하에서 해당 국가의 기업은 죽어 나갈 수밖에 없다. 기업 파산과 실업자 폭증이다. 외환위기 초기 고금리 정책으로 우리가 생생하게 겪었던 일이다.
  
빚 늘수록 경제적 부작용도 막대
 
물론 확장 통화정책으로 금리 수준을 낮추려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가채무가 증가한 결과로 발행된 국채가 시장에 쏟아지는 경우는 국채보다 위험한 회사채의 가격을 더욱 떨어뜨리기 때문에, 전반적인 정책금리는 낮아도 회사채 금리는 상승하며 기업의 자금조달을 위협한다. 따라서 재정 악화에 따른 위기는 기업의 자금 상황을 압박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강력한 실업의 고통을 수반한다.
 
유럽 재정위기 전후 실업률 변화

유럽 재정위기 전후 실업률 변화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4년 아르헨티나 국가채무 비율이 40%일 때 실업률은 7.3%였는데, 국가채무 비율이 90%에 달하는 최근에는 실업률이 9.8%로 증가했다. 유럽 재정위기 국가들 역시, 위기 전후에 실업률이 폭증했다. 2008년에서 2013년 사이 그리스는 7.8%에서 27.5%로, 스페인은 11.3%에서 26.1%로, 아일랜드는 6.8%에서 13.8%로 치솟는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지속해서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하는 방법밖에 없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의 급증을 막으려면, 분자에 해당하는 국가채무의 총량을 관리하거나 분모에 해당하는 GDP를 증가시켜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당장은 채무 비율이 낮아 보여도 재정준칙을 통해 국가채무의 총량 자체가 커지는 속도를 관리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GDP를 증가시키도록 재정이 꼭 필요하고 효과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선별적으로 지출되고 있는지 평가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즉, 같은 재원을 사용하더라도 경제를 성장시키는 효과가 있는 곳에 지출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최근처럼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되는 사례의 확대는 곤란하며, 부채 총량 관리와 함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인지 정부 사업의 경제성 평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부채 상한제’로 정부 부채 통제
미국은 재정 관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평가된다. 필요한 경우엔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찍어 미국 정부의 국채를 인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정부 부채에 대해 상한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정부 부채의 급증을 막고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 부채 총량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힘들고 심지어 궁극적으로는 기축통화의 지위도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 부채가 너무 빠른 속도로 커지지 않도록 제어한다. 대표적인 장치가 미국의 정부 부채 상한(Debt ceiling)제도다.
 
20세기 이후 미국에서 채무불이행 위험에 따른 실질적인 국가 부도 상태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부 부채가 상한에 도달한 위기는 1995·1996·2011·2013년 등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부채 상한 위기는 오히려 미국에서 정부 부채가 적절히 관리되고 건전성에 근본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재정이 적절히 관리되는 신호로 간주할 수 있다. 물론, 세입·세출 편성과정에서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측면을 고려하면, 굳이 정부 부채 상한까지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예산 편성과정에서 자신에게 관련된 지출을 증가시키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득이 된다고 계산하는 의원 개인의 이해관계가 작용하지 않도록 예산의 총액 자체를 제어하고 관리하기 위한 장치로는 의미가 크다.
 
그렇다고 해서 필요한 분야에까지 예산을 사용하지 않거나 부채를 절대 증가시킬 수 없는 것처럼 접근하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다. 정말 쓰임새에 맞게 사용되는 것은 중요하다. 예산은 각 연도의 경제 사정에 따라 적자가 될 수도 흑자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계속 지출이 확대된 결과 누적해서 적자만 쌓여 가고 정부 부채가 증가해서도 곤란하다. 따라서 미국의 정부 부채 상한 제도와 같이 중기 시계(視界)에서 부채 증가의 가능성은 열어 놓되, 증가총액의 상한을 강제하는 방식을 우리나라도 조속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