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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구멍 숭숭’ 재정준칙으로 나라 곳간 지켜낼 수 있나

중앙일보 2020.10.06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정부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60%, 연간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 3% 내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의 재정준칙을 제시했다. 이 기준치를 넘어가면 정부는 지출 효율화와 수입 증대 같은 재정 건전화 대책을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나랏빚 폭증을 막아 재정 건전성과 국가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장치다.
 

구속성보다 유연성에 방점 찍혀 우려
준칙다운 준칙 돼야 포퓰리즘 막는다

재정준칙은 2016년부터 추진돼 왔으나 20대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됐다. 그 사이 급속도의 복지 확대, 경기 침체, 코로나19 사태 등이 겹치며 나라가 빚더미로 몰렸다. 특히 올해는 네 번이나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되면서 국가채무가 100조원 넘게 늘었다. 팬데믹 위기 국면에서 재정 역할이 불가피했지만 선거까지 맞물리면서 국가채무 비율은 40% 중반을 바라보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로 재정준칙 도입을 미뤄 왔다. 코로나19 특수 상황을 내세우면서 아직 재정의 여유가 있다는 청와대와 여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야 도입 계획이 발표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만시지탄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이렇게 발표된 내용이 구속성보다는 유연성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제대로 된 준칙 구실을 할지조차 의심스럽다. 기재부는 국가채무 비율과 재정적자 비율을 동시에 지키지 않아도 되도록 한도 계산식을 짰다. 둘 중 하나가 기준치를 초과하더라도 다른 지표가 기준치를 밑돌면 준칙을 충족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전쟁, 대형 재해, 경제 위기 등이 발생하는 경우 이 한도를 적용받지 않는다. 경기가 둔화할 때는 재정적자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구체적 산식 등 세부 수치를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해 정부가 국회 간섭 없이 기준을 바꿀 수 있는 여지도 마련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가재정법 개정 검토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159개국은 이미 재정준칙을 갖고 있다. 이 중 법률에 근거를 둔 국가는 103개국, 아예 헌법에 명시한 국가는 14개국에 이른다. 그만큼 강한 구속성을 갖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독일은 2009년 헌법에 ‘부채 브레이크’를 도입해 2016년부터 재정적자 규모를 GDP의 0.35% 이내로 관리하고 있다. 강력한 준칙에 기반을 둔 든든한 재정이 유럽에서 가장 앞선 코로나 대책의 힘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정부가 마음먹고 곳간을 풀겠다면 대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재정준칙을 두는 이유는 이런 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쳐내고 책임 있고 지속가능한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유연성보다는 구속성에 방점이 찍힌 준칙이 필요한 이유다. 느슨한 준칙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보루가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정부와 국회는 앞으로 남은 논의 과정에서 준칙다운 준칙이 마련되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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