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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검증 영입, 잡음땐 손절···'무개념 청년 정치인'의 진짜 배후

중앙일보 2020.10.05 16:33
논란을 빚은 국민의힘 청년위 포스터. [청년위 페이스북]

논란을 빚은 국민의힘 청년위 포스터. [청년위 페이스북]

 

“아쉬움과 섭섭함이 있지만, 오늘부로 모든 정치적 활동을 그만두려 한다”

박결 국민의힘 중앙청년위원장이 5일 정치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달 당 청년위 페이스북에 올라온 ‘포스터 논란’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나라” “땅개 알보병”(육군 비하 표현) 등 청년위원들이 내건 문구가 물의를 빚자, 당 지도부는 지난 2일 관련자들을 면직 처분했다.

현장에서

 
이번 사태를 두고 "역량이 안된 일부 청년 정치인이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한편에선 "얄팍한 국내 청년 정치의 현주소가 이번에도 희생양 만들기에만 나섰다"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여야는 지난해 조국 사태 등을 계기로 공정 이슈가 떠오르자 부랴부랴 ‘청년 친화 정당’을 표방하고 나섰다. 총선을 코앞에 둔 표심 잡기 일환으로 젊은 인재를 공격적으로 영입했고, 민주당은 청년 우선공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청년 벨트(청년 공천 지역) 같은 우대 전략도 썼다. 청년위원회, 청년공약단 같은 조직도 덩달아 만들어졌다. 
 
문제는 정당이 진정 청년 정치의 내실을 키우기보단, 논란만 터지면 ‘손절’하기 급급한 토양이다. “검증 없이 이벤트성 영입을 해놓고, 잡음만 생기면 나 몰라라 한다”는 자조가 청년들 사이에서 나온다. 한 야당 청년 정치인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무슨 청년 친화냐”고 했다.
 
미투 논란이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2번째 영입인재인 원종건씨가 1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자격을 자진 반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미투 논란이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2번째 영입인재인 원종건씨가 1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자격을 자진 반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돌이켜보면 청년 정치인을 둘러싼 잡음은 예고된 일이었다. 지난해 민주당이 ‘이남자(20대 남성)’라는 타이틀로 영입한 원종건씨가 시작이었다. ‘시각 장애인 어머니를 둔 빈곤층 가정 청년’이란 이력이 화제였지만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 논란이 터져 자격을 반납했다. “감동 스토리에만 집착하다가 검증에 실패했다”는 자성이 여당 내에서도 나왔다. 당 지도부는 “사실관계를 확인해 윤리심판원에 회부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다가, 원씨가 탈당하자 슬그머니 손을 놨다.
 
‘과거 발언’이 발목을 잡은 케이스도 있었다. 지난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총선 공약개발단에 나다은씨를 위촉했다가 “조국 집회를 보고 눈물이 났다” 등 과거 SNS 발언이 논란이 되자 3일 만에 해촉했다. 서울 강남병에 전략 공천됐던 김미균 사지온 대표도 ‘문재인 지지 이력’이 불거져 공천 철회라는 철퇴를 맞았다. 정원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섹스 스캔들”이라고 했다가 2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국민당 청년부장, 지방 의원 등을 거쳐 최연소 총리에 오른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AFP=연합뉴스]

국민당 청년부장, 지방 의원 등을 거쳐 최연소 총리에 오른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AFP=연합뉴스]

산나 마린(35) 핀란드 총리는 대학 시절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시의원 등의 경력을 쌓고 총리가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산나 마린(35) 핀란드 총리는 대학 시절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시의원 등의 경력을 쌓고 총리가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일각에선 선거 직전 인생 스토리나 사회적 성공만을 잣대로 뽑는, 일종의 ‘벼락치기 영입’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총선에서 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천하람 변호사는 “정치권이 지역 의회부터 도전해 중앙 정치로 밟아오는 ‘풀뿌리 청년’을 지원하기보다는 일회성 영입 이벤트에만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 시절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시의원 등 경력을 쌓은 산나 마린(35) 핀란드 총리, 당 청년부장과 지방 의원 경험을 바탕으로 서른한 살의 나이에 오스트리아 총리가 된 제바스티안 쿠르츠(34) 같은 ‘육성 사례’가 국내에도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날 청년위 논란에 대해 “청년이 더 진취적이지 못하고 옛날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당에 별로 도움 안 된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지금껏 정치권이 2030의 ‘진취성'이 아닌 ‘구색’에만 신경 썼던 건 아닌지 되묻고 싶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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