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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 창립, 호주제 폐지…‘원조 페미니스트’ 이이효재의 삶

중앙일보 2020.10.05 15:50
1991년 정대협을 창립해 초대 공동대표를 맡은 이이효재 선생(오른쪽). [중앙포토]

1991년 정대협을 창립해 초대 공동대표를 맡은 이이효재 선생(오른쪽). [중앙포토]

“여성운동의 선구자이며,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어두웠기에 더욱 별이 빛나던 시절, 큰 별 중 한 분이셨습니다. 큰 존경을 바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이슈원샷]

문재인 대통령이 4일 별세한 고(故)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추모하며 남긴 글입니다. ‘국내 1세대 여성학자’ 이이효재 교수는 위안부 문제 해결과 호주제 폐지 등에 앞장섰습니다. 그가 만든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정리했습니다.
 

①아시아 최초 ‘여성학과’ 개설

이화여대는 1977년 아시아 최초로 여성학 과목을 개설했다. [이화여대]

이화여대는 1977년 아시아 최초로 여성학 과목을 개설했다. [이화여대]

1958년부터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한 이 교수. 그는 당시 대학 교양 수업이 여성이 갖춰야 할 예의범절 등을 가르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미국에서 여성학을 접한 이 교수는 한국만의 여성 운동을 학문으로 정립할 필요성을 느꼈죠. 1976년 논문『여성능력 개발을 위한 여성학 과정 설치의 제안』을 발표한 이듬해부터 ‘여성 사회학’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여성 노동자·농민도 들을 수 있도록 야간 수업까지 열었습니다. 이화여대 대학원은 1981년 아시아 최초로 여성학과를 정식 개설했습니다.
 

②민주화·사회 운동 목소리

이이효재 교수(오른쪽)는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중앙포토]

이이효재 교수(오른쪽)는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중앙포토]

이 교수는 여성 운동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유신독재 시절 국민교육헌장에 반대한 교수들의 성명서 『우리들의 교육지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서울권 대학교수로서는 유일했습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세력의 비상계엄령을 규탄하는『지식인 134인 시국선언』도 함께했습니다. 백낙청 교수 등과 함께 ‘민주제도연구소’에서도 활동했죠. 당시 수배를 받던 이 교수는 1980년 해직된 뒤 1984년 교수로 복직하게 됩니다.
 

③여성민우회 초대회장

이이효재 교수는 1987년 설립한 한국여성민우회의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이이효재 교수는 1987년 설립한 한국여성민우회의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여성민우회]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여성민우회는 1987년 9월 12일 첫 출발 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 단체의 초대회장을 맡아 다양한 여성운동을 이끌었는데요. 여성민우회는 ‘국회의원 비례대표 여성할당제’,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을 주장했습니다. 이 교수는 1990년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2대 대표직도 역임하며 국내 여성운동의 기틀을 쌓았습니다.
 

④정대협 설립, 위안부 문제 공론화

이이효재 교수(동그라미)는 윤정옥 교수와 함께 1990년 정대협을 창립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렸다. [사진 정의기억연대]

이이효재 교수(동그라미)는 윤정옥 교수와 함께 1990년 정대협을 창립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렸다. [사진 정의기억연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는 일도 주도했습니다. 이 교수는 대학 시절부터 친구였던 당시 윤정옥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후 윤 교수가 일본 홋카이도 답사 등을 통해 위안부 실체를 파악했죠, 두 사람은 1990년 11월 1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설립했습니다. 공동대표로서 일본 정부 대사관 앞 ‘수요시위’ 등을 시작하며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⑤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

이이효재 교수는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며 '부모 성 함께쓰기 운동'을 이끌었다. 중앙일보 1998년 5월 1일자 기사. [중앙포토]

이이효재 교수는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며 '부모 성 함께쓰기 운동'을 이끌었다. 중앙일보 1998년 5월 1일자 기사. [중앙포토]

1997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이 교수는 ‘부모 성 함께 쓰기 선언 운동’을 제안했습니다. 호주제에 반대한다는 의미였죠. 동료 여성운동가 170명이 동참했고, 이 선생도 이때부터 이이효재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등도 이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2005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호주제가 폐지됐습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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