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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유전자가위 글로벌 특허전쟁 반전?…툴젠 美 특허 등록

중앙일보 2020.10.05 15:49
수십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3세대 유전자가위’ 원천기술을 놓고 미국 굴지의 대학들과 특허 경쟁을 벌여 왔던 국내 바이오기업 툴젠이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미국 특허청이 그동안 거절했던 툴젠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 원천기술 특허 등록을 8년 만에 허가하면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 8년 만에 등록 허가

5일 툴젠은 유전자 교정에 활용하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원천기술과 관련해 미국 특허 등록 허가 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DNA의 특정 부위를 절단해 기존 기술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교정·편집할 수 있는 ‘제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이다. 최근 생명공학 분야에서 가장 연구가 활발한 핵심 기술로 꼽힌다. 유전자가위 기술이 상용화되면 현재로서는 불치병인 유전질환 등을 고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식물의 종 개량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2018년 중국 남방과기대 허젠쿠이 교수가 발표해 세계적 파문을 일으켰던 '유전자 편집 아기 출산'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결과였다. 

하버드-UC버클리와 8년 특허 전쟁 

툴젠은 그동안 하버드·MIT 공동연구팀인 브로드연구소, UC버클리 연구팀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원천기술 특허를 놓고 ‘8년 전쟁’을 벌여왔다. 2012년 5월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관련 특허를 가장 먼저 미국 특허청에 출원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같은 해 10월과 12월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가 대주주인 툴젠과 브로드연구소도 각각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를 출원했다. 
 
하지만 미국 특허청은 가장 늦게 출원한 브로드연구소의 특허를 가장 먼저 등록해줬다. 브로드연구소가 신속심사제도를 통해 특허권을 선점한 것이다. 직후 UC버클리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미국 특허청 심판위원회와 연방항소법원은 2017~18년 브로드연구소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있었던 미국 특허심판원(PTAB)의 '저촉심사'에서도 브로드연구소의 특허가 인정됐다. 저촉심사는 동일한 발명을 주장하는 출원인이 2명 이상일 때 선(先)발명자를 정하는 제도다. 결국 브로드연구소의 특허는 유지됐고, UC버클리의 특허는 2018년 말 등록됐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개념도 〈툴젠 홈페이지 캡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개념도 〈툴젠 홈페이지 캡처〉

툴젠, 국내에서 특허 탈취 논란 휩싸여  

브로드연구소와 UC버클리가 특허 분쟁을 벌이는 사이, 툴젠은 국내에서 ‘특허 기술 탈취’ 논란에 휩싸였다. 2018년 한 언론은 툴젠 설립자인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가 정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개발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툴젠으로 빼돌렸다고 보도했다. 툴젠 측과 김진수 교수는 즉각 부인했지만, 올 1월 검찰은 김 전 교수와 툴젠 임원을 불구속 기소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의 기소 내용에는 김 전 교수가 서울대와 기초과학연구원(IBS)에 재직하면서 발명한 유전자 가위 관련 특허기술 2건을 직무발명 신고를 하지 않고 툴젠 명의로 미국 특허를 출원한 혐의도 포함돼 있다.  
 

툴젠, "글로벌 특허로 주목 받게될 것"  

미국 특허청이 출원 8년 만에 툴젠의 특허 등록을 허가하면서, 향후 브로드연구소-UC버클리-툴젠 3자 간 특허 분쟁과 국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툴젠은 이번에 분할출원 방식으로 특허 등록 허가를 받았다. 원천기술 특허를 여러 개로 쪼개 출원하는 방식이다. 브로드연구소와 UC버클리 역시 30~50여개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가 미국에 출원돼 있다. 김영호 툴젠 대표는 “이번 특허 등록은 원천 특허에 대해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며 “툴젠의 크리스퍼 특허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특허로서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 분쟁 재점화할 듯  

이번 특허 등록 결정으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 분쟁이 다시 불붙을 가능성도 있다. 툴젠은 한국과 유럽·호주 등지를 포함한 7개 국가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관련 특허가 등록돼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툴젠의 특허에 대한 이의신청이 제기된 상태다. 이의신청은 본격적인 특허 무효 소송이나 침해 소송에 앞서 ‘특허 자격이 없으니 등록을 취소해 달라’며 내는 소송이다. 브로드연구소나 UC버클리에서 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8월 김진수 당시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 교정연구단장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8월 김진수 당시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 교정연구단장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 재판에도 영향 미칠 가능성  

이번 결정은 김진수 전 교수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김 교수는 국제 학술지의 편집장을 맡을 만큼 유전자가위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이라며 "툴젠의 유전자가위 특허가 미국에서 인정을 받은 만큼 재판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 7월 말 열린 공판에서 대전지법 형사3단독 구창모 부장판사는 김진수 교수 측 변호인의 전문가 감정증인 신청에 대해 “피고인(김진수 교수)을 능가할 전문가가 있을지 회의적”이라며 “차라리 피고인이 직접 설명하는 게 낫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코넥스에 상장된 툴젠의 주가는 5일 미국 특허 등록 소식에 전일 대비 14.9% 오른 7만9300원에 장을 마쳤다. 툴젠은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을 추진 중이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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