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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 비율 60% 재정준칙…빠져나갈 구멍 ‘많아도 너무 많다’

중앙일보 2020.10.05 14:01
정부가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60%,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한국형 재정준칙’을 제시했다. 5일 기획재정부는 이런 내용의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달 2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2회 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지난달 2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2회 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재정준칙은 정부 지출과 나랏빚이 지나치게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 구속력 있는 일종의 한도를 설정하는 걸 말한다. 기재부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60%, 연간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 3%를 기준선으로 정했다. 이 기준치를 넘어서면 한도 이내로 다시 내려갈 수 있도록 재정 건전화 대책을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건전화 대책엔 지출 효율화, 수입 증대 등 채무 비율과 재정수지에 대한 구체적 관리 방안이 담긴다. 
 
문제는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점이다. 
 
기재부가 제시한 한도 계산식은 ‘(국가채무 비율/60%)×(통합재정수지 비율/-3%)≤1’이다. 풀어 설명하면 해당 연도 국가채무 비율을 60%로 나눈 값과 통합재정수지 비율을 -3%로 나눈 값을 곱했을 때 1보다 작거나 같으면 재정준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기재부 설계대로라면 국가채무 비율 60%,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 3% 수칙을 동시에 지키지 않아도 된다. 
 
국가채무 비율이 60% 아래라면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3%보다 높아도 준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반대로 재정 적자 비율이 3%보다 낮다면 채무 비율이 60% 웃돌아도 된다. 기재부 측은 “하나의 지표가 기준치를 초과하더라도 다른 지표가 기준치를 하회하면 충족이 가능하도록 상호 보완적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1인당 국가채무 전망.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1인당 국가채무 전망.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빠져나갈 구멍은 더 있다. 전쟁, 대규모 재해, 글로벌 경제위기 등이 발생하는 경우 재정준칙에 따른 한도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 면제 규정은 위기 이후에도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재정준칙 한도 위반 여부를 따지는 채무 비율 증가분은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25%포인트씩만 가산해 반영한다. 위기 시 0%, 이후 1년차 25%, 2년차 50%, 3년차 75%, 4년차 100% 순서로 적용받는 식이다.
 
또 잠재 GDP, 고용ㆍ생산지표 등을 바탕으로 경기 둔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되면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3%에서 -4%로 -1%포인트 완화해 적용하기로 했다. 최대 3년간에 한해서다.
 
이렇게 많은 예외 규정이 있는데도 기재부는 적용 시기를 2025년으로 정했다. 앞으로 5년 후다. 문재인 정부는 물론 차기 정부 출범 초기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기재부는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등이 재정준칙 도입 때 4~9년의 유예 기간을 뒀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씀씀이가 늘고, 나랏빚도 따라 급증한 상황에서 시행 시점을 지나치게 늦춰 잡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4차 추가경정예산에 따른 국가채무 비율 변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4차 추가경정예산에 따른 국가채무 비율 변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허점은 또 있다. 기재부는 재정준칙 도입 근거는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규정하되, 재정준칙 산식 등 세부 수치는 시행령으로 정하기로 했다. 여기에 5년마다 재검토하는 규정까지 더했다. 국회 심의나 의결 절차 없이 정부 국무회의 결정(시행령 개정)만으로 국가채무 비율 60%, 통합재정수지 적자 3% ‘룰’을 바꿀 수 있게 퇴로를 열어뒀다. 
 
재정준칙의 기본 원칙이 ‘재정 총량에 대한 구속력’인데도 불구하고 ‘구속력’ 자체가 희미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기재부는 이런 내용의 ‘한국형 재정준칙’에 대한 입법예고, 부처 협의,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국가재정법을 확정한 뒤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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