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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 사로잡았던 패션계의 거장 겐조, 코로나19로 별세

중앙일보 2020.10.05 11:51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高田賢三)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 81세. 프랑스 파리 인근 뇌이쉬르센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4일(현지시간) AFP통신, 주간지 르푸앙 등이 보도했다. 고령에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건강이 크게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가 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건강이 악화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AFP=연합뉴스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가 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건강이 악화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AFP=연합뉴스

 
겐조는 파리 패션계에서 성공한 최초의 동양인 디자이너다. 1939년 일본 효고(兵庫)현 히메지(姬路)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고베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했지만,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도쿄로 건너가 분카패션대학의 첫 남자 신입생이 됐다. 졸업 후 1965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패션 브랜드 ‘레노마’에서 스타일리스트로 일했고, 1976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겐조(Kenzo)’를 설립했다.  
 
2018년부터 '플라워바이겐조' 향수 글로벌 모델로 활약 중인 여배우 김태리. 사진 홈페이지 캡처

2018년부터 '플라워바이겐조' 향수 글로벌 모델로 활약 중인 여배우 김태리. 사진 홈페이지 캡처

우리에게는 양귀비꽃이 그려진 유려한 곡선의 향수병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 겐조는 이후 여성·남성용 패션과 뷰티 등을 아우르는 거대한 브랜드로 성장했다. 특히 겐조는 패션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동서양의 스타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섞어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주로 꽃과 새, 호랑이 등 동양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자연물을 서양식으로 화려하게 채색해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했다. 
200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아트 갤러리에 걸린 그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다카다 겐조. 사진 REUTERS=연합뉴스

200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아트 갤러리에 걸린 그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다카다 겐조. 사진 REUTERS=연합뉴스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에서 영감을 받은 화려한 패턴과 평면적 실루엣을 서양 복식에 적용하는 겐조만의 방식은 1970~80년대 파리 패션계를 열광시켰다. 이 시대 겐조의 활약으로 ‘기모노 슬리브(Kimono sleeve‧기모노 소매)’라는 단어가 패션 용어 사전에 등재됐고 이후 레이 카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등 일본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 물꼬가 터졌다. 서구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국적 취향이 아니라, 서구에서 활동하는 동양인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독창적인 아름다움은 프랑스 파리뿐 아니라 전 세계 패션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1993년 자신의 브랜드를 세계적인 럭셔리 회사 LVMH에 약 8000만 달러(약 930억 원)에 매각한 겐조는 1999년 패션계 은퇴 선언 후 은인자중하는 아티스트로 지냈다. 그의 이름을 단 브랜드 겐조는 젊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펠리페 올리베이라 밥티스타의 지휘 아래 여전히 파리 패션위크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1999년 10월 7일 파리에서 2000 봄여름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인 후 축하를 받고 있는 다카다 겐조. 사진 REUTERS=연합뉴스

1999년 10월 7일 파리에서 2000 봄여름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인 후 축하를 받고 있는 다카다 겐조. 사진 REUTERS=연합뉴스

 
브랜드 겐조는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반세기 동안 다카다 겐조는 패션 산업에서 상징적인 인물이었으며 창의성과 색채를 세상에 불어넣었다. 그의 낙관주의와 삶에 대한 열정과 관용은 계속해서 겐조의 기둥으로 남을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패션계에서도 일제히 애도의 목소리가 나왔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은 “다카다 겐조는 1970년대부터 패션에 시적 가벼움과 달콤한 자유를 불어넣어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프랑스 의상 연합의 랄프 톨레다노 회장은 성명을 내 “창조적인 컷, 다문화적 영감 및 이국적인 프린트로 동양과 서양의 합류점에서 패션의 새로운 페이지를 작성했다”고 발표했다. 프랑스와 앙리 피노 케링 그룹 회장은 “다카다 겐조는 파리를 패션의 수도로 만드는 데 기여한 창의적인 정신”이라며 “그의 패션은 그를 닮아 문화의 교차로에서 창의적이고 즐겁고 관대하다”고 애도를 전했다. 프랑스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는 패션 전문 매체 WWD를 통해 “겐조는 1960년대 후반 프랑스에 정착해 패션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은 최초의 일본인 디자이너였다. 잡지 표지 모델이나 유명인을 처음으로 런웨이 무대에 올리는 등 그의 혁신적인 패션쇼는 마치 파티와 같았고 나는 그를 깊이 존경한다”고 경의를 표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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