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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가 바꾼 차례상…전통의 강자 사과·배 줄고 망고 떴다

중앙일보 2020.10.05 05:00
서귀포시 대정읍의 탐나라망고농장. 국내 망고 재배 1세대인 김만국 망고 명인의 아들과 며느리가 운영하는 망고 전문 재배 농가다. 사진 이마트

서귀포시 대정읍의 탐나라망고농장. 국내 망고 재배 1세대인 김만국 망고 명인의 아들과 며느리가 운영하는 망고 전문 재배 농가다. 사진 이마트

지구 온난화로 추석 과일도 변화를 겪었다. 동남아 등 아열대 국가에서나 주로 봤던 망고가 올해 추석 과일로 주목을 받으면서다. 현대백화점이 추석 선물세트 매출(8월14일~9월27일)을 분석한 결과 애플망고는 전년보다 61.3% 늘었다. 전체 과일 선물세트의 매출 신장률(15.9%)의 3배가 넘는다. 반면 ‘정통’ 추석 과일인 사과와 배의 비중은 전년의 75%에서 60%로 줄었다.
 

[기후변화가 바꾼 소비시장②]열대국가 대한민국

사과·배 비중 줄고 망고 매출 61%↑

5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국내 아열대 과일 재배면적은 164ha(164만㎡)로, 528개 농가에서 2877.8t을 생산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과일은 망고다. 재배 면적만 62ha(159개 농가)로, 올해 전체 열대과일 재배 면적의 30%를 차지했다. 재배지를 넓혀가는 속도도 빠르다. 2년 전(42.3ha)보다 46% 커졌다. 
 
망고 뒤를 이어 ‘패션 프루트’(passion fruit)로도 불리는 백향과가 많이 생산된다. 백가지 향이 난다는 뜻의 백향과는 브라질 남부가 원산지로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서 난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도 재배 면적이 36.5ha, 재배 농가가 156곳에 달한다. 세 번째로 많이 나는 바나나 재배 면적은 29.3ha(61개 농가)로 국산 바나나가 흔해질 날도 머지않았다. 현재 국내에선 이외에도 용과·구아바·파파야·아보카도·파인애플이 소량이지만 재배되고 있으며, 삼채·오크라·얌빈·사탕무·강황 같은 열대 채소도 잘 자라는 환경이 돼 재배 면적을 넓혀가고 있다.   
국내에서 재배된 백향과(패션후르트)가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전시돼 있다. 백향과는 백가지 향을 낸다고 해 붙은 이름이며 비타민, 엽산, 식이섬유 등이 함유돼 있다. 중앙포토

국내에서 재배된 백향과(패션후르트)가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전시돼 있다. 백향과는 백가지 향을 낸다고 해 붙은 이름이며 비타민, 엽산, 식이섬유 등이 함유돼 있다. 중앙포토

현재 국내에선 월평균 기온 10℃가 넘는 달이 8개월 이상이고 가장 추운 달의 평균 기온이 -3~18℃ 사이인 아열대기후 지역은 제주와 남부 일대다. 농진청에 따르면 2080년께엔 아열대기후가 중부 내륙까지 올라올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아열대기후 경지 면적이 현재의 10.1%에서 62.3%로 증가하게 된다.   
이병환 성주군수가 지난달 23일 바나나 시험재배장에 열린 바나나를 살펴보고 있다. 성주군은 지난해 12월 바나나 묘목을 심어 시험재배에 성공했다. 사진 성주군

이병환 성주군수가 지난달 23일 바나나 시험재배장에 열린 바나나를 살펴보고 있다. 성주군은 지난해 12월 바나나 묘목을 심어 시험재배에 성공했다. 사진 성주군

이미 중부권 온실에서는 아열대 과일이 자란다. 지난달 23일 경북 성주군농업기술센터는 바나나와 파파야 온실 시험 재배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참외의 고장’인 성주의 특산품이 바뀔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몇 년 뒤엔 명절 대표 상품인 국산 사과와 배 세트가 오히려 ‘이국적인 선물’로 마케팅될 가능성도 있다. 
 
소득증가와 세계화로 우리 입맛은 이미 아열대 과일에 익숙하다. 현대백화점이 지난 8월 압구정 본점 등 수도권 4개 점에서 판매한 제주산 흑망고는 비싼 가격(개당 8만~9만원)에도 300개 한정 물량이 모두 동났다. 후숙 전 검은 색을 띠는 ‘흑망고’는 개당 무게가 1㎏이 넘고 길이는 20㎝에 달한다. 당도는 18브릭스로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품종인 애플망고보다 약 2브릭스 높다. 개당 2만(약 300g)~4만원(약 600g)에 판매한 국내산 홍망고도 준비 물량이 모두 완판됐다. 홍망고는 제주가 아닌 내륙지방인 전남 영광에서 재배했다. 
9월 11일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직원들이 '흑망고'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9월 11일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직원들이 '흑망고'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마트는 9월 제주 왕망고(당도 17~18브릭스)를 처음 선보였다. 원산지는 인도지만, 크기는 인도산의 2배 정도로 어린이 얼굴 크기와 비슷하다. 추석 때 일명 ‘샤킹세트’로 한정 판매한 ‘피코크 샤인머스캣 & 제주 왕망고 세트’는 과일 중에서 가장 비싼(15만8000원·행사카드 12만6400원) 상품이다. 서울과 수도권 등 대형 점포 40여곳에선 일반용 ‘제주 왕망고’ 2입을 국내에서 가장 많은 2800여 박스(3㎏)를 판매 중이다. 당초 기획했던 물량에서 20%가량 늘렸다. 
 

비싸도 신선…국내산 열대 과일 비결

국산 열대과일은 수입산보다는 비싸지만 우수한 품질과 신선도를 자랑한다. 보통 수입산 과일은 유통 시간 때문에 나무에서 제대로 익기도 전에 수확하고 통관 절차상 증기열로 소독 처리나 침지(초파리를 잡기 위해 따뜻한 물이나 찜통에 가열) 처리를 해 맛이 떨어진다. 반면 국산 과일은 약 80~90% 숙성된 상태에서 수확해 적절할 때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이마트는 제주산 왕망고를 이번 초가을 전략 품목으로 운영했다. 신선품목 품종을 다양화해 오프라인 핵심 경쟁력인 그로서리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서귀포시 대정읍의 탐나라망고농장과 제주 왕망고 상품 운영 협약을 맺었다. 이 농장은 국내 망고 재배 1세대인 김만국 망고 명인의 아들과 며느리가 운영하는 망고 전문 재배 농가다.  
 
이 농장에선 세계의 수많은 망고 품종 중 한국 기후와 소비자 기호에 맞는 망고를 실험 재배한다. 현재 애플망고, 왕망고, 흑망고 등을 생산한다. 특히 왕망고의 경우 줄기당 한 개의 열매만 맺히도록 나머지 열매는 제거하는 솎아내기 작업을 진행한다. 한 줄기에서 여러 개의 과실을 키우는 것보다 영양분과 크기가 월등한 ‘하나의 망고’를 키우기 위한 전략이다.

 

컴퓨터 덕분…장마·태풍 뚫고 물량 늘렸다

서귀포시 대정읍의 탐나라망고농장. 국내 망고 재배 1세대인 김만국 망고 명인의 아들과 며느리가 운영하는 망고 전문 재배 농가다. 사진 이마트

서귀포시 대정읍의 탐나라망고농장. 국내 망고 재배 1세대인 김만국 망고 명인의 아들과 며느리가 운영하는 망고 전문 재배 농가다. 사진 이마트

이곳 망고는 시스템 컴퓨터가 약 2만㎡ 규모의 유리온실 내 온도와 습도, 일조량을 조절해 최적의 환경에서 재배된다. 올여름을 강타한 장마와 태풍을 뚫고 물량을 늘릴 수 있었던 이유다. 이번 피해로 사과와 배의 생산량이 줄어든 것과는 대조된다. 서울특별시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추석 제수용 사과(홍로)는 9월 가격(23일, 추석 10일 전 기준)이 전년 동기보다 75% 상승(4만5836원/10㎏)했고, 생산량은 14%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배(신고) 역시 같은 기간 가격은 13.4% 오른 반면(4만6565원/15㎏) 생산량은 21% 줄었다.

 
이마트 최지윤 과일팀장은 “명절 상차림을 간소화하는 트렌드와 코로나19의 영향이 겹치면서 올 추석엔 망고 등 이색 과일 인기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올해 선보인 제주산 왕망고에 이어 내년에는 애플망고를 운영할 계획이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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