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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철 논설위원이 간다] 김용균이 다시 불 지핀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중앙일보 2020.10.05 00:43 종합 23면 지면보기

10만명 동의 받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청원

지난달 2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김용균재단 이사장, 가운데)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달 2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김용균재단 이사장, 가운데)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동료가 죽은 자리에서 다시 일하다가 죽는다. 이것이 일터인가.”
 

김용균 죽은 태안화력, 또 사망 사고
매년 2000명 이상이 일하다 죽어
당연한 안전 투자를 낭비로 인식
“해법 나와 있어, 그 길 가자는 것”

소설가 김훈이 지난해 9월 북 콘서트에 직접 써와 읽은 ‘여는 글’의 한 대목이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용균씨의 유족과 동료들이 사고 이후 장례를 치르기까지 62일간의 활동을 정리한 책자 ‘김용균이라는 빛’을 출간하며 마련한 자리였다.
 
꼭 1년이 지난 올 9월, 그의 말은 정말 현실이 됐다. 다른 곳도 아닌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화물차 기사가 쏟아져 내린 대형 스크루에 깔려 숨졌다. 김용균의 이름을 딴 법이 나오고, 특별조사위원회가 몇 달간 조사를 거쳐 권고안까지 낸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아들을 먼저 보낸 슬픔을 꾹꾹 누르고,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활동을 2년 가까이 펼쳐온 용균씨 어머니는 어떤 심정일까?
 
“아들 못 돌아와도 다른 목숨 살려야”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8일, 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김용균재단 이사장)씨는 국회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섰다. 김용균 재단도 참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의 기자회견 자리였다. 한 달 전 연골 수술을 받아 무릎이 성치 않았지만, 여전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발언까지 하며, 40분 남짓한 기자회견 내내 꼿꼿이 버텼다.
 
회견 후 자리를 옮겨 김 이사장의 근황과 심경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야 했기에 주저됐지만, 그는 “이 문제가 최대한 공론화되길 바라기 때문에 내 아픔은 참고 삭인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를 향해 무언가 요구해본 적도 없었다. 아들 죽음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영안실 앞에서 망연자실한 그에게 수많은 편지가 답지했다. 상당수가 용균씨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다 다친 사람, 또는 가족을 그렇게 떠나보낸 유족들의 위로 글이었다. “한장 읽고 한참을 울고, 다시 진정되면 또 읽기를 반복하며 기어이 편지를 모두 읽었어요. 우리 사회 곳곳이 이렇게 위험한 줄을 처음 알게 됐죠. 이걸 방치하는 기업도, 정치인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장례를 미루고 그길로 진상규명·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집회에 나섰다. 인터뷰든 집회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62일간 이동한 거리가 1만1000㎞였다. 그해 연말 막바지 정기국회에선 ‘김용균법’이란 별칭이 붙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용균씨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그는 꼬박 사흘을 국회에서 버텼다. 12월 27일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뒤 그는 하늘을 보고 혼잣말을 했다. “너를 살리진 못해도 엄마가 너를 위해 이 법을 지켰어”
  
기업에 유리하게 완화된 김용균법
 
그런데 기쁜 마음에 돌아온 태안의 분위기는 예상 밖으로 심상치 않았다. 용균씨 동료들은 침울한 얼굴로 “김용균법에 용균이는 없어요”라고 말했다. 산안법 개정안이 국회를 거치며 알맹이가 거의 빠졌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가 됐던 위험의 외주화 금지의 경우, 도금작업이나 수은·납·카드뮴을 처리하는 작업 등 극히 일부로 제한됐다. 김용균씨가 맡았던 설비의 운전·점검 업무를 포함해 대부분의 위험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것이 여전히 가능했다. 원청업체가 지는 책임도 대폭 줄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이름만 보고 들떴던 셈이죠.”
 
2018년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특조위는 여러 차례 현장을 보고, 많은 관계자를 면담하고, 해외 사례도 검토했다. 4개월 만에 나온 727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는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위험한 작업을 외주화하고, 안전에 대한 책임도 떠넘기는 관행을 지목했다. 다단계 하청구조를 거치며 책임은 모호해지고, 사고가 나면 현장 노동자나 마지막 하청에 책임을 돌린다. 방대한 보고서를 요약한 22개 항목의 권고안에는 2인 1조 작업이 가능한 인력충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안전과 운영 관련 하청 금지, 책임자 처벌 강화 등이 담겼다. 발전소마다 부속의원을 둘 것도 권했다.
 
당시 특조위에 참가했던 한 관계자는 “안전에 대한 지출은 건강보험이나 자동차보험 같다”고 말했다. 당연히 투자해야 할 돈이지만 기업은 사고가 나지 않으면 이 돈을 비용 또는 낭비라 본다. 사고가 나더라도 뒷수습 비용은 안전투자 비용보다 훨씬 적다. 지난 2년간 법원이 공개한 671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1심 재판 결과를 보면 책임 있는 사람이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2%가 안 됐다. 절반은 벌금형이었는데 평균 458만원 남짓이었다. 기업이 움직일 리 없는 구조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김용균씨 사고가 난 2018년 산재 사망자는 2142명, 지난해에도 2020명이 숨졌다.
 
태안화력도 특조위 권고안을 거의 이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다시 사고가 났다. 언제든 굴러떨어질 수 있는 스크루를 옮기며 사전에 별도 고정장치를 하지 않았다. 원청과 스크루 수리 업체, 지게차와 화물차 등 각기 다른 4개 회사 관계자가 현장에 있었지만, 화물차 위에서 묶는 작업은 화물차 기사 혼자서 했다. 의료인력이 없어 보건소를 거쳐 다시 헬기로 외상센터로 옮기는 도중 결국 노동자는 숨졌다.
  
처벌 목적이 아닌 안전 투자 유도
 
지난 5월 김용균재단을 포함한 248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만들었다. 8월에는 김 이사장이 국회 청원에 제안자로 나섰다. 올해 도입된 국회 청원 제도는 한 달 안에 10만명 동의를 얻은 제안을 곧장 해당 상임위로 회부토록 규정하고 있다. 중대제해기업처벌법 제정 청원은 마감을 5일 남기고 10만명 동의를 받았다.
 
이미 정의당은 이번 국회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해 놓았다. 사업장에서 사망사고가 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3년 이상 징역이나 5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원·하청이 공동책임을 지게 해 책임을 하청에 떠넘기는 것을 차단했다. 중요한 교통사고나 가습기 살균제 같은 제품이 원인이 된 사망사고에도 같은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정의당 안을 대표 발의한 강은미 의원은 “상임위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회 청원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계는 강력히 반대한다. 특히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원하청에 공동책임을 지우거나 최고경영자를 형사처벌하는 내용은 과잉입법이자 일종의 보복 입법이라고 본다. 반면 강은미 의원은 “2인 1조 근무나 안전 설비 가동 같은 안전 투자를 하는 것만으로 허무한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그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법”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도 “강제성을 띠지 않으면 기업은 조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훈은 지난 5월 이 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앞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일이 왜 일어나는지 다 알고,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대한 방안은 다 나와 있다. 뻔히 보이는 그 길을 우리는 가지 않는다. 그 길로 지금 가자는 것이다.”
 
입법 청원에 힘 보탠 하림의 ‘그 쇳물 챌린지’
가수 하림(왼쪽)씨가 직접 작곡한 ‘그 쇳물 쓰지 마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오른쪽은 기타리스트 고의석씨. [사진 프로젝트 퀘스천]

가수 하림(왼쪽)씨가 직접 작곡한 ‘그 쇳물 쓰지 마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오른쪽은 기타리스트 고의석씨. [사진 프로젝트 퀘스천]

8월 26일 제안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청원은 동시에 나온 근로기준법·노조법 개정 청원보다 동의를 얻는 속도가 더뎠다. 그런데 중간에 뜻하지 않은 원군이 등장했다. 가수 하림이 주도한 ‘그 쇳물 챌린지’다.
 
10년 전 충남 당진의 제철소에서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당시 제페토라는 필명의 시인이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추모시를 지었다. 하림은 사고 10주기를 맞아 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었다. 이 노래를 따라부르는 모습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챌린지’가 청원에 동참하자는 메시지까지 담게 된 것이다.
 
“처음 노래를 만들 땐 청원이 진행 중이라는걸 몰랐어요. 노래를 공개한 지 사나흘 뒤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두 번째 사고가 났고, 자연스럽게 챌린지와 청원 동참이 연결된 것 같아요.”
 
그는 “배달원이나 콜센터, 스케줄에 쫓기는 연예인까지 일하다 다치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정치 이슈가 되면 관심 갖기를 주저하게 되는데, 노래는 자연스러운 관심을 유도하는데 좋은 방법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노래는 추모곡이어서 처연하지만, 힘이 있다. 과거 민중가요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런 장르의 음악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조약돌 노래’라는 이름을 붙였다. “답답한 현실을 깨는 작지만 단단한 노래가 됐으면 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최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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