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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지저분하단 건 옛말" 베이징서 韓 식당 사라지는 까닭

중앙일보 2020.10.05 00:35 종합 27면 지면보기
차오양구에 있는 따위에청 쇼핑몰. 6층 우측에 일본식 고깃집 '우각', 7층 좌측에 일본 장어집 등이 위치해 있다. 박성훈 특파원

차오양구에 있는 따위에청 쇼핑몰. 6층 우측에 일본식 고깃집 '우각', 7층 좌측에 일본 장어집 등이 위치해 있다. 박성훈 특파원

중국 국경절 연휴였던 지난 2일 베이징 시내는 한산했다. 발길이 향한 곳은 젊은 층들이 많이 찾는 쇼핑몰 중 한 곳인 차오양(朝陽)구 따위에청(大悅城). 식당, 영화관, 전자매장, 옷가게 등이 모인 15층짜리 쇼핑몰이다. 이날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中 쇼핑몰 외국 식당 수, 日 15 vs 韓 2
왕징 한식당 10곳 중 9곳은 中이 운영
2018년 대비 한식당 수 20.8% 줄어
“높아진 中 위생 관념...한식당 뒤처져”
"임대계약까지 꼼꼼이...더 현지화해야"

 
6~9층 식당가. 접근성이 좋고 눈에 잘 띄는 곳엔 하나같이 일식당이 있었다. 6층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면 오른쪽에 일본 회전초밥집(수퍼스시), 왼쪽에는 우동집, 라멘가게가 이어진다. 또 정면으로 최근 매출이 가장 높다는 일본식 고깃집 '우각'(牛角)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층도 마찬가지. 지방별, 종류별 각종 일식 요리점이 들어와 있다. 쇼핑몰에 있는 일본 식당 수는 모두 15곳이다. 
 
따위에청 쇼핑몰 내 일본 식당은 15곳인데 반해 한국 식당은 2곳에 그친다. 박성훈 특파원

따위에청 쇼핑몰 내 일본 식당은 15곳인데 반해 한국 식당은 2곳에 그친다. 박성훈 특파원

반면 한식당은 2곳뿐이다. 그나마 전부 고깃집이었다. 권금성(權金城)은 메인 식당가 뒤쪽 편에 있었다. 갈비 요리나 삼겹살, 찌개 등을 곁들여 판다. 식당 인테리어가 대체로 노란색이어서 분식집 같은 인상을 풍겼다. 젊은 층을 겨냥한 것이라고 한다. 드라마 '대장금'이 중국에 들어온 90년대 후반 생겼다. 대기하는 손님에 묻자 "아이들이 좋아해서 자주 들르지만 정통 음식을 파는 대형 브랜드 한국 식당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왕징(望京) 소호(SOHO) 맞은편에 위치한 기린사(麒麟社) 상가는 대표적인 한국 식당 밀집지다. 최근 주중한국대사관이 주관한 한인 축제 K-페스타(FESTA)가 열린 곳도 기린사 상업 지구 앞이다. 이곳에 한국 요리 간판을 단 식당은 10곳. 하지만 이 중 9곳은 과거 한국인이 운영하다 중국 한족이나 조선족에 넘어갔다. 겉은 한국 식당인데 실질적으론 중국인이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베이징에서 한국 식당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누적된 매출 부진이 더 큰 원인이다. 대표적인 한국 식당이던 ‘서라벌’은 매장 3곳 중 1곳만 남았고 주중한국대사관 근처에 있던 한식당 ‘비원’도 지난해 20년 만에 문을 닫았다. 최근 베이징에서 가장 많이 추천하는 1순위 한식당인 ‘애강산’의 매장 수도 4곳에서 2곳으로 줄었다. 주중한국회식협회에 등록된 한국 식당 수는 2018년 63곳에서 올해 50곳으로 2년 만에 20.6% 감소했다.  
 
한국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은 베이징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국내 매장 수가 3000개가 넘는 1위 치킨 브랜드 BBQ는 베이징에 2개 매장을 냈다가 철수했다. ‘놀부 보쌈’ 매장 한 곳이 남아 있고, 올해 초 ‘한촌설렁탕’도 문을 닫고 철수했다. 대기업인 CJ 역시 비비고(BIBIGO)를 앞세워 20개 매장을 냈다가 현재 사업을 접은 상태다. 그사이 일본 식당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면류 등 각종 요리를 제공하는 시베이요우미엔춘(西貝莜面村)은 주방을 식당 한가운데 옮기며 위생적 식당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시베이요우미엔춘 홈페이지 캡쳐]

면류 등 각종 요리를 제공하는 시베이요우미엔춘(西貝莜面村)은 주방을 식당 한가운데 옮기며 위생적 식당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시베이요우미엔춘 홈페이지 캡쳐]

 
왜 이렇게 된 걸까. 2017년 초 사드 사태는 시발점이었다. 중국 정부의 가시적 보복 조치로 양국 간 왕래가 줄었고 식당은 직격탄을 맞았다. 중요한 건 그 이후 4년이다. 한국 식당은 중국 현지인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을까.

 
베이징에 진출해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안현민 쉐프는 “기존 한식집이 왕징과 한인 커뮤니티 위주로 사업을 벌인 반면 일식은 외식 사업 전문가들이 들어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업했다”며 “한국 식당이 이런 대처가 부족했던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국인들의 ‘니즈’(needs)를 못 따라갔다는 것이다.
 
한국 식당 축소 원인과 해법

한국 식당 축소 원인과 해법

과거 중국 식당은 지저분하다고 비위생적이란 이미지가 강했지만 상황은 이미 바뀌었다. 베이징의 한 프랜차이즈 식당은 주방을 한가운데 배치하는 방식으로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다. 조리 과정과 식자재를 100% 공개하면서 입소문을 탔고 현재 공격적으로 매장을 확대 중이다. 또다른 중국 식당은 종업원들의 유니폼을 여섯벌씩 나눠준다. 매일 새 옷을 입고 일하라는 것이다. 보통 식당에선 한두벌 정도 지급된다고 한다. 사소한 듯하지만 ‘뼈’ 때리는 위생 관념 변화에 중국 소비자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안 셰프는 “중국 식당의 위생이 한국보다 못하다는 건 옛말"이라며 "오히려 깔끔한 데가 많아졌고 유니폼도 깨끗하게 입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한식이 지저분하거나 인테리어가 약해도 반찬 등으로 커버가 됐지만 지금은 비용 절감으로 이것도 쉽지 않고 인테리어도 노후해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왕징 교문호텔에 위치한 한국식당 '와라와라'(WARAWARA). 1일 점심시간, 중국인들로 빈 자리가 없다. 박성훈 특파원

왕징 교문호텔에 위치한 한국식당 '와라와라'(WARAWARA). 1일 점심시간, 중국인들로 빈 자리가 없다. 박성훈 특파원

 
온대성 재중한국외식협회장은 한국 식당의 추락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지 정보에 어두운 탓에 고정비용을 너무 많이 지출한 게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온 회장은 "한국에선 임대차 계약을 할 때 무조건 건축 면적으로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며 "정해진 법이 없기 때문에 실면적을 잰 뒤 계약하면 임대료를 최소 3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일식당의 경우 가게를 내기 위해 사전 매뉴얼에 따라 철저하게 조사해 비용을 줄이는 데 집중하는 데 비해 한식당은 이런 접근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온 회장은 "우리 정부가 먼저 들어왔던 식당, 기업들의 성공, 실패 등 각종 노하우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지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조영근 애강산 대표는 "인테리어에 투자를 많이 해서 고급화한 게 영향이 있는 것 같다"며 "단독 건물이라 상대적으로 임대료 부담이 적었고 한국 전통 음식 외에 중국, 일본 음식까지 다각화한 것이 주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중국 현지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 접근하는 게 결국 처음이자 끝인 해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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