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코로나 시대의 집회

중앙일보 2020.10.05 00:21 종합 29면 지면보기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마침내 차벽까지 등장했다. 지난 3일 열린 개천절 집회 얘기다.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차벽 봉쇄를 놓고 인터넷에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명박산성에 이은 재인산성의 출현”이란 비판에 “안전의 최후의 보루”란 여론이 맞선다.
 
개천절 차벽은 과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의 명박산성이 동서를 가로 질렀다면 2020년 재인산성은 동서남북을 뒤덮었다. 경찰은 차벽과 별개로 검문소 90곳을 세웠다. 경비경찰 21개 중대, 교통 및 지역경찰 800여명도 현장에서 대기했다. 촛불집회로 집권한 정권이 쌓은 차벽은 코로나 시대의 정치적 소음으로 기록될 것이다.
 
광장 민주주의는 위기다. 기원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해 수천 년을 이어온 광장 민주주의는 지난해 연말 불쑥 생겨난 바이러스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방역은 어느 순간부터 시민의 기본권을 추월하는 프리패스가 됐다. 휴대전화 송수신 기록을 역추적해 코로나 확진자를 찾아내는 감시는 일상으로 들어왔다.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다수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사실 정부가 자랑하는 K-방역은 국민이 기본권을 포기하고 쌓아올린 결과물이다. 추석 연휴 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된 “나라를 지킨 건 여러분(나훈아)”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코로나 확산에 따라 고개를 들고 있는 집단주의에 대한 경고는 꾸준히 이어진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선 인류는 두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하나는 전체주의적 감시 대 시민의 권리 강화(citizen empowerment)이고 다른 하나는 국수주의적 고립 대 국제적 결속”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서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도 지난 8월 코로나 이후 민주주의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지 못하면 (코로나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라며 “국가주의와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 시대의 집회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2400년 전 아테네 아고라(agora)에 섰던 테스형(소크라테스)에게서 작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개인적 자유를 누릴 능력을 갖추고 있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