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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교수의, 교수를 위한 대학?

중앙일보 2020.10.05 00:20 종합 28면 지면보기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이번 사태는 고려대의 정신에 반하는 일로 고려대의 이름에 부끄러운 역사가 되었다.” 추석 연휴 직전 고려대 총학생회가 발표한 성명문의 일부다. 지난달 24일 공개된 교육부의 종합감사 결과를 두고 학교 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담겼다.
 
개교 이래 첫 교육부 감사에서 나온 총 38건의 ‘지적사항’은 재학생과 동문은 물론 고려대를 ‘한국 대표 명문’으로 여겼던 이들에겐 도무지 믿기 힘든 수준이었다. 보직교수를 포함한 교직원 13명은 음식점으로 위장한 강남의 유흥업소에서 연구비카드로 200여 차례에 걸쳐 6693만원을 결제했다. ‘법카 쪼개기’로 탕진한 연구비는 학생 등록금 등을 통해 마련한 교비에서 나왔다. 자녀에게 본인 수업을 듣게하고 A학점을 주는 ‘엄빠 찬스’를 남발한 교수들도 무더기로 적발됐다.
 
법과 규정, 상식과 윤리를 무시한 대학은 고려대만이 아니다. 연세대도 지난 7월 교육부로부터 총 86건을 지적받고 421명에 대한 징계 등 ‘신분상 처분’을 요구받았다. 특히 교수들끼리 짜고 서류심사와 구술시험 점수까지 조작해 부총장 딸을 대학원에 합격시켰다는 게 드러나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노트북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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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명문 사학’에서 발생한 부정은 서남대 같은 기존 ‘문제 사학’의 비리와는 결이 다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교육부 관계자는 “이전엔 학교 설립자나 친족의 전횡에서 비롯된 비리가 많았지만, 이젠 대학 전반을 장악한 교수 집단의 이기주의나 ‘제 식구 감싸기’가 문제”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 교수들은 총장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주요 보직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여기에 교수들의 특권의식과 ‘가족주의’, 견제장치의 부재가 겹쳐 “교수의, 교수에 의한, 교수를 위한 대학이 됐다”는 한탄이었다.
 
실제로 비리 교수에 대한 대학 당국의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칠 때가 잦다. 교육부 감사 결과 연세대는 허위진단서 발급으로 법원에서 벌금형을 받은 의대 교수에 대한 징계를 3년째 미루고 있었다. 고려대도 리베이트를 받아 의사 자격을 정지당한 교수에 경고 처분만 했다. 다른 대학의 사정도 비슷하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성비위를 저지른 전국 80개 대학의 교원 199명 중 절반 가량(48.1%)은 파면·해임을 면하고 강단으로 돌아왔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성명에서 “공정을 최우선의 화두로 생각하는 젊은 학생들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 윤리 의식을 제고하라”고 촉구했다. 과거처럼 ‘대학 자율’이란 명분에 숨어 ‘제 식구 감싸기’를 반복하지 말라는 이들의 경고를 대학 당국, 교수 모두 유념하길 바란다.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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