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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서 텐센트 이긴 한국OTT, 비결은 “최신작 싼값에”

중앙일보 2020.10.05 00:03 경제 4면 지면보기
동남아 시장에서 OTT ‘쿠키’를 운영하는 블룸스베리 김요섭 대표.

동남아 시장에서 OTT ‘쿠키’를 운영하는 블룸스베리 김요섭 대표.

매출액의 75%를 자체 콘텐트 제작에 쏟아붓는 넷플릭스, ‘동남아의 넷플릭스’라는 아이플릭스를 인수한 텐센트. 글로벌 강자만 보이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 토종 OTT인 ‘쿠키(Cookie)’가 미얀마에서 아이플릭스를 꺾고 1위(누적 앱 다운로드 126만 건, 회원 70만 명)에 올랐다는 것. 쿠키 운영사 블룸스베리의 김요섭(49·사진) 대표를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미얀마에서 소득 수준에 따른 콘텐트 소비 형태를 분석한 결과”라고 했다.
 

‘쿠키’ 운영 김요섭 블룸스베리 대표
생업 바쁜 미얀마 소비 형태 분석
넷플릭스식 무제한 정액제에 맞서
무료체험 대신 원하는 영화 제공

미얀마에서 쿠키 서비스를 시작한 계기는.
“2003년부터 몽골에서 극장 설립, 할리우드 영화 배급, VOD 유통 등 영상 콘텐트 사업을 했다. 몽골 사업이 안정돼 다른 아시아 국가로 진출하려던 차에, 거래처인 외국 대형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고 미얀마에 관심 갖게 됐다. 현지에서 2년 정도 준비해 2017년 영화 배급과 2019년 OTT(쿠키)를 시작했다.”
 
저소득 국가에서 OTT를 보나.
“영화는 저소득 국가일수록 수요가 있다. 적은 돈을 내고 알찬 재미를 누리는, 이른바 가성비가 높은 여가생활이어서다. 특히 미얀마는 모바일 통신 인프라가 빠르게 깔리고 있어 사업의 적기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극장 대신 OTT 사용이 급증했다.”
 
동남아 1위 OTT 아이플릭스는 미얀마에서 왜 안 통했나.
“아이플릭스는 넷플릭스 식으로 했다. 첫 달은 무료체험, 다음 달부터 정액 요금을 내고 무제한 영화 보기. 그런데 미얀마 소비자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저개발 국가일수록 사람들이 생업에 바빠 여러 편을 볼 시간이 없다. 게다가 와이파이 환경이 안 좋아 대부분 통신사 3G, 4G 데이터를 소진해 영화를 보기 때문에 무제한 시청은 불가능하다.”
 
쿠키는 어떻게 했나.
“무료체험이 없는 대신 월정액요금이 1900~7900짯(약 1700~7000원)으로 저렴하다. 정액제 회원은 기본 콘텐트 외에 신작 영화를 할인가로 단건 구매할 수 있다. 또, 쿠키는 최신작 확보에 집중했다. 소비자가 돈이 없을수록 1편을 봐도 골라서 본다. ‘다양한 콘텐트’보다 ‘내가 원하는 그 영화’가 있어야 한다.”
 
미얀마는 모바일 국가로 변신 중이다. 2015년 11월 아웅산 수치(현 국가고문)의 총선 승리 후, 경제 개방과 외국인 투자가 본격화됐다. 일본과 카타르 등 외국 통신사들이 들어와 수조원을 투자하고 인프라를 깔았다. 코트라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3%에 불과했던 휴대전화 보급률이 2018년 100%를 돌파했다. 유선 인터넷보다 무선 인터넷 연결 속도가 더 빠르다. 랜선 시대를 건너뛰고 모바일로 직행하는, 제3세계 국가의 전형적 모습이다.
  
모바일 서비스는 결제가 편해야 하는데.
“최대 난관이다.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고 금융 인프라가 열악해 자동이체가 불가능하다. 엄밀히 말해, 미얀마 소비자는 ‘구독’하지 않는다. 매월 마음을 먹고 다시 요금을 내는 것이다. 넷플릭스 회원이 ‘이번 달엔 해지할까’ 고민한다면, 쿠키 소비자는 ‘이번 달도 구매할까’를 고민한다.”
 
그럼 어떻게 사업을 하나
“여기서는 그랩(동남아에서 인기 있는 차량 호출 앱)을 써도 요금 확인만 하고 결제는 따로 한다. 전자지갑을 대개 사용하는데, 동네 가게에 현금을 들고 가 충전하기도 한다. 국민 대부분이 휴대폰을 선불 충전해서 쓰는데 그 충전금이 일종의 화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쿠키는 거기에 착안해 통신사와 결제 제휴를 맺었다. 과거 한국식으로 말하면 ‘(통신사) 알 30개로 쿠키 한 달 요금 지불’ 같은 식이다.”
 
블룸스베리는 지난해 쿠키 OTT 출시 직후, 전략적 투자자와 벤처캐피탈로부터 약 7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올해 처음으로 오리지널 콘텐트 3편(영화, 드라마)을 제작해 쿠키로 독점 제공했고 내년엔 6편을 제작할 계획이다. 회사의 내년 매출 목표는 총 100억원.
 
정부는 국내 OTT들에 힘 합해 해외로 나가라는데.
“합쳐서 나가는 건 좀 이상하다. 축구로 말하자면 클럽 경기지, 국가 대항전이 아니지 않나. OTT 사업은 그 나라 사람의 여가 습관과 관련 있기 때문에 시장을 장기간 배우고 견뎌야 한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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