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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금·은보다 수정이나 유리구슬 선호한 가야인

중앙일보 2020.10.04 15:00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52) 

1700년 전 가야 목걸이(1) 3점의 특징
 
1700년 전 ‘철의 왕국’ 가야. 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은 김해 김씨의 시조다. 그 김수로왕이 살던 가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과연 1700년 전이라는 까마득한 세월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三國志)』의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 이런 기술이 있다.

 
“가야인은 구슬을 보배로 삼아 혹은 옷을 꿰어 장식하고 혹은 목에 걸고 귀에 달았지만 금‧은‧비단은 진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以瓔珠爲財寶, 或以綴衣爲飾, 或以懸頸垂耳, 不以金銀繡爲珍 이영주위재보, 혹이철의위식, 혹이현경수이, 부이김은수위진).”

 
분명한 건 그 오래전 우리 조상도 보석과 주얼리를 했다는 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적으로 전 세계에서 최고의 왕관이라고 평가받는 신라 금관에서 보듯 신라, 백제인들 금‧은을 귀히 여기고 금‧은 제품을 주로 다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야인은 문헌에 기록된 것처럼 금‧은보다는 수정이나 유리구슬을 선호했다고 한다. ‘위지동이전’의 서술은 사실로 나타났다. 
 
가야의 1700년 전 목걸이가 발견돼 최근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가야 시대를 대표하는 두 고분인 김해 대성동 및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등 목걸이 3점이다. 가야인 역시 신분과 지배 계층의 권위를 장신구를 통해 드러냈음을 실증적으로 말해 준다.

 
‘철의 왕국’으로 알려진 가야가 유리 제품 가공 능력과 세공 기술을 갖추고, 뛰어난 장신구 문화를 형성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목걸이 디자인이나 다채로운 색채 구성은 화려함을 추구했던 당시 가야인의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고 있다. 1700년 전의 가야 목걸이 3점을 소개한다.

 

세줄 유리 목걸이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사진 문화재청]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사진 문화재청]

김해 대성동 76호분 목걸이-유리구슬 출토 모습. [사진 문화재청]

김해 대성동 76호분 목걸이-유리구슬 출토 모습. [사진 문화재청]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로, 맑고 투명한 수정과 주황색 마노, 파란색 유리 등 다양한 재질과 색감을 조화롭게 구성한 것이 특색이다. 서로 길이가 다른 3줄로 구성됐다. 수정제 구슬 10점, 마노제(瑪瑙製, 수정과 같은 석영광물) 구슬 77점, 각종 유리제 구슬 2386점 등 총 2473점으로 이루어졌다. 평균 지름이 6~7mm 정도로 아주 작은 형태다. 유리를 다면체 형태로 섬세하게 가공하고, 세밀하게 구멍을 뚫어 연결하거나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었다. 당시 유리 세공 기술이 매우 우수했음을 보여주는 목걸이다. 여기에 깃들인 가야인의 시간과 정성을 짐작할 수 있다.

 

수정 목걸이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 목걸이. [ 사진 문화재청]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 목걸이. [ 사진 문화재청]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목걸이는 수정(水晶)목걸이다. 전체 길이가 약 142.6cm로 상당히 긴 편이다. 영롱하고 맑은 투명 무색과 황색, 갈색 등이 약간 섞인 은은한 색의 수정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어 육각다면체형, 주판알형, 곡옥형(曲玉形) 등 여러 형태로 수정을 만든 뒤 연결했다. 제작 시기는 고분의 형식과 부장품 등으로 보아 3세기로 추정된다. 수정목걸이는 3세기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지배계층의 장신구로서, 3~4세기 가야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었지만, 이 목걸이처럼 100여점 이상의 수정으로만 구성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가공 기법 또한 오늘날의 세공 기술과 비교해도 될 만큼 완전성이 뛰어나 당시의 수준 높은 기술과 세련된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형태와 크기가 다른 수정을 조화롭게 배치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목걸이를 구성하고 있는 수정은 한동안 외국산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학계의 연구를 통해 경상남도 양산 등 우리나라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유리 목걸이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위는 곡옥(파란색), 마노구슬(주황색) 세부. 아래는 수정다면옥 세부.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위는 곡옥(파란색), 마노구슬(주황색) 세부. 아래는 수정다면옥 세부.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3세기대까지 유행한 가야의 장신구는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모양으로 깎거나, 유리로 곱은옥(曲玉)이나 둥근옥(球玉)을 만든 목걸이였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에서 출토한 유리목걸이는 수정제 곡옥 147점, 대형 수정제 다면옥 2점, 마노 환옥 6점, 파란 유리 환옥 418점, 유리 곡옥 1점 등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보석 574점으로 구성되었다. 가야 구슬 목걸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무려 1700년 전 만들어진, 세 점의 목걸이는 우리 조상의 슬기와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진귀한 보물이다. 가야인도 경도 7의 단단한 수정을 다면체로 가공하거나, 많은 수량의 곡옥 형태로 섬세하게 다듬었다. 거기에 붉은색 마노와 푸른색의 유리옥을 더해 영롱한 빛으로 조화를 시도했다. 거기서 그친 게 아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는데, 가야인이 꼭 그렇게 구슬을 보배로 만들었다.
 
주얼리 마켓 리서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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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미 민은미 주얼리 마켓 리서처 필진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 주얼리가 좋아서 주얼리회사에 다녔다. 명품회사에서 세일즈 매니저로 18년간 일했다. 주얼리는 소중한 순간을 담는 물건이다.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인생 여정과 함께 해온 주얼리가 있다. 주얼리 박스는 누구에게나 설렘을 안겨준다. 나를 빛나게, 세상을 빛나게 만드는 주얼리 이야기. 창 넓은 카페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차 한 잔 같이 하는 마음으로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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