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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관심없다고 할수록 입지 커진다, 묘한 김종인 대망론

중앙일보 2020.10.04 09:00
“위원장님, 다음 대선에 야당 후보로 누가 나오는 겁니까.”(A 씨)
“그건 말 못하지. 내 머릿속에 있어.”(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김종인 위원장이 얼마 전 지인들과 저녁 자리를 했는데 화두는 야권 대선 후보였다고 한다. 당시 동석했던 인사는 “거론하는 사람마다 김 위원장이 아니라고 하자 누군가가 ‘그럼 직접 출마하시라’고 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그게 좋겠다’며 손뼉을 쳤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렇듯 김 위원장 본인은 부인하지만 정치권에선 ‘김종인 대망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한 중진 의원은 “김 위원장이 대권에 관심 없다고 할수록 당내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가 더욱 다져지는 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그는 5월 27일 비대위원장 취임 후 관련 질문이 있을 때마다 “사람이 70살이 넘으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7월 2일), “정치적으로 욕심이 없다”(8월 18일), “솔직히 관심 없다”(9월 24일)고 해왔다. 그런데도 왜 정치권에선 그의 2022년 대선 도전 가능성을 거론하는 걸까.
 
우선 야권에 유력 대선 주자가 없다. 김 위원장 역시 “우리 당에 대권 주자가 누가 있나. 당 밖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여러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홍준표·유승민·안철수 등 대선에 출마했던 이들은 물론, 황교안·오세훈·원희룡·홍정욱 등 ‘야권 셀럽’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불거진 에피소드도 있다. 복수의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자꾸 당내 대통령감이 없다고 하자 일부 중진들 사이에서 “자신이 출마하려고 저러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에 한 중진이 김 위원장을 직접 찾아가 “의지를 갖고 뛰는 당내 후보들이 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힘이 빠집니다. 앞으로는 당 안팎에 열심히 하는 후보들이 많다고 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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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치권에선 “시간 끌다가 본인이 대선 주자를 꿰차려는 심산”(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 위원장이 직접 대선주자로 나설 수도 있다”(오세훈 전 서울시장)는 반응이 계속 나온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도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고, 당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5~10% 앞서나간다면 김종인 체제를 그대로 가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김 위원장이 대권에 대해서도 고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스크 벗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오종택 기자]

마스크 벗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오종택 기자]

 
김 위원장은 1940년생으로 올해 나이 80세다. 그는 자신의 물리적 나이를 들어 대선 도전 가능성을 일축하지만, 동시에 그의 주변에선 “김 위원장이 체력만큼은 자신한다”는 말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김 위원장 측 인사는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은 1946년생이고 민주당 바이든 후보는 1942년생이다. 김 위원장과 별로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과거 이력을 거론하며 대선 등판 가능성을 내다보는 이들도 있다. 그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에 대한 대선 도전설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럴 일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2017년 4월 5일 대선 출마를 선언(같은 달 12일 출마 포기)했다. 그는 올해 출판한 자서전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른바 ‘장미 대선’에 나는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그때 내 나이가 이미 팔십 가까이 되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 같은 것을 부릴만한 나이가 아니다. 임기가 보장된 국회의원 자리마저 내려놓고 그렇게 나선 것은 더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마지막 사명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월 14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을 방문해 경매단상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월 14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을 방문해 경매단상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경제민주화를 필두로 한 김 위원장의 개혁 드라이브가 중도·보수층 표심을 자극할 경우, 그를 지지하는 여론이 당내 초·재선을 중심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한 인사는 “정치는 시작하기보다 그만두기가 훨씬 더 어렵다. 김 위원장이 당을 장악하고 다른 대안이 없다면 그가 직접 대선판에 뛰어드는 시나리오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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