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년연장에 임금 인상까지?”···‘노노갈등’ 부르는 정규직 전환

중앙일보 2020.10.04 06:00
1일 서울 중구 청계천 광통교 인근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정규직 전환 촉구 문화제'가 열렸다. 김지아 기자

1일 서울 중구 청계천 광통교 인근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정규직 전환 촉구 문화제'가 열렸다. 김지아 기자

 
문재인 정부가 올해 말까지 공공부문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19만 6000여명이다. 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 7월 이후 3년 동안 정규직으로 바뀐 인원은 18만 5000여명(94.2%)이다. 이대로라면 정규직 전환 실적은 임기 중 100%를 무난하게 달성할 전망이다.

[중규직의 눈물②]

 
하지만 곳곳에서 노사ㆍ노노(勞勞)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노조가 2100여명의 방재직과 보안검색요원 정규직 전환에 반발하고 나선 사례가 대표적이다.

 

관련기사

정규직 되자 "더 달라"

공공기관 연도별 무기계약직 규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공공기관 연도별 무기계약직 규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규직 전환 대상자가 정년 보장뿐 아니라 임금과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고 나서자 노사갈등이 한층 심화했다. 주로 고용 안정성은 보장되지만, 정규직과 처우가 다른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한 정규직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은 정규직도 아닌 비정규직도 아니라는 뜻에서 ‘중규직’으로도 불린다.
 
한국공항공사는 지난해 보안·경비·미화·시설 운영 근로자의 총파업 위기로 공항 마비 사태를 겪을 뻔했다. 2018년 8월 비정규직 신분에서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들이 전면 파업을 예고하면서다. 기본급 6% 인상, 인력 충원·상여금 원상회복 등이 요구사항이었다. 당시 공항공사가 임금 4.5% 인상과 명절 휴가비 40만원, 복지 포인트 50만원을 약속해 가까스로 파업을 피했다. 
 

서울 노원구청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여에 걸쳐 노원구서비스공단 소속 미화·주차·경비 등 업무를 맡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60세 정년을 보장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노조는 지난 6월 65세 정년 연장과 일반직 전환을 요구하며 구청 로비를 점거하고 총파업에 나섰다. 노원구청은 지난 8월 초 노조와 합의에서 정년이 임박한 경우 일정한 심사를 거쳐 최대 3년간 더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처우 개선을 위해 명절 휴가비를 인상하고 위험수당·특근매식비·피복비 등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서울교통공사. [중앙DB]

서울교통공사. [중앙DB]

직원 간 '불편한 동거' 

기존 정규직과 비정규직에서 전환한 직원 간 정서적으로 ‘불편한 동거’도 갈등의 또 다른 축이다. 이른바 '노노(勞勞)갈등'이다. 서울교통공사는 2018년 3월 무기계약직 128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궤도 보수원·승강장 안전문 정비 등 안전업무직을 비롯해 목욕탕·식당·세탁소 등에서 일하는 일반업무직이 모두 정규직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공채를 통과해 정규직으로 입사한 청년 직원들이 반발했다. 이들은 “일괄 전환은 어렵게 공채를 통과한 정규직을 역차별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공채 정규직을 중심으로 결성된 ‘공정사회를 염원하는 서울교통공사 청년모임’은 헌법소원도 추진했다. 서울교통공사의 양대 노조인 서울교통공사노조(민주노총·제1노조)와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한국노총·제2노조) 간 입장차도 미묘하다. 조건부 정규직 전환 찬성 입장인 제2노조 관계자는 “2년 전 정규직 전환에는 찬성했지만, 합리적 차이를 둬야 한다는 (우리측)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공정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많지만, 현재 속으로만 냉가슴을 앓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규직 전환 당사자도 불편한 심정이다. 올해 1월 한국공항공사 자회사인 항공보안파트너스 정규직으로 전환된 한 40대 직원은 “기존 본사 정규직들은 우리가 용역업체일 때나 자회사일 때나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며 “벽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KTX 승무원이 자회사 정규직 대신 본사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는 문구를 달고 일하고 있다. [중앙포토]

KTX 승무원이 자회사 정규직 대신 본사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는 문구를 달고 일하고 있다. [중앙포토]

직고용 요구 논란 여전 

본사 직고용과 자회사를 통한 고용 등 정규직 전환 방식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지난해 9월 추석 연휴 기간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의 KTX와 SRT 객실 승무원은 본사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KTX 승무원 550여명과 SRT 승무원 120여명 등 모두 690여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이들은 자회사 정규직 대신 본사(코레일) 정규직 채용을 요구했다. 당시 이들은 파업에 나서면서 “안전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직접 고용해야 하는데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현실로 인해 파업에 나선다”며 “자회사의 임금 차별을 해소하고 안전업무를 하는 직원을 직접 고용하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한전 자회사인 한전FMS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된 김지형(40)씨는“자회사로 전환만 됐고 아직 모회사와 용역관계”라며 “본사가 자회사를 어떻게 지원하는지도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항목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진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규직화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규직 전환은 이해당사자 간 설득이 가장 중요하다”며 “고용안정과 격차 해소라는 두 가지 기본 원칙을 중심으로 공공기관의 경영진들이 모범적인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공공부문도 무조건 떼를 쓸 게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선에서 주장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다양한 직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갈등은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위문희·김민중·편광현·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