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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美 진보법관 긴즈버그 자취···트럼프는 무엇이 그리 두려웠나

중앙일보 2020.10.03 16:30
지난 9월 18일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 9월 29일 비공개 가족 추도식 뒤 버지니아 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면서 장례 절차가 끝났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한국시간으로는 추석 연휴가 시작될 무렵이다.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ROTC 장교로 근무했던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남편 마틴 긴즈버그(1932~2010년) 변호사도 잠들어 있다. 1933년생인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은 췌장암 전이에 따른 합병증으로 워싱턴의 자택에서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9월 25일 미국 우 ㅓㅅ깅턴DC의 의회의사당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관이 운구되자 조문객들이 가ㅣㅁ사릐 족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RBG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약자로 상당수 미국민은 그를 이런 약자 애칭으로 불러왓다. 마스크 위 장식은 긴즈버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벨기에식 배듭이다. AFP=연합뉴스

지난 9월 25일 미국 우 ㅓㅅ깅턴DC의 의회의사당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관이 운구되자 조문객들이 가ㅣㅁ사릐 족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RBG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약자로 상당수 미국민은 그를 이런 약자 애칭으로 불러왓다. 마스크 위 장식은 긴즈버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벨기에식 배듭이다. AFP=연합뉴스

 

미 대선 후보나 당선인 유고 가능성 우려
연방대법원에서 대선 결과 결정할 가능성
연방대법관 긴즈버그 생전 활동 관심집중
판결 지자 논리적 소수의견으로 의회 설득
법률 거부되자 대선 쟁점화 해 결국 관철
진보법관은 법과 논리로 말한다는 사실
판결로 진보 이루고 상처 어루만져
판결로 젠더평등·교육·의료·환경 지평
생각 다른 상대 존중하며 논리·합리 설득
상대 존중, 세상 변화 인식시켜 변화 유도
공립군사학교 여학생 입학 관철 교육평등

"RBG 감사합니다" 국민적 애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미국 전역에선 긴즈버그의 별세 당일부터 이날 일몰 때까지 성조기를 반기로 게양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3년부터 27년 동안 연방대법관으로 일하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긴즈버그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안장에 앞서 연방대법원과 의회의사당에 안치되자 수많은 사람이 조문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도 찾아와 애도했다. 일부 조문객은 이름 약자인 RBG를 적은 종이나 플랭카드를 들고 고인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6일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으로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지명하고 백악관애서 그를 데동하고 이를 발표하고 있다. 긴즈버그의 장례절차가 끝나기 사흘 전의 일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6일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으로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지명하고 백악관애서 그를 데동하고 이를 발표하고 있다. 긴즈버그의 장례절차가 끝나기 사흘 전의 일이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긴즈버그 장례 도중 후임 지명  

문제는 이런 추모 분위기와 상관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긴즈버그의 장례절차가 끝나기도 전인 9월 26일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후임으로 지명했다는 사실이다. 공화당도 10월 12일 청문회 일정을 잡는 등 11월 3일의 대선 전에 인준 절차에 마칠 태세다. 하지만 민주당은 대선 뒤 당선인이 후임을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연방대법관 임명을 인준하는 연방상원은 현재 100명 중 53명이 공화당 소속이고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이 47명으로 숫자로만 따지면 인준 통과가 확실시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1일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이튿날 메릴랜드 주 베데스다의 월터 리드 군 병원에 입원했지만 상원에서 진행할 인준 절차는 그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미국 진보진영이나 민주당 지지자는 긴즈버그의 공백을 더욱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말년의 긴즈버그는 암 투병을 계속하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결코 사임하지 않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업무를 계속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중 입맛에 맞는 보수 법관을 임명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에서였다.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동쪽 입구의 지붕 바로 아래에 세워진 인물 조각들.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의 좌상이 한가운데 있고 모세의 오른편에 중국 전통복장 차림의 공자 입상이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동쪽 입구의 지붕 바로 아래에 세워진 인물 조각들.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의 좌상이 한가운데 있고 모세의 오른편에 중국 전통복장 차림의 공자 입상이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연방대법원이 대선 결과 결정할 상황에 대비

트럼프는 무엇이 두려워서 그렇게 급하게 긴즈버그의 후임을 지명했고, 공화당도 신속하게 인준 절차에 들어간 것일까? 가장 큰 이유로 11월 3일의 대선에서 트럼프가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우편투표를 비롯한 투표 결과가 혼란스럽거나 한쪽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 최종 결정은 연방대법원에서 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긴즈버그 생전에 이미 9명의 대법관 가운데 보수 대 진보 비율이 5대 4였던 연방대법원이 그의 별세로 현재 일시적으로 5대 3의 비율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후임의 조기 임명과 공화당의 조기 인준으로 6대 3의 절대 우위를 유지해 만일을 대비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트럼프의 의도가 반영된 경우다.  
여기에 트럼프의 코로나19 감염으로 미국 대선은 더욱 묘한 상황을 맞게 됐다. 트럼프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연방대법원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대선 과정에서 지금까지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후보나 당선인의 유고(有故·특별한 사정이나 사고가 있음) 사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1월 3일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1월 3일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AP]

11월 3일 대선, 12월 14일 선거인단 선거

유고 사태는 대선 과정 별로 의미와 무게가 각각이며, 연방대법원의 개입 가능성도 달라진다. 올해 미국 대선은 11월 3일 치르며, 주 별로 선출된 선거인단은 12월 14일에 모여 형식적인 투표로 당선인을 공식 결정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선출된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선거인단 투표는 지금까지 형식적인 절차였지만 만일 대선 후보나 당선인이 유고 사태를 겪을 경우 법률이나 관례, 전통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 11월 3일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로이터]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 11월 3일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로이터]

대선일인 11월 3일 이전에 대통령 후보가 유고될 경우 해당 정당에서 새 후보를 정하면 된다. 시간이 급하면 복잡한 과정과 절차를 생략하고 부통령 후보가 대통령 후보직을 승계해 선거를 치르는 것이 가장 간단할 것이다. 대선 후보만 정하면 부통령은 어차피 대선 후보나 대통령이 지명하면 되니 문제될 게 없다. 만일 11월 3일의 대선과 12월 14일의 선거인단 투표에서 승리한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취임 이전에 유고된다고 해도 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직을 승계하면 된다. 여기까지는 연방대법원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  
 
지난 9월 28일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을 추모하는 조기가 게양돼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9월 28일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을 추모하는 조기가 게양돼 있다. AFP=연합뉴스

후보·당선인 유고시 법원이 결정 가능성

하지만, 대선이 끝나고 12월 14일 선거인단이 차기 대통령을 결정하기 이전에 당선인 유고 사태가 벌어진다면 문제는 상당히 복잡해진다. 원래 지지하겠다고 했던 후보가 사라진 선거인단이 해당 정당의 부통령 후보를 지지해야 할지, 다른 정당 후보를 집단 또는 개인적으로 교차 지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으로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도 자신이 찍겠다고 한 후보가 아닌 다른 인물을 지지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다. 이럴 경우에는 선거인단의 교차 투표를 인정했다. 어차피 숫자가 적었고 당락에 영향도 없었다. 만일 후보가 얻은 선거인단이 만일 동수일 경우도 새로 구성된 연방하원에서 투표로 새 대통령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도록 제도화돼 있어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선거인단 투표 직전에 후보가 유고 사태를 겪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금까지 전례도 없고, 관련 법률도 없다. 그야말로 예상 범위를 넘어선 최악의 상황이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정당 간 논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권력을 놓고 누구도 쉽사리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연방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법률에도, 전례도 없는 상황이니만큼 연방대법원에서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성향과 별개로 표가 엇갈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이 보수 성향의 배럿 판사를 연방대법관에 앉히는 것이 지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공화당 지지나 다름없는 보수 성향의 연방대법관이 9명에 진보 성향의 연방대법관이 3명이 된다. 공화당이 단연 유리하게 된다. 긴즈버그의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보이는 상황이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AP=연합뉴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AP=연합뉴스]

판결로 말하는 긴즈버그 진보활동 위력   

트럼프 대통령이 ‘진보의 아이콘’인 긴즈버그를 생전부터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긴즈버그도 암 투병을 하면서도 사임하지 못하고 버텨왔다.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라 본인이 건강 등을 이유로 그만두지 않는 한 자리를 지킬 수 있다. 긴즈버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법률 논의에 참여해왔다.  
트럼프가 긴즈버그를 눈엣가시로 여긴 본질적인 이유는 그가 평생 해온 판결 때문이다. 긴즈버그는 평생 판결을 통해 진보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말 그대로 진보 법관이었다. 판사답게 긴즈버그는 판결로 말하고 법률과 판례로 세상을 시대정신에 맞게 바꾸려고 노력했다.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 설치된 추모 공간에서 지난 9월 25일 한 추모객이 사람들이 두고 간 사진과 초를 살펴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 설치된 추모 공간에서 지난 9월 25일 한 추모객이 사람들이 두고 간 사진과 초를 살펴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소수의견으로 의회의 법률 제정 이끌어

눈여겨볼 점은 긴즈버그가 연방대법원에서 보수 대법관의 숫자가 많은 상황에서도 소수의견을 통해 본인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관철해나갔다는 점이다. 2007년 그는 소수의견 하나로 미국의 양성평등 관련 법률과 정책의 변화를 끌어냈다. 긴즈버그는 대법원 판결에서 밀렸지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감의 소수의견을 제시해 미국의 법률과 정책을 바꿨다.  
릴리 레드베터라는 노동자가 성별로 인한 임금 차별이 부당하다며 이전에 적게 받았던 금액을 지급하라며 고용주인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레드베터 대 굿이어 타이어&고무’ 사건이 계기였다. 1964년 제정된 미국 민권법은 인종은 물론 성별로 인한 임금 차별도 금지하는데, 레드베터는 자신이 이 법에 어긋난 회사 측의 조치로 성차별을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보수가 우세했던 당시 연방대법원은 5대 4로 이 소송을 기각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급여를 적게 받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고 해도 급여는 지급 주기에 따라 시효가 있다는 법조문이 근거였다.  
하지만 긴즈버그의 생각은 달랐다. 여성은 자신들의 임금이 남성보다 적다는 것을 모르는 일이 많기 때문에 급여 주기마다 시정을 요구하는 게 힘들고, 남성이 지배하는 직장에서 여성이 작은 급여 차이로 소송 하기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수의견을 통해 ‘의회가 민권법의 해당 조항을 수정해 이 판결을 무효로 해라’고 촉구했다. 결국 미국 민주당은 2008년 긴즈버그의 제안대로 이를 수정하는 ‘레드베터 공정임금법’을 제안했다. 이 법안은 공화당의 반대로 상원에서 부결됐지만, 실질적인 양성평등 임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렀다.    
미국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선후보가 지난 9월 25일 의회의사당에서 조문하며 긴즈버그의 사진이 들어간 팸플릿을 살펴보고 잇다.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선후보가 지난 9월 25일 의회의사당에서 조문하며 긴즈버그의 사진이 들어간 팸플릿을 살펴보고 잇다. AP=연합뉴스

 

대선 쟁점으로 떠오른 긴즈버그 소수의견

이 법은 2008년 미국 대선으로 비화해 뜨거운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는 이 법을 지지했고,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는 반대했다. 결국 오바마가 당선하고 의회가 민주당 지배로 바뀌면서 수정법이 다시 제안돼 2009년 1월 22일 상원을, 27일 하원을 각각 통과했다. 29일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뒤 첫 법안으로 서명하면서 발효됐다. 긴즈버그의 소수의견을 따른 ‘레드베터 공정임금법’이 오바마의 취임 뒤 서명 1호 법률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가 지난 9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에 옮겨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관 좌우에 서서 그를 추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가 지난 9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에 옮겨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관 좌우에 서서 그를 추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당연히 이 법 제정의 최고 공로자는 긴즈버그다. 긴즈버그 법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긴즈버그가 미국에서 양성평등과 소수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변화를 끌어낸 대표적인 사례다. 소수의견은 결국 대선 쟁점으로 비화했으며, 나라의 법과 제도를 바꾸기에 이르렀다. 연방대법관의 소수의견 하나가 도도한 물결을 돌려세운 셈이다. 긴즈버그를 진보의 아이콘으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긴즈버그는 그야말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는 진보의 아이콘이다. 그가 살아온 길 자체가 ‘진보의 용감한 신세계’를 이루는 과정이었다. 유리 천정을 깨고 젠더 평등을 추구했으며, 판결을 통해 미국을 진보적인 세계로 한 걸음씩 이끄는 삶을 살아왔다.  
 
미국은 2013년 여군에 대한 전투임무 배치 금지 규정을 없애겠다고 발표한 이후 네이비실 등 특수부대의 문호를 여군에게도 개방했다. [CNN 캡처]

미국은 2013년 여군에 대한 전투임무 배치 금지 규정을 없애겠다고 발표한 이후 네이비실 등 특수부대의 문호를 여군에게도 개방했다. [CNN 캡처]

양성평등 샛길 이끄는 ‘꼼수’는 거부  

긴즈버그의 또 다른 양성평등 판결로 1996년 ‘미합중국 대 버지니아주’ 사건이 있다. 이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은 오랫동안 남자만 입학을 허용했던 공립학교인 ‘버지니아 종합군사학교’에 여학생도 입학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판결을 했다. 당시 긴즈버그가 다른 대법관을 열성적으로 설득해 9명의 연방대법관 중에서 7대 1의 압도적인 다수 결정을 끌어냈다. 당시 클래런스 토머스 연방대법관은 아들이 이 학교 재학생이라는 이유로 제척을 자청해 재판에서 빠졌다. 제척은 공정한 재판과 법원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법관이나 법원 직원 등이 특정 사건의 관련자이거나 가족·친척 관계일 경우, 해당 사건의 재판 참여 등 직무 집행에서 제외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 마디로 사법 절차에서 공과 사를 분명히 하기 위한 제도다.      
미국은 2013년 여군에 대한 전투임무 배치 금지 규정을 없애겠다고 발표한 이후 네이비실 등 특수부대의 문호를 여군에게도 개방했다. [CNN 캡처]

미국은 2013년 여군에 대한 전투임무 배치 금지 규정을 없애겠다고 발표한 이후 네이비실 등 특수부대의 문호를 여군에게도 개방했다. [CNN 캡처]

이 재판에서 다수를 대표해 판결문을 작성한 긴즈버그는 “성별을 기준으로 하는 이 학교의 입학 정책은 ‘유사한 처지인 사람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다르게 대우하는 것을 금지’하는 미국 수정헌법 14조의 평등 보호 조항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당시 버지니아 주는 이 학교에 여학생을 받아들이는 대신 주 내에 있는 리버럴 아츠 여대인 메리 볼드윈 칼리지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버지니아 여성 리더십 대학(VWIL)을 세우겠다고 했다.  
리버럴 아츠 대학은 인문학과 순수 과학 지식을 중점적으로 가르쳐 지적 능력을 개발하는 학부 중심 대학을 가리킨다. 하지만 긴즈버그는 VWIL이 버지니아 종합군사학교 수준의 혹독한 군사훈련이나 시설, 교육과정, 교직원, 장학금 등 재정적 기회, 그리고 졸업생의 명성이나 유대를 제공할 수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성만 입학하는 관습을 지키기 위해 궁색한 ‘꼼수’를 동원한 버지니아 주를 명쾌한 논리로 깬 셈이다. 그야말로 양성평등 분야에서 타협을 하는 대신 정공법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샛길이 아닌 큰길을 통해 양성평등의 길로 가도록 한 판결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1950년대 미국의 기념비적인 민권 관련 판결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서 교육하지 않고 같은 학교에 다니게 했던 것처럼, 긴즈버그는 젠더 문제에서도 성별 분리가 아닌 통합 교육을 제시했다. 이 때문에 이 판결은 미국 교육에서 양성평등을 이끈 기념비적인 판결로 통한다.  
지난 9월 23일 미국 연방대법원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관이 도착하자 직원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도열해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9월 23일 미국 연방대법원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관이 도착하자 직원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도열해 있다. AP=연합뉴스

 

정신장애인, 시설수용 대신 지역사회 생활 이끌어  

긴즈버그의 진보적인 역할 중에서 정신 장애인과 관련한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99년 연방대법원에서 정신 질환 환자를 시설에 강제로 수용하는 대신 지역사회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판결을 끌어냈다. 1999년에는 ‘옴스테드 대 LC(루이스 커티스)’ 사건이다. 당시 조현병을 앓던 루이스 커티스와 그의 친구로 인격장애를 겪던 일레인 윌슨은 오하이오 주가 자신들을 지역사회가 아닌 정신병원에 격리하고 지역사회로 내보내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긴즈버그는 미국 장애인법을 근거로 정당화하지 않은 시설 격리는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그 뒤 미국에서 정신 질환자의 인권과 인격, 의사를 존중하고 시설 격리 대신 지역사회 서비스를 바탕으로 자립 생활로 이끈 역사적인 판결로 평가된다. 긴즈버그가 주도한 판결이 의회의 입법 행동을 끌어내고 그 법이 미국 장애인 정책을 전환했다. 한국에서도 이의 영향을 받아 장애인 관련 법률과 제도적 변화가 이뤄졌다.  

 
지난 9월 25일 성조기에 싸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관이 삼군 의장병에 의해 의회의사당으로 옮겨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9월 25일 성조기에 싸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관이 삼군 의장병에 의해 의회의사당으로 옮겨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환경오염 소송 쉽게 열어줘

그는 환경과 관련해서도 진보적인 판결을 끌어냈다. 2000년의 ‘지구의 벗들 대 레드로우 환경 서비스’ 사건이다.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노스 타이거 강 유역의 주민들을 대리해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들이 제기한 소송이다. 주민들은 이 강을 레저용으로 사용해왔는데 환경오염으로 이용이 불가능해지자 소송을 냈다. 연방대법원은 7대 2로 주민들 편을 들었으며 긴즈버그가 판결문 작성을 맡았다. 긴즈버그는 주민과 강 이용자들이 오염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보았는지를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관리 회사가 수질 기준을 반복적으로 위반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운동이나 레저용으로써 이용 가치가 떨어졌다는 주민들의 불평을 확인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긴즈버그가 주도한 이 연방대법원 판결은 미국에서 환경과 관련한 소송을 쉽게 제공하는 길을 열었다. 환경오염 피해자들의 피해 입증 책임 대신 관리 주체의 위반 여부를 판결의 기준으로 새롭게 확립했다.  
지난 9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추모객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9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추모객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 주도

긴즈버그는 2015년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도 주도했다. 미국은 2003년 매사추세츠 주를 시작으로 법률 제정·수정과 법원의 판결, 또는 주민투표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각 주에서 동성결혼 허용이 확산했다. 결국 2015년 6월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은 헌법에서 보장받는 권리라는 판결을 하면서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했다. 그는 2013년 동성결혼식의 주례를 서는 등 동성결혼이 법적인 권리임을 계속 주장해왔다. 긴즈버그는 미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인 낙태 권리 문제에도 찬성 입장을 보여왔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낙태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25일 미국 의회의사당 앞에서 하원의원들이 루스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관이 도착하는 것을 지켜보며 손을 흔들거나 합장을 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AP=연합누스

지난 9월 25일 미국 의회의사당 앞에서 하원의원들이 루스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관이 도착하는 것을 지켜보며 손을 흔들거나 합장을 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AP=연합누스

 

고교 졸업 직후 어머니 잃고 홀로서기

긴즈버그는 컬럼비아 법과대학원을 마치고 교수로 일하다 민주당의 지미 카터 대통령 때인 1980년 워싱턴DC의 연방항소법원 판사에 임명됐으며 1993년 역시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명해 연방대법관이 됐다. 그 뒤 27년간 미국 연방대법관으로 일하며 젠더평등·장애인·환경문제 등에서 진보적인 판결로 시대를 이끌었다. 이런 판결과 활동을 바탕으로 미국 진보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으며, 2015년에는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100명의 영향력 있는 인물에 선정됐다.  
1933년 이탈리아·아일랜드 이민자가 몰려 사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긴즈버그는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코넬대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정부학을 전공하고 1954년 졸업했다. 오스트리아계 유대인인 어머니는 고교를 월반해 졸업했지만, 경제 사정으로 오빠만 진학하고 자신은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의 유대인 남편과 결혼한 뒤 정성을 다해 딸을 키웠다. 긴즈버그는 이처럼 누구보다 애틋했던 어머니를 고교 졸업 직전에 여의었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서기의 인생이 시작됐다.  
 

아이 키우며 암 투병 남편과 하버드법대로

긴즈버그는 같은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던 한 살 많은 마틴 긴즈버그(1932~2010년)와 사귀었다. 마틴은 1953년 코넬대를 마치고 하버드 법과대학원에 진학한 뒤 오클라호마 주에서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했다. 두 사람은 1954년 루스가 대학을 마친 지 한 만에 결혼해 1955년 딸을 얻었다. 1965년 아들이 태어났다. 루스는 남편을 따라 오클라호마 주로 가서 사무직으로 일하며 아이를 키웠다.  
마틴은 군 복무를 마치고 하버드 법과대학원에 복학했다. 법과대학원 3학년 때 암에 걸려 부인의 보살핌으로 1958년 학업을 마치고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누워있는 남편을 위해 수업 노트를 얻어오기도 했다. 마틴은 세법 분야에서 유명한 변호사로 자리 잡았다. 부인이 대학교수와 법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루스는 1956년 남편이 다니는 하버드 법과대학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먼저 졸업한 남편이 뉴욕에 일자리를 얻자 컬럼비아 법과대학원으로 학교를 옮겨 1959년 공동 수석으로 졸업했다.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는 1950년에야 여학생을 처음 입학시킬 정도로 여성에게 문을 닫아걸었다. 양성평등 분야에서 지극히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법과대학원은 분위기가 달랐다. 이미 1930년대에 여학생들이 입학해 변호사와 법학자로 성장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미국 연방대법관이 사형제에 반대하면서 한 말을 적은 추모 플랭카드. AP=연합뉴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미국 연방대법관이 사형제에 반대하면서 한 말을 적은 추모 플랭카드. AP=연합뉴스

 

여성에 ‘좁은 문’ 법조계에서 실력으로 생존

하지만 미국 사회는 여전히 여성에게 보수적이었다. 긴즈버그는 법과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얻기가 힘들었다. 그는 헌법학자로 컬럼비아 법과대학원 학장인 제럴드 건서 교수가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에 재판연구관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차별은 그치지 않았다. 럿거스 법과대학원에 조교수 자리를 얻게 됐을 때 헌법을 담당하고 싶다고 하자 학장이 “헌법은 여자들이 맡는 게 아니다”라며 민사소송법을 맡으라고 권하기도 했다. 구세대의 노골적인 차별이다. 1972년 모교인 컬럼비아 법과대학원의 첫 종신 여성교수가 돼 돌아왔다. 그곳에서 그는 누구보다 앞서 성차별과 젠더 평등과 관련한 법학 연구를 수행하면서 상당한 논문을 발표했다. 대학에 ‘성차별’이란 과목을 첫 개설하고 관련 교과서도 내가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양성평등 부문을 개척하는 법학자로서, 교육자로서, 활동가로서 긴즈버그의 모습이다. 법관으로서는 물론 학자로서도 긴즈버그는 이 분야의 선구자였다. 오로지 실력과 학문적 업적으로 말하는 법학자였다.  
그는 나중에 “유대인이라는 점, 여성이라는 사실, 아이 엄마라는 세 가지”를 당시 받았던 차별의 이유로 꼽았다. 평등하고 공정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험준한 산맥이었다. 그야말로 여성과 엄마, 그리고 유대인으로서 삼중고를 겪었다.  
그러다 1980년 워싱턴DC의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면서 대학교수에서 법원 판사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카터 대통령은 연방법관 정원이 152명 증원된 것을 계기로 여성 법조인 41명을 항소법원과 지방법원 판사로 임명했는데 긴즈버그가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카터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1993년 긴즈버그는 클린턴 대통령의 발탁으로 샌드라 오코노 대법관에 이어 두 번째로 연방대법원 대법관이 됐다. 인준 청문회 당시 연방상원의 법사위원장이 현재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다. 미국 여성들에겐 판결을 통해 평등 세계로 이끈 '법률 전사'로 통했다. 진보 인사들에겐 설득과 논리, 그리고 냉철한 판결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여는 새로운 세계의 길잡이였다. 무엇보다 진보 법관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아있는 사례로 보여줬다. 긴즈버그의 당당한 삶이 세상을 더욱 살만한 곳으로 바꿔 놓았다. 적지 않은 미국인이 그가 마지막 가는 길에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써서 들고나온 이유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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