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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경제참모 열전③] 中엔 "암살자" 삼성엔 "약탈기업"···트럼프 뒤엔 싸움닭 나바로

중앙일보 2020.10.03 06:00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ㆍ제조업정책국장. 반중 싸움닭이다. 큰 제스처와 거친 언행이 특징. AFP=연합뉴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ㆍ제조업정책국장. 반중 싸움닭이다. 큰 제스처와 거친 언행이 특징. AFP=연합뉴스

 

“중국은 지구 최고의 암살자다.”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펴낸 책 『중국에 의한 죽음(Death by China)』의 일부다. 책에는 “중국의 삐딱한 자본주의는 보호무역을 무기 삼아 미국의 산업을 초토화할 것이고, 중국 기업은 치명적인 제품으로 미국 기업을 몰살하며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내용이 담겼다. 국내 번역서는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로 제목을 순화했지만 책의 내용은 원래 제목만큼 도발적이었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현재 미국 백악관의 무역ㆍ제조업 정책국장인 피터 나바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과 함께 만들어진 이 자리는 “미국의 근로자와 제조업자들의 권익을 위해 복무하며 대통령에게 경제 성장 및 무역 적자 해소 등을 위해 조언하는 것”이 법에 적시된 임무다. 
 
하지만 나바로에게 자신의 임무는 ‘중국으로부터 미국의 권익을 지키는 것’ 정도로 요약된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반중(反中) 전선에서 ‘싸움닭’을 자임하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바로 국장의 발언을 웃으며 듣고 있다. 올 4월 코로나19 대응책 브리핑.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나바로 국장의 발언을 웃으며 듣고 있다. 올 4월 코로나19 대응책 브리핑. 로이터=연합뉴스

나바로의 반감은 중국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국에도 수차례 핏대를 세웠다. LG와 삼성전자를 “약탈 기업”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 “끔찍하다”고 표현한 뒤엔 나바로의 속삭임이 있었을 것으로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2018년 개정된 한ㆍ미 FTA를 두고 나바로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미국과 이런 FTA를 체결한 것은 트럼프 정부의 무역 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낸다는 증거”라고 흡족함을 드러냈다. 트럼프 집권 후 미국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및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에도 나바로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정치인을 꿈꾼 경제학자  

 
나바로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의 거친 언행이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의 백악관에서조차 그는 ‘공공의 적’ 수준이다. ‘차분함’이 무기인 대다수의 동료 경제학자들과 달리 그는 교수 시절부터 뚜렷한 개성을 드러냈다. 경제 매체에 출연해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했다.  
 
정계 진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시의회부터 시장직까지 다양한 선거에 5번이나 출마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흥미로운 건 나바로가 트럼프 대통령과 연이 닿기 전까지는 민주당 지지자였다는 점이다. 5번의 선거도 모두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하지만 정계 아닌 관계로 방향을 틀면서 그는 돌연 성향을 180도 바꿨다.
지난달 방송 출연을 앞둔 나바로 국장.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여전히 곁에 두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방송 출연을 앞둔 나바로 국장.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여전히 곁에 두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런 나바로를 트럼프에게 소개한 건 누굴까. 트럼프 백악관의 핵심 실세라는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다. 쿠슈너는 나바로의 책 『중국에 의한 죽음』을 보고 그를 스카우트했다고 한다. 나바로는 트럼프의 측근인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함께 트럼프의 경제 및 통상 정책 근간을 세웠다. 

 
보호무역주의에 경도된 이 정책은 학계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370여명의 경제학자가 참여해 반대 성명을 냈다. 이들 중 19명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다. 예상치 못한 복병에도 나바로는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에 불리한 통상정책이 유리하다고 착각하는 이들”이라며 깎아내렸다.  
 

그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세계  

 
사실 그는 트럼프 정부 출범 초기 백악관 내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을 맡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가경제위원회(NEC)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통상 분야의 최고 수준 정책결정기구로 요직으로 꼽히는 자리다. 하지만 NTC는 해체됐고, 나바로는 현재 직책으로 밀려났다. NEC 산하 기구인 만큼 사실상 좌천이다.
 
그의 거친 생각과 각종 설화 등은 백악관 내부에서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온건파는 그를 저지할 필요를 느꼈고,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그를 고위급 회의에서 배제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일정에서도 제외됐다. 
 
좌천과 백악관 내부의 암묵적 경고에도 그의 위험한 발언은 계속됐다. 미ㆍ중 합의와 관련해 지난 6월 폭스뉴스에서 “다 끝장났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중국발이라는 점에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해 무역합의조차 깨기로 결심했다는 게 나바로의 주장이었다. 해당 발언의 파장이 만만치 않자 결국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나서서 “중국과의 무역합의는 그대로”라고 트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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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로의 좌충우돌 행보에도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반중 성향의 나바로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트럼프는 해고의 명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트윗으로 망신을 주며 해고를 일삼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나바로는 좌천됐지만 트럼프의 곁을 지키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미ㆍ중 무역 협상에서 트럼프가 적절한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풀이도 나온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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