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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사라진 홍콩...그 자리엔 피리 소리만 남았다

중앙일보 2020.10.02 12:16
1일 홍콩 경찰이 대만으로 망명하려다 체포된 12명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1일 홍콩 경찰이 대만으로 망명하려다 체포된 12명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중국 국경절 연휴였던 지난해 10월 1일, 홍콩 시내는 아수라장이었다. 시위에 참가한 18살 고등학생이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았다. 시위 참가자가 홍콩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부상까지 당한 건 처음이었다.

1일 홍콩서 구의원 4명 등 86명 체포
경찰, 보안법 앞세워 해산 종용
10대 학생, 시위 대신 피리 연주…“홍콩 상황 참담”
미 국무부, 첫 홍콩 난민 대상 포함키로

 
시위대는 “이날은 국가 경축일이 아닌 애도의 날”이라며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섰다. 시위대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초상화를 불태웠고,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로 진압했다. 베이징에서 건국 70주년 열병식이 열렸던 그 시각, 홍콩에선 수만 명이 참여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절정에 달했다.

 
2019년 10월 1일 홍콩 경찰이 시위 남성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고 실제 발사하는 장면. [페이스북]

2019년 10월 1일 홍콩 경찰이 시위 남성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고 실제 발사하는 장면. [페이스북]

1년이 지난 1일, 국경절이자 추석이었던 홍콩의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전날 홍콩 보안국 대변인은 “허가받지 않은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불법이며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폭력을 행사한 경우 최대 10년 형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터넷매체 홍콩01은 이날 시간대별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12시 30분  경찰은 코즈웨이베이 거리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의 소지품을 수색했다.
15시 30분  30여 명의 시민이 모여 있자 연행해 조사했다
16시 6분  흰 옷을 입은 남자가 경찰에 쫓기다 땅에 눕혀져 수색을 받았다. 50명의 시민이 경찰에 차단돼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17시 20분  경찰이 35세 남성이 운전하는 한 차량에서 ‘가이포크스’ 가면, 방독면, 헬멧 등 의심스러운 물건을 발견해 압수했고 20세 남성은 공격용 무기를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다.
 
1일 한 35세 남성이 차량에서 가면, 방독면 등이 발견돼 체포됐다. [홍콩01 캡쳐]

1일 한 35세 남성이 차량에서 가면, 방독면 등이 발견돼 체포됐다. [홍콩01 캡쳐]

밤에도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홍콩 경찰은 이날 밤 10시 “승인되지 않은 집회에 참여한 혐의로 구의회 의원 4명 등 최소 86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람들이 모인 곳마다 다니며 해산하라고 외쳤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경찰이 홍콩을 침묵시켰다”고 적었다.
  

1일 홍콩 코즈웨이베이에서 검은 색 옷을 입은 시민들이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다. [홍콩01 캡쳐]

1일 홍콩 코즈웨이베이에서 검은 색 옷을 입은 시민들이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다. [홍콩01 캡쳐]

구호도, 거리 행진도 불허됐던 이 날,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에서 이날 한 10대 남학생의 영상이 주목을 받았다. 홍콩 코즈웨이베이 거리에서 ‘홍콩에 영광을’(Glory to Hong Kong)이란 곡을 피리로 부르는 장면이었다. 이 곡은 우리나라 집회에서 자주 불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현장마다 홍콩인들이 불렀던 노래다.
 
‘우린 그렇게 두렵다. 우린 그토록 애절하다. 고개를 들고 구호를 외친다. 자유가 다시 오길...’ ('홍콩에 영광을' 가사중)
 
피리를 연주했던 학생은 경찰에 의해 제지됐다. 그는 피리를 연주한 이유를 묻자 “현재 홍콩 상황이 참담하다. 정부가 보안법을 통과시키면서 홍콩 사람들은 다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됐다”며 “그래서 이 목동 피리를 가져 나와 불기로 결심했다. 홍콩인들이 계속해서 투쟁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이 체포하고 있는데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 “무서워해선 안 된다. 폭정 하에서 우리 홍콩인들은 계속 투쟁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뤄후이닝(駱惠寧) 홍콩주재 중앙정부 연락판공실 주임은 전날 불법 시위 참여자들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며 “홍콩보안법이 지난해 소요사태의 광기를 종식했다”고 밝혔다.
 
한편 미 행정부가 처음으로 홍콩인을 난민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미 국무부는 “2021년 회계연도에 난민 1만 5000명의 입국을 허용할 계획”이라며 “이라크, 엘살바도르, 과테말라는 물론 홍콩, 쿠바, 베네수엘라 난민 신청자를 우선 순위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SCMP는 “미국이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취한 일련의 조치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베이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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