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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중고 신발 정리대 2000원에 판 뒤 얻은 뿌듯함

중앙일보 2020.09.30 14:00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22)

당근마켓이라는 중고거래 플랫폼이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열광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당근마켓이 내로라하는 유통 채널을 제치고 쇼핑앱 이용자 수 2위에 올랐다는 기사도 접했다. 그간 당근마켓을 통한 중고 거래 현황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의 첫 번째 당근마켓 판매 물품은 농구화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내게 있다. 신발의 경우 중고로 사기도 팔기도 어렵다. 일단 사이즈가 너무 다양하다. 어쩌다 운 좋게 마음에 드는 신발을 발견해도 사이즈가 맞지 않을 확률이 90%다. 적정 가격을 맞추는 것도 어렵다. 가격을 정할 때 유명 선수가 신어 유명한 신발이고, 실내에서만 신어 상태가 좋으니 적어도 3만 원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결국 1만 원까지 가격을 내렸지만 아직도 판매되지 않았다. 그 후로 신발은 판매하지 않고 있다. 
 
신발은 중고거래가 어렵다. [사진 pxhere]

신발은 중고거래가 어렵다. [사진 pxhere]

 
노하우가 있는지, 아내가 올린 물건은 잘 팔리는 편이다. 물건이 잘 팔리면 판매자의 매너점수가 올라 판매가 더 유리해져 선순환이 가능하다. 이제는 내 물건도 대신 팔아달라고 부탁한다. 판매되면 수수료도 주겠다고 했다. 아내 노하우의 핵심은 사진을 찍는 법에 있었다. 하얀 벽지를 배경으로 흰색 식탁 위에 스탠드 조명을 비춰 찍으니, 제법 제품의 카탈로그 사진 같이 나온다. 그리고 고객 문의가 왔을 때 빠른 응대도 중요하다고 한다. 매너 좋은 판매자가 되기 위한 기본 수칙이다.
 
당근마켓을 잘하는 아내 덕에 이사 올 때 대형 가전제품도 쉽게 처분할 수 있었다. 냉장고와 에어컨을 당근마켓에 올렸는데 생각보다 금방 연락이 왔다. 따로 판매자가 링크를 걸지 않아도 용달트럭이나 설치 서비스 링크가 자동으로 걸려있어서 거래가 편했다. 냉장고의 경우 구매자가 이사하는 날에 맞춰 가지고 갔다. 일정을 맞춰 두 번 일하지 않고 이사하는 도중 바로 가져갈 수 있었고, 제품도 깨끗하다고 좋아했다. 물론 전날 열심히 닦은 덕이다.
 
인생의 교훈을 얻은 거래도 있다. 몇 년 전 치기 어린 마음에 구매한 화려한 호피무늬 백팩을 팔 때였다. 채팅 어투가 익숙하지 않아 외국인인 줄 알았더니 중년의 여사님이었다. 가방이 상태도 좋고 이쁘다며 기분 좋게 메고 가시는 것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 내가 매기에는 너무 화려한 것 같아서 판매한 것인데 어머니뻘의 새 주인을 만나다니, 유행가 제목대로 ‘내 나이가 어때서’다.
 
패션에는 나이가 없다. 어머니뻘의 새 주인을 맞은 백팩. [사진 한재동]

패션에는 나이가 없다. 어머니뻘의 새 주인을 맞은 백팩. [사진 한재동]

 

당근마켓에서 아이쇼핑하는 재미도 있다. 얼마 전 적어도 20년은 돼 보이는 해적판 포켓 만화를 판매하는 것을 발견했다. 개중에는 내가 즐겨보던 추억의 만화도 있었다. 상자째 보관해 깨끗하고 세트별 구색이 다 갖춰져 있는 100권 상당의 책 가격은 몇십만 원대였다. 그 돈을 주고 누가 살까 싶지만, 내가 모르는 오래된 만화를 거래하는 시장이 있을지도 모른다.
 
탈덕한 아이돌 팬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애장품을 판매하는 것도 재미있다. 앨범, 콘서트에 쓰던 응원봉, 각종 포스터 등 판매 상품은 다양하다. 몇몇은 아예 모두 묶어 패키지로 판매한다. 팬으로 하나씩 모았던 것을 판매하는 사연이 궁금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보통 적지 않는다. 좋아하는 마음은 식었지만 그래도 한때 열광했던 스타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를 지키는 것 같다.
 
당근마켓에서 가장 잘 구한 제품은 신생아용 침대인데, ‘무료 나눔’으로 구했다. 신생아용 침대는 아기가 뒤집기를 시작하면 못쓰기 때문에 사용 기간이 짧고, 부피가 커 집안에서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 그래서 새 제품보다는 중고나 대여를 할 계획이었는데, 당근마켓에 무료 나눔으로 나온 것이다. 누가 채갈세라 판매자에게 연락하고, 친구의 SUV 차량을 빌려 가지러 갔다. 무료 나눔이지만 진짜 빈손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아 만원 조금 안 되는 마카롱도 몇 개 사 갔다. 아내 대신 침대를 주러 나온 남편은 아내가 받지 말라고 했다며 거절했지만 억지로 쥐여주고 왔다.
 
그렇게 얻은 침대는 정말 잘 썼다. 그리고 우리 딸도 잘 자라 뒤집기를 시작하자, 그 침대를 처분해야 했다. 무료 나눔으로 받았지만 그래도 1만 원 정도에 팔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이 침대가 왠지 사람을 경건하게 만드는 것인지 결국 무료 나눔으로 올렸다. 올린 지 5분 만에 가져가겠다는 사람이 나왔다. 그쪽도 남편이 차를 빌려 오겠다고 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임신부를 보던 아내가 후배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과연 저 침대에서 몇 명의 아이가 자게 될까? 마치 동화 같은 이야기다. 
 
아낌없이 주는 침대. 몇명의 아이가 이 침대에서 잠을 잘까? [사진 한재동]

아낌없이 주는 침대. 몇명의 아이가 이 침대에서 잠을 잘까? [사진 한재동]

 
그간 열심히 당근마켓으로 세간 살림을 팔아 받은 돈은 몇만 원 가까이 된다. 언젠가 이 돈을 모아 새 차를 살 수 있을 거라며 웃었다. 그러다 며칠 전 자기계발 하겠다고 수강하고 있는 수업에 늦잠을 자서 못 가고 말았다. 얼추 계산을 해보니 하루 치 수업비가 당근마켓으로 가방과 옷을 판 돈과 비슷해서 뭔가 허탈했다. 그때, 내가 당근마켓을 하는 이유가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산다는 의미를 넘어 살까 말까 수많은 고민과 정보 수집이 합쳐진 행위다. 따라서 중고거래에 올라온 모든 물건은 ‘제가 열심히 고민해 산 물건’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내 물건이 팔린다는 것은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이가 내 식견을 인정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내가 고른 물건이 가치를 인정받고 또 다른 쓰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냥 버려도 되는 플라스틱 신발정리대를 약속을 잡고, 열심히 닦아서 2000원에 팔았지만, 단지 1000원짜리 두 장을 벌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출퇴근 지하철 비용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그 이상의 뿌듯함이 있었다. 이것이 내가 당근마켓을 하는 이유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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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동 한재동 직장인 필진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 '이제부터 쇼핑을 잘해야지!'라고 다짐하면 쇼핑을 잘할 수 있을까? 알고 보니 쇼핑에도 공부가 필요하더라. 쇼핑! 하면 비싼 명품 백을 사려고 줄을 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집 앞 편의점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는 것도 쇼핑이다. 그렇다면 ‘쇼핑을 잘한다’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구매하는 것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곧 불혹 직장인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쇼핑 경험담이다. 거창한 명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는 패션과 생활용품에 집중되어 있음을 미리 양해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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