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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작가' 강운, 추상화로 자신을 치유했다

중앙일보 2020.09.30 11:30
강운, 마음 산책(A walk through Mind), 162x130.3cm_Oil on canvas, 2020[사진 김냇과]

강운, 마음 산책(A walk through Mind), 162x130.3cm_Oil on canvas, 2020[사진 김냇과]

강운(54)작가의 개인전 '마음 산책'이 전남 광주 대인동 문화공원 김냇과에서 열리고 있다. 그동안 하늘, 구름 등을 주로 그려 일명 '구름 작가'로 불려온 그의 신작들엔 구름은 다 걷히고 없다. 아니 구름은 사라진 게 아니라 그의 캔버스 깊숙이, 진하게 녹아들었다.    
 

전남 광주 김냇과, 강운 '마음 산책'
글을 쓰고 이를 캔버스에 옮겨 적어
색 위에 덮고 쓰고 색으로 덮는 방법

50여 점의 신작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그동안 달라진 작가의 심상을 확연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번에 전시장을 채운 것은 각기 색을 달리한 추상 화면이다. 그 색 아래, 그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묻혀 있다. 아내와의 이별, 그 이후 마주해야 했던 감정들, 그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 5.18에 대한 기억···. 
 
"이해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이 줄어들 것 같아 쓰고, 나를 치료하고 싶어 지우고,  명료해질 때까지 힐링의 색채로 우려냈다.”이번 전시의 작가노트에 그는 이렇게 썼다.
 
그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강운, 마음 산책(A walk through Mind), 90.9x72.7cm_Oil on canvas, 2020.[사진 김냇과]

.강운, 마음 산책(A walk through Mind), 90.9x72.7cm_Oil on canvas, 2020.[사진 김냇과]

2015년 7월 암으로 고생하던 작가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느 날 그는 딸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눴다. 각기 견디고 있는 슬픔을 털어놓은 이야기였다. 이 대화를 녹음했던 그는 우연히 "딸 아이와 녹음된 내용을 들으며 컴퓨터로 타이핑하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다. 화가인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캔버스에 내가 쓴 글들을 캔버스에 그림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그래서 이번 신작은 그 과정 자체가 남달랐다. 우선 그는 대화나 독백을 타이핑했다. 그리고 그 글들을 캔버스에 옮기기 위해 우선 바탕 작업부터 했다. 글의 내용을 상징할 만한 색을 선택하고 작업 당시의 감정에 따라 빠르거나 느리게 혹은 부드럽거나 거칠게 붓질을 하며 바탕을 칠했다. 그리고 덜 마른 표면을 생채기를 내듯 긁어내며 수많은 글자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글의 내용을 색으로 덮어버렸다. 
 
"몇 차례 반복하면서 상처 같은 글자들은 점점 희미해졌고, 그 '마음의 공기' 같았던 색은 겹쳐 쌓이며 갈수록 명료해졌다" 우둘투둘한 표면, 그 아래 담긴 숱한 이야기. 화가 강운이 자기에게 벌어진 인생의 사건을 반추하며 마음을 치유한 방법이다. 
 
강 작가의 작품을 오랜 기간 지켜봐 온 백종옥 독립큐레이터(미술생태연구소장)는 "강운 작가의 이번 신작을 본 사람들은 그가 왜 유명한 구름 작업을 제쳐놓고 전혀 다른 작업을 하는 것인지 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는 이제까지 여러 번에 걸쳐 자신의 작업을 새롭게 변모시켜 왔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길을 추구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광주 대인동 김냇과 전시장의 강운 작가. [사진 김냇과][사진 김냇과]

광주 대인동 김냇과 전시장의 강운 작가. [사진 김냇과][사진 김냇과]

1966년 강진 출생인 작가는 전남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민중미술의 영향 속에서 작업하다가 1990년대 해남의 대자연에 매료된 이래 1998년까지 해남 풍경화 그리기에 천착했다. 이후 그는 풍경에 등장했던 하늘, 그중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구름의 찰나를 포착해 캔버스에 담았다. 밝고 온화한 구름 풍경을 담은 '순수형태' 연작을 통해 그의 구름 작품들은 포스코미술관(1997), 성곡미술관(1998), 광주비엔날레(2000), 모리미술관(2005) 등 국내외 주요 전시공간에 초대돼 전시되며 크게 주목받았다. 그가 '구름 작가'로 알려진 연유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아사 천 캔버스와 천연염색 한지를 소재로 붓질하며 점묘화나 모자이크처럼 구름을 그려 나가는 방식의 구름 연작 등 다양한 실험으로 자기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왔다. 
 
강운 작가의 '마음 산책'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김냇과 전시장. [사진 김냇과]

강운 작가의 '마음 산책'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김냇과 전시장. [사진 김냇과]

이번 '마음 산책' 연작에 대해 그는 “붓질을 덧대면 덧댈수록 규정할 수 없는 ‘마음의 공기’ 같은 상징적인 색감이 나온다. 머릿속을 떠돈 생각들을 텍스트로 옮기고, 거기에 맞는 색을 덧입히면 글자의 형태는 점점 지워지고 붓질 자국만 남는다"고 했다. 반복 속에서 정리된 생각은 마치 색 화면을 쓸고 간 붓 자국이 남긴 여러 겹의 여백 안에 오롯이 잠겨 있다. 
 
백 큐레이터는 이런 강 작가의 작업을 가리켜 "구도적 회화"라 요약한다. 반면 강 작가는 “내가 원하는 지점에 다다른 것은 어떤 탁월함이 아니라 지속해서 작업하고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강운 작가는 서울, 광주, 프랑스 파리 등 8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일본 모리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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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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