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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그날 리얼타임 감청”···정부, 北통지문 거짓말 알고 있었다

중앙일보 2020.09.30 05:00
황해남도 옹진군 등산곶 해안 인근에 보이는 북한 경비정의 모습. [뉴시스]

황해남도 옹진군 등산곶 해안 인근에 보이는 북한 경비정의 모습. [뉴시스]

우리 군(軍)이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7)씨가 피격 살해될 당시 북한군의 내부 보고와 상부 지시 등을 실시간으로 알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국회 국방위와 정보위에 따르면 군은 이씨가 북측 선박에 발견된 22일 오후 3시 30분쯤부터 북한군의 교신을 무선 감청했다고 한다. 한 국방위 관계자는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발표만 못 할 뿐, 도·감청을 리얼타임으로 했다. (북한 경비정이) 북한 해군사령부에 보고한 것도 감청됐다”고 했다. 이씨가 북한군에 잡혔다는 사실 등은 이날 오후 6시 36분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됐다. 
 
22일 오후 9시가 넘어 북한 해군사령부에서 이씨 사살 명령이 하달되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은 2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씨를 발견한 북한 경비정이) 상부에 ‘어떻게 처리할까요’ 이런 보고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사격을 해라’ 그래서 고속단정이 와서 사격했다고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다만 민 위원장은 사살 명령을 받은 북한군 대위급 정장이 “사살하라고요? 정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는 내용과 관련해선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 한 정보위 관계자는 ”사살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북한 경비정이) 헷갈렸다는 내용이 있었다. 비슷한 유의 대화가 오간 건 맞다”고 전했다. 국방위 관계자 역시 “보고를 주고받고 한 게 있다”고 했다.
 
군은 22일 오후 9시 40분 북한군 경비정이 이씨를 사살한 뒤 상부에 보고하는 과정도 리얼타임으로 파악했다. 
 
총리 발언 듣는 서욱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총리 발언 듣는 서욱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이후 청와대·정부 등의 대응을 두곤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기본적으로 조각 정보이기 때문에 첩보의 확인이 필요했다”(이인영 통일부 장관)거나 "전화 통화하듯이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강민석 청와대 대변인)라는 정부 측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군은 22일 오후 9시 40분 이씨 사살을 알았지만, 관련 내용이 청와대에 보고된 건 이로부터 50분이 지난 10시 30분이라고 앞서 청와대는 밝혔다. 이후 청와대에서 긴급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건 23일 새벽 1시, 문 대통령에게 보고가 된 건 23일 오전 8시 30분이었다. 결국 청와대의 설명대로라면 군이 확인하고 11시간 뒤 문 대통령이 이씨의 피살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25일 통지문은 대부분 거짓으로 판명나고 있다. 통지문에서 북한은 "정장의 결심으로 사격을 했다"고 했지만, 감청 결과 정장이 총격을 하기 전 수차례 상부와 논의한 정황이 드러났다.

군은 또 감청을 통해 이씨가 북측에 월북 의사를 전달한 사실도 북한군 내부 교신을 통해 확인했다고 한다. 월북 의사가 오가려면 근거리 대화가 필수다. 하지만 북한 통지문은 “80m 밖에서 '대한민국 아무개'라고만 얼버무렸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은 "북한군이 80m 떨어진 거리에서 파도 소리, 함정 엔진 소리가 심한데 대화를 했다는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이씨가 월북 의사를 피력했는데 도망가려는 정황이 있어 사살했다는 북한의 발표도 납득할 수 없다는 평가다.
 
결국 정부가 군 감청 등으로 북한 통지문의 허구성을 알면서도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과도하게 의미부여한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감청내용에는 북측이 이씨를 밧줄로 묶어 육지로 '예인'하려고 하다 해상에서 '분실'하는 등의 정황도 담겼다고 한다. 북한군은 2시간 만에 이씨를 다시 찾았는데 당시만 해도 구조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24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북한이 이렇게 천인공노할 일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을 못 하고, 정보를 분석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군이 획득한 다양한 출처의 첩보내용에서 ‘사살’을 언급한 내용은 전혀 없다”고 했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이날 낸 입장 자료에서 “사살이라는 내용으로 유관기관과 즉시 공유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단편적인 첩보를 종합분석해 추후에 관련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청와대 역시 이씨 사살을 실시간 감청했다는 보도와 관련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영익·윤정민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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