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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내부고발

중앙일보 2020.09.30 00:13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묘한 보도자료였다. 서울동부지검이 28일 오후 3시 기습적으로 배포한 ‘법무부 장관 아들의 병가 관련 의혹 고발사건 공보자료’ 말이다. 서두는 특별하지 않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아들 서모씨의 무혐의 불기소 처분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결과였다. 구색을 맞출 필요도 없다는 듯 사실상 연루자 전원을 무혐의 처분한 과감성이 조금 돋보였을 뿐이다.
 
그런데 한장 두장 넘기다 보니 얘기가 달라졌다. 보도자료는 곳곳에 의미심장한 팩트들을 무심한 듯, 툭 던져 놓고 있었다. 일독을 완료하자 수사결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보였다.
 
보도자료는 서씨가 명백하게 ‘엄마 찬스’를 썼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정권 교체 직후 여당 대표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모친의 보좌관에게 “군에 휴가 연장 가능 여부를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 신분을 내색하지 않고 자기 길을 헤쳐나가는 아들이 자랑스럽다”던 추 장관 발언과는 거리가 꽤 있어 보이는 행보였다.
 
추 장관 관련 내용은 더욱 놀라웠다. “보좌관에게 (부대에) 전화하라고 시킨 적이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던 추 장관이 보좌관에게 서씨 부대의 지원장교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보좌관으로부터 휴가 연장 관련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이 적시돼 있었다. 그것도 두 사람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거의 전부 인용할 정도로 자세히 말이다.
 
군에 대한 보좌관의 전화가 3차 휴가를 성사시킨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암시도 있었다. 군이 서씨의 직접적인 휴가 연장 문의를 딱 잘라 거절했다는 사실과 보좌관 전화 이후 친절하게 “(병가가 아닌) 정기 휴가는 쓸 수 있다”고 해결책을 알려줬다는 사실을 함께 배치하면서다. 논란의 3차 휴가를 상관이 구두 승인했다는 서씨 등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가 군에 단 한장도 없었다는 사실 역시 보도자료에서 습득한 지식이다.
 
수사결과에 불만을 품은 내부자가 자료 작성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억측일 수도 있지만, 이 생각이 사실에 가깝길 바라본다. 이해하기 힘든 결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어떻게든 진실을 알리려 한 내부고발자들이 검찰에 여전히 존재한다고 애써 믿고 싶어서다. 이 사안이 어떤 형태로든 다시 불거졌을 때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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