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출 100억이하 플랫폼도 규제? 쿠팡 잡으려다 ‘새싹’ 자르나

중앙일보 2020.09.29 05:00
네이버·쿠팡·배달의민족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 정부가 '갑질 방지법'을 내밀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8일 입법예고한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제정안(이하 플랫폼공정화법)이다. 플랫폼에 입점하는 중소상공인이나 소비자에게 플랫폼이 불공정 거래를 강요할 때 강력히 처벌하는 내용의 특별법이다. 법안이 공개되자 정보기술(IT) 업계에선 플랫폼 공정화법이 자칫 ‘성장제한법’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오종택 기자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오종택 기자

 
공정위 제정안에는 플랫폼의 갑질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담겼다. 플랫폼 사업자에게 계약서 작성 및 교부 의무를 부여하고 수수료 등 주요항목을 계약서에 의무적으로 포함하도록 했다. 사업자는 계약 내용 변경 시 최소 15일 전에 사전통지해야 한다. 또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불공정 행위를 한 경우 법 위반 금액의 2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한국경쟁법학회 회장인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플랫폼 확장 추세인 현실을 반영해 적용 대상은 늘리는 대신 기업에 대한 형벌 성격의 규제는 최소화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플랫폼 공정화법은 모바일 앱 경제가 커지면서 공정위 안팎에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네이버나 카카오, 배달의민족, 쿠팡 같은 플랫폼이 식료품부터 각종 생필품 거래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 일어나는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려면 새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취지로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제정안이 여럿 상정돼 있다. 특히 지난 4월 음식배달 앱인 배달의민족이 입점한 업체 대상으로 수수료를 인상하려다 '갑질' 논란에 휩싸이며 플랫폼 규제 필요성에 힘이 실렸다.  
 
이날 공정위가 공개한 제정안을 두고 플랫폼 업계에선 “최악은 피했지만, 규제 대상에 편입된 만큼 성장 속도가 늦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형벌을 최소화한 점은 다행이나, 법안의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서다. 김재환 인터넷기업협회 정책국장은 "공정위 법안에서조차 플랫폼에 대한 정의와 구분이 모호하고 적용 범위가 넓다"며 "산업 특성상 변화 양상이 빠른 현실을 감안할 때, 일부 성장하고 있거나 성장 가능성이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정형화된 틀에 넣다보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제정안은 정보, 상품·서비스를 중개하는 플랫폼 사업자 중 매출액·중개거래금액이 일정 규모 이상인 사업자를 적용대상으로 규정했다. 오픈마켓, 배달 앱, 앱 마켓, 숙박 앱, 승차중개 앱, 가격 비교사이트, 부동산·자동차 정보제공서비스, 검색 광고 서비스 등 앱 기반 비즈니스 모델 대부분이 해당한다. 적용 대상은 매출 100억 원 이내에서 시행령이 정한 기준 이상의 매출을 올렸거나, 중개 거래금액 1000억 원 이내에서 시행령 기준 금액 이상을 올린 사업자다. 즉 수십억 원 매출, 수백억 원 중개거래금액 기준을 달성하면 적용받는다는 의미다. 네이버나 카카오, 쿠팡 같은 대형 플랫폼의 공정거래 질서를 잡으려다 새싹마저 자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에 따르면, 국내 오픈마켓 중 8개 이상, 숙박 앱 2개 이상, 배달 앱은 4개 이상에 법안이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IT 업계에선 사실상 초기 단계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중개 앱이 적용대상에 오른다고 우려한다. 국내 오픈마켓 한 관계자는 “요즘처럼 비대면 플랫폼이 성장하는 추세가 이어지면 스타트업이라도 2~3년 후엔 규제 대상이 된다”며 “그때부터 성장속도는 뚝 떨어질 것”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중개자로서 플랫폼 기업의 특성상 거래규모가 수백억원이라도 이익을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갑'보다 '을'에 가까운데 규제가 너무 일찍 들어온다"고 말했다.
온라인쇼핑몰 거래액.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온라인쇼핑몰 거래액.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기존 공정거래법을 두고 특별법을 추가해 규제하는 방식에 대한 우려도 있다. 공정위는 프랜차이즈 시장의 갑질이 문제가 되자 가맹사업법(2002년)을, 백화점·마트·기업형 슈퍼마켓이 증식하자 대규모유통업법(2011년)을 만들었다. 2013년 ‘남양유업 본사의 밀어내기’ 갑질 이후 대리점법(2015년)도 추가됐다. 모두 공정거래법보다 우선 적용되는 특별법이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이견이 많다. 스타트업들은 관련 법이 제정되고 규제의 틀 안에 일단 들어오면 규제가 손쉽게 더 늘어나는 한국적 현실에 대해 우려한다.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실장은 “갑질 규제의 필요성에 일정 부분 공감하지만, 처음부터 법 적용대상을 너무 넓혀놓은 것은 문제”라며 “향후 정치적 상황에 따라 더 높은 강도의 규제가 줄줄이 법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확장을 통해 성장을 거듭하는 플랫폼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법이라는 우려도 있다. 국내 대형 플랫폼 한 관계자는 “판매자가 자유롭게 들어오고 나가는 플랫폼 특성을 잘 모르고 만든 것 같다. 계약서 조항을 세세하게 규제한 것 자체가 구시대 관행의 답습”이라고 했다. 규제 대상에 포함된 또 다른 플랫폼 관계자도 “입법 예고된 계약서 명시 조항에 따르면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 앱 화면(UX) 구성도 뜯어고쳐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박민제·김정민 기자 letmein@joongang.co.kr
팩플레터 구독신청은 여기서 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url.kr/qmvPIX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